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한잔의 여유 Sep 25. 2020

할머니가 미소녀로 보이는 기적

남 일을 내 일 같이 하는 것에 대한 고찰

아홉번째 에피소드이다.


앞서 사회적기업을 창업하게 된 큰 두가지 사건을 언급했다. 동기도 전혀 선하지도 않으며 체계적이고 거대한 비전으로 실행한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부당함'을 해소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사회적기업을 창업하고 나서 십년을 리더로 이끌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내 원천에서 나오는 가치관이 있기에 버틴 것 같다. 오늘은 그 원천인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남 일을 내 일 같이 하는 것'이 내 가치관이 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보니 내 암흑기였던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다. 배치고사를 치고 반을 배정받았다. 이경숙 담임선생님을 만났고 나를 빤히 보더니, "너 배치고사 반에서 1등 했구나. 반장 한번 해봐.!" 의례적으로 공부를 잘하면 반장을 하라고 유도하는 것은 통상적인 과정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한마디 이경숙 선생님께 쏘아붙였다. "반장하면 엄마가 학교 와야하잖습니꺼. 저희 엄마는 밤늦게까지 일을 해서 학교 못 옵니더."


며칠 지나고 야자를 끝나면 집에 와서 혼자 공부를 했다. 엄마는 밤 11시가 다 되어서 들어왔으므로 나는 알람시계처럼 엄마를 기다리며 공부를 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엄마가 오늘은 빨리 마쳤나?' 하면서 문을 열었다. 이경숙 선생님이었다. 깜짝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2005년도에 가정방문이 이루어진 것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공부는 혼자하냐며 그리고 어머니가 무슨 일을 하시냐며 나는 속으로 '참! 이상한 선생이다. 왜 나한테 이렇게 관심을 가지지?'라고 생각했다.


그 다음부터 이경숙 선생님은 나를 참 다그쳤다. 무언가를 받아오라고 하며 야자시간을 끝나고도 집에 가지 못하게 하고 무언가를 쓰게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MBC(문화방송) 청소년상을 받기 위한 지도였다. 여러번 언급했지만 그 당시 나는 그런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핸드폰도, 컴퓨터도 없어 그저 누군가가 알려주는 정보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경숙 선생님이 그 역할을 자처했다.


난 그 날을 15년이나 지났지만 생생히 기억한다. 학교 복도를 뛰는 걸 굉장히 싫어하셨던 이경숙 선생님이 복도를 뛰어오며 "인호야~"라고 했다. 영문을 몰라 멍하니 쳐다보았다. 계속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와서는 내 두 손을 잡고 펄쩍 뛰면서 "너무 잘 됐다. 너무 잘 됐다." 하면서 웃었다. 내가 살면서 본 미소 중에 가장 순수하고 깨끗했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 할머니가 미소녀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수상결과를 알지 못했지만 선생님이 확인하고 나서 너무나 기뻐서 나에게 달려온 것이다.


당시 장학금 200만원을 MBC로부터 받았다. 어머니가 특히 좋아했다. 고등학교가 의무교육이 아닌 시절에 공납금에 큰 보탬이 되었다. 어머니의 어깨에 올려진 책임감을 잠시나마 덜어주었다. 이 모든 건 이경숙 선생님 덕분이다. 과연 내가 그 분이 없었다면 MBC 청소년상이 있다는 것을 알 수나 있었을까? 그리고 설령 안다고 하더라도 관련 서류 준비를 할 수 있었을까? 컴퓨터가 없는데 어떻게 인쇄를 하나.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니 확실히 나는 그때부터 뭔가 변했다. 그건 확실하다. 그 미소를 본 순간, '나는 제자이긴 하지만 일년보면 남이 되는 사이인데.. 왜 나에게?' 이렇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남 일을 내 일같이 한다는 감정이 무엇이길래? 과연.. 무엇이길래?' 나는 그때부터 이경숙 선생님이 내게 보여줬던 그 미소가 궁금했다. 궁금해서 직접해본 것 같다. 그 느낌! 그 미소! 그것을 찾기 위해 호기심 어린 내가 택한 방식은 그대로 하는 것이었다.


미담장학회라는 사회적기업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청소년들을 만났다. 나보다 더 딱한 상황에 처한 친구들을 만났으며 어느날은 같이 울기도 했다. 그리고 현실에 굴복하지 말고 의지로서 이겨내서 결국 너라는 사람을 용기있게 세상에 보여주라고 조언했다. 그러다보니 세월이 많이 지나서 나에게 제자들이 많다.


얼마 전 내 제자가 연락이 왔다. 그 친구는 나에게 3년 간 배웠고 학창시절 왕따를 당해 방황하고 학업적으로 힘들어하던 친구였다.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으로 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려 준비 중에 갈 수 있는 대학 두군데 중 어느 곳을 선택할지 최종적으로 정해야하는데 그때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참 고마운 일이다. 내가 그 친구의 삶에 어떤 의미로 기억에 남았는지 모르겠다. 다만, 그 친구에게도 '남 일을 내 일 같이' 하면서 함께 고민해줬던 것 같다. 그 뿐이다.


그 미소!를 나도 가끔은 짓는다. 사실 굉장히 짓기 힘들다. 하다보면 실망도 많이 하고 허망하기도 하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히 다른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끔 있다! 내가 그 미소를 짓고 있을 때, 이경숙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 느낌! 그 미소! 참 기분 좋은 감정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내 존재의 의미를 각인시켜준다.





 

작가의 이전글 '욱' 성질. 그것이 문제로소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