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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Oct 19. 2021

진정으로 독립하는 순간

냉장고 음식관리는 '내 일이다.'라고 깨닫는 그 시점

102번째 에피소드이다.


앞으로 '독립'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유명 강의컨텐츠를 접하다보면 '독립'에 관한 중요성을 많이 언급한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자신이 진정을 원하는 꿈을 성취할 수 있다는 식의 레퍼토리가 진행되는데 여기서 '독립'의 순간을 정의해보라고 하면 쉽지 않다. 그저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라고 말하기에는 '독립'이란 단어를 온전히 담아내기엔 무언가 부족해보인다. 그러면 '독립'은 어떤 상태로 정의할 수 있고 그 상태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론적으로는 경제적 독립과 정서적 독립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다면 최고의 선택이다. 간섭을 넘어 내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정서적 독립까지 동시에 이루어낼 수 있다. 그래서 청소년시기~청년시기에서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최대한 빨리 하라며 독려하는 편이다. 하지만 누군들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저 경제적 독립이 어려울 뿐이지..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정서적 독립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건 예를 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용돈은 30만원 받는 청소년 A, B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경제적으론 부모에게 독립하지 않았지만 정서적으로 독립한 A와 그렇지 못한 B라면 동일한 상황에서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A와 B는 각각 오늘 30만원의 용돈을 받은 상황에서 평소 가지고 싶었던 태블릿PC가 할인하여 28만원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상황에서 A는 일단 태블릿PC를 사면서 '앞으로 남은 한달을 어떻게 버틸지를 고민'하고 B는 동일하게 태블릿PC를 사면서 '엄마한테 어떻게 잘 말하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건 굉장한 차이가 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진 못하더라도 정서적으로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 A와 같이 행동할 수 있다. 이건 부모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깡다구있게 버티냐의 문제로 치환된 것이다. 알바를 할 수도 있고 에라이 모르겠다고 하며 굶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건 그들이 가진 가치관과 철학에 따라 행동양식이 달라진다. 그러면 된다. 각자 책임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경제적 독립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청소년시기~청년시기에는 A와 같이 부모로부터 정서적독립만 하길 적극 권장한다.


여기까지는 이론이다. 이론 이상의 무언가가 더 있다.

왜냐? 나는 이론은 빠삭하며 실제로 대학입학 후 과외 등으로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은지 오래였다.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녔고 과외로 용돈치레는 충분히하고도 남았기에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고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오늘 말하고자 하는 에피소드는 부끄러운 내 흑역사이자 내가 '진정으로 완전히 독립한 순간'일 것이다. 대학3학년 때 갑자기 자취를 하게 되었다. 기숙사생활만 하던 난 창업을 하기 위해 '휴학'을 하면 기숙사를 나가야 하는 줄도 잘 몰랐다... 갑자기 관생자치회 층장이 내게 방을 빼라고 안내장을 보냈다. 잠만 잘 요량으로 부랴부랴 값싼 자취방을 구해서 짐을 옮겼다. 어머니가 아들이 자취를 한다고 한움큼 반찬을 만들어보내왔다. 이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콩자반, 오징어무침, 양파 등등 식재료를 만들어 내 자취방 냉장고는 든든하게 채워졌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나는 집에서 전혀 밥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건 물을 미지근하게 먹어 전혀 냉장고에 물조차도 넣어놓지 않아 냉장고 문이 굳게 닫혔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무렵 창업을 하고 정말 일만 했기에 자취방에서 잠 자고 일어나서 나가고의 반복적 행위만 하는데도 체력을 고갈되었다. 밤에 일을 마치고 들어왔는데 그날만큼은... 뭔가 냉장고 문을 열어봐야 할 것 같았다.. 정말이다. 그날은 뭔가 냉장고 문을 열지 않으면 정말 큰 사단이 날 것 같았다. 냉장고 문이 근 두달만에 열렸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동화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콩나무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냉장고 제일 아랫단에 위치한 무언가는 생명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틈바구니를 뚫고 중간단, 윗단까지 본인 종자의 위대함을 뽐내고 있었고 악취가 코를 찔렀다. 하얀색으로 뒤덮힌 정체불명의 반찬이 '콩자반'이란 걸 인지한 건 젓가락으로 헤짚고 난 후였다. 냉장실은 내가 덕지덕지 넣어놓은 물건들이 냉장기능 버튼입구를 막아 전체적으로 얼음이 뒤덮어 '겨울왕국'이 된 상태였다. 새벽까지 다 치우고 간다고 밤샘은 불가피했다.


왜 그랬을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집 냉장고는 항상 깨끗히 정리정돈되어있었다. 그래서 냉장고 음식관리는 내 몫이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있었고 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너무나 상식적이게도 부지런한 어머니는 생업으로 바쁜 와중에서도 평생을 냉장고 음식관리를 해오셨다. 어머니의 일로만 치부했던 냉장고 음식관리는 이제 내 일이었다. 그게 '자취'란 말 뜻의 진정한 의미였고 더 나아가 내가 '진정한 독립'을 한 순간이다.


'내 일이다.' 그전까지는 무심켤에 아니면 안일하게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들을 '내 일'이라고 인지하고 하나씩 내 삶 속으로 가져오는 것! 그것이 앞서 말한 이론적으로 경제적 독립이니, 정서적 독립이니 논하는 것 이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 '책임감있고 성숙한 독립'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나는 상담을 해주는 청소년들에게 대학을 타지로 가서 자취를 해보라고 권하는 편이다. 그러면 느끼는 점들이 상당히 많아지고 '내 일이다.'라는 관점이 좀 더 쉽게 와닿고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저절로 생기게 된다. 그것만큼 성숙할 수 있는 시기가 그리 많지않다. 부모로부터 독립! 해야지. 하지만 제대로 책임감있고 성숙한 독립을 모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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