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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존재 Jul 15. 2020

풀독

삶은 끊어질 듯 위태로이 흔들거리다가도 일상의 끝자락에 달라붙는다. 


닭이 달걀을 낳듯, 두 눈은 아침만이 부여하는 규정할 수 없는 힘과 뜨인다. 아침의 공기와 햇살, 동물적 챗바퀴의 일부가 되는 것은 종종 행복을 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우선 일어나기만 하라. 그런 신의 제언이 계시처럼 내린다. 


덜 떠진 나의 눈과 덜 데워진 태양 밑의 땅. 막 움직이기 시작한 인간들의 발바닥. 그 일부로써 나는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폈다. 


꿈에서 수풀을 헤쳐나가며 풀독들을 손에 치덕치덕 발랐다. 지구의 허파는 잘 벼려진 가시들을 안고 있었다. 그들은 털을 버리고 옷을 입은 존재들을 찔렀다. 숲과 나무는 가만히 서 있을 뿐이지만 자연을 등 돌린 우리에겐 한없이 날카로웠다. 그들은 꽃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어떤 의도도 악의도 없지만 손과 다리에 깊게도 파고드는 존재들을 느꼈다. 


독이 오른손은 하얗게 익어간다. 볼록해지며 나의 것이 아니게 되어가는 수족을 본다. 몸통에게서 영양분을 얻는 가지, 그럼에도 거뭇해지며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본다. 부엌 한편에 놓아둔 대파가 꼭대기부터 갈색으로 시들어가듯이.


삶은 늘 역경의 모습을 뒤집어쓰고 우리에게 비명 지른다. 실존의 의식이 아득해지고 부유감이 반복되며 허무가 인간을 속삭일 때쯤, 삶에 대한 본능적 감각이 떠오른다. 이후는 중요치 않으니 우선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가. 


꿈과 밤은 잠과 함께 흘러갔다. 불안을 의탁할 곳은 없다. 생을 머금은 아침은 독을 품은 풀과 같다. 손과 발을 깊숙이 담근다. 현실의 수족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기에 온 힘을 다해 붙어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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