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한잔의 여유 Oct 11. 2021

저는 앞만 보고 사는데요?

남 눈치 안 보는 독고다이로 확고한 언더독 기질 발휘

아흔아홉번째 에피소드이다.


벌써 99번째 에피소드다. 1번째 에피소드로 시작해 벌써 100번째를 앞두고 있다. 글들을 꽤나 많이 연재하게 될 줄 꿈에도 상상 못했다. 다음 글부터는 '100번째 에피소드다.'라는 식으로 숫자로 나열하려고 한다. 웃픈 고백을 하자면 예순, 칠순, 일흔, 아흔 등의 숫자 표기법 익숙하지 않아 한번 순서가 꼬인적이 있었다. 숫자로 표현해서 100번째 이후부터는 에피소드 넘버링을 하고자 한다. 브런치에 연재하는 글들을 익는 구독자들이 내 글로나마 조금이나마 웃음, 희망, 공감을 얻고 갔으며 좋겠다. 그것 이외에는 난 바라는 것이 전혀 없다.


난 독고다이에, 언더독 기질이 타고났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 불안불안함이 걱정되어 많이 안부를 묻지만, 내 스스로는 그다지 걱정은 없다. 어차피 하나도 없이 시작했고 무언가를 해내고 만들어내는 것에 이골이 났다. 그저 아이디어, 조직으로 발산해내고 자금을 끌어와 붙이면 어느분야든 해결책이 구현된다. 하필 그 분야가 '언더독'스러운 분야라 엄청난 돈은 벌지 못했지만 남들의 시선보단 내 의지와 결정으로 살아왔다 자부한다. 내가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시간이 날때마다 생각해본다. 타고난 기질인지.. 아니면 사건들이 쌓이며 내가 그렇게 변한건지.. 아직은 솔직히 판단할 순 없다. 하지만 그런 기질이 보였던 사건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중학교 시절 두발 단속' 대처다. 이 에피소드를 읽고 돌아이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게 내 독고다이, 언더독 기질을 키워주는 대처와 반응이 아니었을까 싶다. 간단히 그 에피소드를 풀어 본다.


내가 졸업한 중학교는 '두발 단속'을 너무나 심하게 했다. 사춘기인 나로썬 조금이나마 머리를 기르고 인근 여중생들에게 잘보이고 싶었는데 언감생심이었다. '두발 단속'은 엄격해서 일단 사무라이(학생주임)에게 걸리면 바리깡으로 뒤에 땜빵을 두세개 내버렸다. 그걸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최대한 학교를 일찍 가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걸 택했다. 한동안 단속을 피하다가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 사무라이(학생주임)에게 걸렸다. '으아...' 머리가 잡히고 뒤에 땜빵내는 느낌을 마주했다. 교실로 들어가 화가 나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아니 땜빵을 낼 정도로 내가 잘못한거야?' 해도 너무한 두발 단속에 대한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뒤 나는 그냥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빵이 있는채로 그냥 다녔다. 한번은 내게 누군가가 물었다. "그.. 머리 뒤에 땜빵이 있는데?" 내 대답은 이랬다. "괜찮아. 나는 앞만 보고 살아서 뒤는 내가 안 보여. 그러면 됐지." 얼마 더 지나 아침 조회를 하는데 사무라이(학생주임)가 나를 툭 치더니 "너, 조회 끝나고 남아"라고 무서운 목소리로 다그쳤다. 조회 끝나고 남은 내게 돌아온 건 모래 운동장에서 두손깍지를 끼고 엎드려뻗히라는 체벌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악물고 버텼다. 두손깍지에 작은 돌맹이가 긁히니 피가 나고 엎드려뻗혀 자세가 힘들어 땀이 나니 그저 입 밖으로 욕만 나왔다. 약간 호러적인 느낌이 나겠지만 내가 당시 생각해봐도 제3자였으면 공포를 느낄 수 있겠다고 솔직히 생각한다. 머리를 자르겠다고 말하기가 왜 그렇게 싫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나서 또 머리를 안 자르고 그대로 다녔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 뒷머리가 많이 길러 땜빵 자리를 덮어서 주변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했다. 나중에서야 진짜 머리가 많이 길어 미용실에 갔을 때 미용선생님께서 "학생. 이게 뭐야?" 라고 물은 정도가 다였다. 그 후로 혼자만의 느낌일수도 있지만 사무라이(학생주임)는 유독 내 두발에 관해서는 그리 터치하지 않았다. 최소 독한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앞만 보고 산다. 남들 눈치나 시선을 최대한 안 보려고 한다. 몇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비교로 인해 삶이 피폐하지않다는 것"과 "선택을 하는데 고려변수가 적다는 것"이다. "비교"는 만병의 근원이다.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올바른 비교는 타당하나 대부분 나와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 사람들과 비교를 하면서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내겐 최소 그런 느낌은 없다. 그냥 내 길을 갈 뿐이다. 남들과 비교하며 투정을 부릴만큼 시간도 여력도, 흥미도 없다. 앞만 보고 가는데만 힘들어 죽을 것 같다. 또한 "선택"을 하는데 고려변수가 남들보다 상대적으로 적어 빠른 의사결정, 주체적인 의사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선택은 무언가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순 없다. 그건 비현실적이며 비합리적이다. 남들의 시선이 절대 다수로 내 선택의 결정권을 좌지우지한다면 그것만큼 불행할 수 없다. 선택하고 포기한 것에 대해 내 스스로 책임지기만 하면 된다. 처음에 완전이 0점에 가까운 선택으로 자괴감을 느낄 순 있지만 그게 습관이 되고 경험이 쌓여가다보면 선택하는데 합리성을 높일 수 있다. 우리 인생 자체가 평생 선택의 연속이자 포기의 연속이다.


사는데 앞만 보고 살아도 힘에 부칠 정도로 바쁘고 힘들다.

그러니 남 눈치 크게 보지 말자. 그럴 시간이 있다면 사랑하는데 집중하자.!

그러기에도 24시간이 모자랄만큼 바빠 죽겠다.




작가의 이전글 '송곳' 드라마를 다시 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