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한잔의 여유 Nov 20. 2021

술을 권하는 사회

술이 단합력의 매개체가 아닌 즐거움의 매개체가 되길 바라며

119번째 에피소드이다.


우선 '술을 권하는 사회'는 현진건 작가님의 단편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그 소설 속 주인공은 술만 계속 마시는 구제불능한 한량처럼 묘사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그가 술에 쩔어 살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사회적 상황이 어렴풋이 언급된다. 물론,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었다면 '술'에만 의지하며 시대를 비관하지 않고 맞서싸우는 행동을 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술을 권하는 사회는 시대를 넘어 현대사회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코로나의 정책기조가 '위드코로나'로 바뀌며 대한민국 특유의 회식문화가 다시금 슬금슬금 돌아오고 있다. 내가 이전 에피소드 속에서 크게 두가지를 언급했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생활공동체', '코로나 이후 사회적자본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라는 에피소드가 간접적으로 연상될 수 있지만 전혀 성격이 다르다.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나는 생활공동체'에서 막걸리를 언급한 건 '소통'을 하기 위해서 가볍게 기울이는 '술'을 말한 것이고 '코로나 이후 사회적자본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속에서 사회적자본을 회복하는데 조직에서 단합력 강화를 위한 대한민국 회식문화는 포함하지 않는다. 즉, 사회적자본을 회복하기 위해서 특유의 대한민국 회식문화는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네트워킹을 해야 하는데, 전형적인 네트웍드링킹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직장을 여럿 옮기면서 일했다. 새로운 근무환경, 연봉, 그리고 기업문화 등에 적응하기 위해 몸을 재빨리 움직였다. 생존을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뛰어다니는 '나'지만, 단 한가지 고려하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 특유의 회식문화가 존재하는 곳이면.. 오래 다니지 못할 것이다. 술을 즐거움의 매개체가 아닌 단합력의 매개체로 확신하며 '술을 권하는 기업'은 버틸 재간이 없다. 도대체 '술'을 죽어라 마셔야하는 이유는 날 설득시키지 못했다. 정신력? 끈기? 아마 모르긴 몰라도 술자리를 마지막까지 지키는 사람보다 뛰어날 것이다. 버티기는 내 주특기이자 재능이지만 그걸 새벽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 무의미하게 할일도 없이 그냥 앉아만 있는 걸로 낭비하긴 너무 아깝다. 그 시간에 운동하고 샤워하고 자는 편이 훨씬 더 낫다. 또한 술을 먹으면 자기 전에 머리가 아프고 다음날 아침에도 머리가 아프고 하루종일 속이 안 좋다. 예상된 고통을 왜 참아가며 느껴야 하는지 설득이 전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 저녁 먹고 맥주 한잔 하다가 먹은만큼 머리속으로 계산해서 현금으로 올려놓고 "저 갑니다. 내일 뵙겠습니다."하고 가는 편이다. 그걸 아니꼽게 보는 분들은 날 싸가지없다고 불렀다.


술은 '즐거움'이 있다. 하지만 누구랑 마시느냐,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마시느냐가 관건이다. 기업 동료들과도 정말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술자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특유의 회식문화는 '술'을 단합력의 매개체로만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즐거움'이 빠진 채로 말이다. 그래서 보통 하는 것이 회식 시작 전에 출석체크다. '즐거움'이 아니라 회식을 가는데 회사구성원 중에서 누가 회식에 안 가느냐가 중요한 지점이 된다. 회식을 빠지면 조직에 애착과 충성심이 없는 자, 사회성이 떨어지는 자로 쉽게 규정된다. 그게 싫을 뿐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술자리'는 하루가 끝나 집에 와 러닝머신 뛰고 나서 씻고 나왔을 때, 카톡으로 연락오는 반가운 이들의 연락이다. "맥주 한잔 할까?" 그 물음에 옷입고 바로 달려나간다. 그때의 '술'은 '즐거움'이다.

  


작가의 이전글 만난 분들, 연락처 정리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