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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Nov 02. 2021

노동시장 구조에 관해

한번 즈음 냉정히 고민해볼 노동시장 구조 사항들

112번째 에피소드이다.


비정규직들의 처우개선 문제는 내 '욱성질'을 돋게하는 주요 요소이다. 우리 엄마가 평생을 바친 비정규직 시장은 부당함, 그리고 불합리함의 산물이었다. 절대 다수의 경우가 노동자들이 약자이다. 생업이 달린 문제에 직면하면 자존심, 두려움은 온데간데 없고 생존을 위한 투쟁만 남는다. 나도 그 현실을 옆에서 직면해봤기에 충분히 느낌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기업가로서의 삶을 살았고 그리고 여러 기업들의 컨설팅을 해주면서 '균형감각'을 키우는 아젠다 설정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다. 앞으로 제기하는 물음은 아직 완전히 정리된 생각은 아니며 그렇기에 생각이 짧고 누군가의 삶을 너무나 쉽게 생각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하지만 최소 내가 이전에 보고 느꼈던 감정, 그리고 내가 앞으로 살아가고자 도전하고 있는 사회적경제 전문 변호사의 삶은 그리 절대 가볍지만은 않으며 그렇다고 너무 무거워 혼자만의 아집과 독백에 빠지지 않는다.


나는 노동3법 중에서 '파견법'이 그리 싫을 수가 없었다. 이건 여전히 단호하다. 기본적인 원칙은 '조직이 필요해 뽑았으면 직고용을 해서 다툼을 하든, 화합을 하든 책임을 지는 것'이다. 파견의 순기능을 면밀히 고민을 해봤지만 잘 모르겠다. 그저 비용을 아끼겠다는 기업의 신념과 함께, 노조 문제 발생시 파견법에 따라 파견직은 파견업체에 가서 따지라는 회피성 의도가 다분하다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것이 맞다. 왜냐하면, 기업은 비용을 줄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니깐 말이다. 시장자본주의 논리에서 이 말을 해서 너무 감성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너무 치사하고 비겁하다. 최소 이렇게는 하지말자는 신념같은 강박관념이 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도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다. 실제로 기업가로서 직원 근로자분들의 인사담당을 해봤다. 상당히 골치 아프고 맘 상하고 배신감마저 느낄 때가 한두번 아니다. 이십대 초중반에 CEO로서 누군가를 고용한다는 건 자부심이 아닌 공포 그 자체다. 매월 월급날이 왜 이리 빨리 오는지, 나는 월급도 못 가져가지만 직원 근로자분들은 절대 밀리면 안된다. 하루라도 밀리면 참지 않고 바로 노동청에 신고가 들어가 소환되고 소명해야 된다. 안철수 씨가 이전에 자신이 의사를 그만두고 안랩을 창업했을 때, 외로웠던 일은 직원 모두가 퇴근하고 혼자 남아 딱풀로 영수증 붙이는 일을 한 것이라 말했다. 그때만큼 안철수 씨의 진심이 내게 전해진 적이 또 없었다. 나 역시 그랬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동지라고 생각했지만 냉정히 말해서는 근로자라 경계선이 생기면 그것보다 서운한 것이 없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은 내 능력을 쏟아붓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근로자다. 더 붙일 것도 더 뺄 것도 없다. 그 출발점부터 출발해야 대화가 된다.


굉장히 도발적인 아젠다를 던지면 크게 두 가지다.

기업 측면에서는 사내 규칙으로 존재하는 '겸임금지 조약'을 없애거나 크게 완화하는 것이다. 국가차원에서는 4대 보험을 한군데에서만 드는 것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예외적으로 4대 보험을 2군데에서 들수는 있음. 단,한 기관에서의 소속된 비율이 압도적인 우위를 입증해야 함) 이를 제기한 이유는 사실상 N잡러의 시대로 접어들었기에 친 노동적인 정책의 일환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명의를 빌려, 아내의 명의를 빌려 가게 또는 창업을 하는 실소유자들이다. 그들은 원칙적으로 모두 법을 교모히 피하고 있다. 등기 대표에게 회사의 사정을 물어본다면, 회피를 하거나 전화를 끊어버릴 것이다. 또한, 플랫폼노동자들이 많아지고 프리랜서 직종을 가지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이건 모두 '돈' 때문이다. 기업의 월급만으로는 모든 삶을 영위할 수 없으니 법망을 피해 뛰는 것인데 이것보다는 되레 '겸임금지 조약'을 완화시키는 편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기업이 근로자의 삶을 평생 책임질 수 없다면 (없는 것이 현실) 완화시켜 줄 수 있는 규칙 등을 전향적 태도를 취하는 것도 고려해볼만하다. 단, 호봉제보다는 성과주의의 인사시스템으로 근무태만으로 이어지는 것이 방지해야 한다. 하지만 충분히 앞으로 노동시장 구조에 맞는 아젠다일 수 있다.


노동자 측면에서는 양보해야 하는 면이 있다. 위와 같은 아젠다가 실현되어 좀 더 다양한 기회모색을 할 수 있다면 한편으로는 계약직이 다수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현재 정규직은 노동시장 구조에서 다소 모순적인 측면이 있다. 국내에서만의 경쟁이라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이미 탈국가화, 글로벌 경쟁화는 시작된지 오래이다. 단순히 지분과 본사+공장의 분포형태만 보더라도 굴지의 대기업들이 과연 어느 국가에 속해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애국심은 없으며 생존과 경쟁 속에서 기업을 린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파견직은 말도 안되지만 계약직은 현실이라고 본다. 소수의 정규직, 그리고 다수의 계약직의 구조 속에서 언제든지 몸집을 변화할 수 있는 기업형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기업차원에서는 당연하다. GM 군산공장, 대우조선의 파산 등에서 기업의 가진 영향력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기업과 노동자는 사실 양립 불가능하다.

한쪽 편을 든다면 반대편은 자빠져버린다. 두가지를 버무려 제시하는 '균형감각'이 발휘될 수 있다면.. 하지만 또 이런 단편적인 생각은 누군가의 이익으로, 또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나타난다. 인간의 삶은 정말 보기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다. 하지만 미래사회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 노동시장 구조에 관한 고민은 필요하다. 앞으로는 로봇과의 노동시장 쟁탈전을 준비해야 한다. 그 전에 인간 간의 노동시장 구조를 중재할 필요있다.


누가 비판을 하더라도 솔직한 심정으로 논의하고 쌍방이 타협해야 할 논쟁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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