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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존재 Mar 26. 2020

흐르는 상실

뱀의 산문

1. 머리를 흐르는 뱀이 하나 있다. 여럿 인지도 모른다. 뱀은 손 끝에 뻗어나가고 혀 끝에 뻗어나간다. 구토감이 혀뿌리에 맴돈다. 하루를 지탱할 때 힘을 주는 부분들이 까맣게 비늘로 뒤덮여가는 중이다. 풍경에 닿는 피부엔 감각이 없다. 다 타버린 듯 바삭한 잿더미 같다. 은근한 대화들 또한 그렇다. 끝부터 타들어가는 대화들은 연기로 가득 찬 인간을 만든다. 나는 어딘가로부터 그들을 뿜는다. 대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모인 연기는 태양의 온기가 나를 위로하려는 때에 그들을 물리치는 우산처럼 쓰인다. 나는 뭉글한 연기 안에 털썩 누웠다.        

  

정신적인 등락이 버겁다. 상실감은 역시 인간을 우습게 만들곤 한다. 나는 우스워지고 있다. 눈 앞의 것들을 보고 움직이고 말하는 기분들이 모조리 어색하다. 표정과 자아의 괴리를 느끼나, 자꾸 표정이 나를 이끌고 어딘가로 떠나려 한다. 나의 정체는 묘연해지고, 과잉된 행위는 곧장 후회를 부르는데도 나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괜찮다. 멀쩡하다. 멀쩡해 보인다. 메슥거리는 기분이 목을 타고 올라와 머리를 감싸 쥐는 듯 하지만, 표정은 역시 밝다. 밝다 못해, 우습다. 내게 위선이 스미는 중인지도 모른다. 말하려고 마음먹는 것들이 하나하나 사그라든다. 부서져가는 와중에도 나의 입은 많은 말을 하지만, 침묵만도 못 하다.


인간에게 있어 다른 인간은 이 정도의 위신을 차지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에 기거하여 의미를 갖게 된 타인들의 초상은, 상실로써 뜯어져 나갈 때 피와 저주를 한껏 흩뿌리고 떠나는 것이다. 과격한 결별이던 조심스러운 분리이던, 변화는 없다. 거칠게 끊겼는지 부드럽게 끊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동맥은 일단 끊겨버리면 붉은 것을 마구 토해내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의 바닥엔 그렇게 피가 고여 우물이 생기는 것이다.          




2. 뱀은 썩은 우물에서 자랐다. 뱀은 밝은 곳을 향해 기어올랐다. 식도를 길삼아 뱀은 바닥과 천정의 거리감을 몸에 동여매고 올라갔다. 배와 등이 내벽에 긁혀도 신경 쓰지 않았다. 뱀에겐 비늘이 있기 때문이다. 까슬히 붙어있는.          


창문이 보였다. 창 밖엔 인간의 길이 보였다. 인간은 본연의 길이라고 믿는 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근원적인 감정이란 것을 향하는 그의 잠언들은 머릿속에 울리고 있었다. 인간은 감정을 찾아 헤매고 있으나, 안과 밖의 표정은 지극히 달라 보였다. 안에서 바라본 인간의 표정은 묘연했다. 입꼬리를 올리는지 내리는지, 눈썹이 기우는지 곧서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굴곡이 그늘을 만들었고, 표정은 지워지듯 가려져 있었다.          


밖의 인간은 웃었다. 표면의 인간은 분명히 웃고 싶은 기분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일각의 인간은 명백히 파악할 수 없는 자신의 상태에 휘말려 있었다. 다만 그것이 조증 같은 혼란으로서 발산되는 것일 뿐이었다.       

   

뱀에겐 둘 다가 보인다. 뱀은 절망을 파악하는 데에 능숙한 것이다. 뱀은 몇 번이고 인간의 절망 안에서 심연의 감정을 통찰해내곤 했다. 뱀의 고향이 피의 우물이었기 때문이다. 우물이 그 정도의 짙고 암울한 색을 내는 데엔 인간의 절망이, 처연한 농도의 절망이 티백처럼 녹여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우물이 뱀의 알을 품을 때부터, 우려내어진 절망은 뱀에게 층층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뱀의 눈 또한 그것으로 채워졌다. 온전히 뱀의 눈과 일치하는 파동은 절망만이 풍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뱀은 알 수 있었다. 인간의 불행을 인지한다. 불행 안의 인간을, 그곳에서 춤추며 황홀한 표정을 지어야만 하는 허위의 인간을, 그리하여 겨우 짓는 표정조차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뱀은 똬리를 틀었다. 안과 겉의 간극이 흥미로워 보였다. 안의 표정은 질병처럼 겉으로 퍼지던 중이었다. 안의 가죽을 덩굴처럼 먹어치우기 시작한 슬픔이 있었다. 슬픔은 벽면을 지배하고 겉으로도 뻗어 나간다. 표면의 인간은 이내 먹어 치워 졌다.     




3. 아마 나는 그런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를 느끼길 갈망하나, 무엇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상념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생과 죽음마저 나를 붙들지 못하는 것이었다. 지상의 업 자체인 그들까지도 상실로 인해 한없이 가벼워진 나를 묶어놓지 못했다.


인간이 인간에게서 빠져나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손에 깃든 뱀이 뭔가를 부수길 바라는 것이다. 나는 밖의 것에 해를 끼칠 생각이 없지만 겉면의 나는 내가 아니다. 나를 이루고 있었으나 분명 그는 내가 아니었다. 결여는 본능과 충동으로 치환된 것이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흩어졌다. 나는 나를 외치지만 안의 표정과 마찬가지로 음성 또한 지워졌다.


상실은 우울과는 다른 것이다. 우울에겐 적어도 지도가 있다. 어떤 감정을 어디에서 대면하는 중인가에 대한 안내도가 있다. 상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상실은 본인의 상실과 같은 것이다. 마음의 나침반이 깨지는 것이다.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다 고개를 둘러보니 인도도, 차도도, 신호등도, 거리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분명 인간은 길을 건너고 있었으나, 발걸음은 이제 건너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하던 아무것도 표방하지 못한다. 자아는 힘을 잃고 흐물흐물해지며, 동작은 뻣뻣해져 목표하던 것을 잃는다.


상실의 절망은 이렇다. 길의 구성물들이 차곡차곡 쌓여 다시 거리의 풍경을 만들어낼 때까지, 상아색 배경을 등진 인간은 웅크리고 앉아 빨리 이것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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