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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Nov 29. 2021

통큰치킨 (10년 전 쓴 글)

경제적자유를 얻고 난 후에는 전업 작가로 살고 싶다.

123번째 에피소드이다.


항상 경제적자유를 얻고 난 후부터는 전업 작가로 살고 싶다고 밝혀왔다. 그것을 위해 정말 끝임없일 일하고 또 일하고 돈을 벌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글쟁이'로 불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대단히 한량스럽지만 그 속에는 사회를 바라보는 인사이트가 있는 '글쟁이'가 되고 싶다. 십여년 전즈음 '통큰치킨'이란 대형마트가 제작한 치킨 상품이었다. 일종의 '노브랜드' 전략으로 유통마진, 브랜드홍보비 등의 기름기를 빼고 가격을 낮춘 상품이었다.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침해로 문제 제기되어 얼마 안 가서 판매를 중단하였다. 십여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무엇이 맞는지(또는 정의로운지)' 모를 정도로 시장환경은 변해있다. 그 시점에 한량스럽지만 쓴 글이다. 스물세살에 사회를 바라보는 눈, 그리고 배경지식으로 쓴 글이라 미흡하다. 우연히 컴퓨터 파일을 정리하다 발견한 '통큰치킨'이란 단편소설은 서른세살의 내가 스무세살의 나에게 한수 배우는 시간이 된다.


<통큰치킨>

양계장 양 씨가 닭들에게 다가가서 쪼그려 앉았다. 이놈의 닭들은 정말 닭대가리들인지 주인도 못 알아보고 정신없이 달려 들어댄다. 양계장 양 씨에게 잡힌 닭 한 마디는 양 씨의 호된 매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간다. 양계장 양 씨는 뒤돌아 앉아서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다. “후,...” 한숨을 내쉬는 양계장 양 씨의 입가 주위로 담배 연기가 새어나왔다.

 

양계장 양 씨는 어렸을 적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양계장이었다. 아무래도 ‘양’이란 성이 한 몫 했을 것이다. 중학교 때까지 양계장으로 불렸던 양계장 양 씨는 고등학교를 갈 형편이 못 되는 걸 알고 밥 벌어 먹을 것을 생각하다가 문득 양계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생 들어왔던 별명이 왠지 모를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양계장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양계장을 하면서 힘들 때마다 아버지를 원망했고, 친구들을 원망했다. 아버지의 성이 ‘양’씨가 아니었더라면 양계장이라고 불리지 않았을 것이고, 친구들이 나에게 양계장이라고 부르지 않았더라면 분명 다른 것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왕이면 ‘변’씨여서 변호사라고 불리었던지 ‘대’씨여서 대통령이라 불리었더라면 양계장 양 씨의 운명을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령 가까운 예를 들자면 ‘고’씨여서 고물상으로 불리던 친구 놈 하나도 정말로 고물상을 해서 지금은 이 근방 동네에서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다. 고물상 하던 장소가 하필 개발지역 도로확장 구역으로 들어가서 떼돈을 벌었던 것이다. 가끔 동창회를 나갈 때 거들먹거리는 친구 놈의 생각에 갑자기 양계장 양 씨는 얼굴이 찡그려졌다. 


얼마 전부터 양계장 주위로 마을에서 보지 못한 젊은 사람들이 보였다. 처음에는 닭 도둑인 줄 알고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양계장을 지키고 있기 일 수였다. 그런데 유심히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던 양계장 양 씨에게로 갑자기 젊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덩치좋고 험악해보이는 사람이 양계장 양 씨에게 다가와서 물어볼 것이 있다며 물 한 잔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속으로 잔뜩 겁먹은 양계장 양 씨였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알겠다며 물 한 잔을 덥석 주었다. “저... 무서운 사람 아닙니다. 그저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는 겁니다.” 덩치좋은 젊은이가 양계장 양 씨의 마음을 읽었는지 안심하라는 듯 조곤조곤 말을 해왔다. “아.. 그라면 뭐 땜시 그러는교?” 양계장 양 씨의 물음에 덩치좋은 젊은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답하였다. “아.. 저는 인터넷상에서 활동하는 논객입니다. 어... 말이 어려우시다면 그냥 나라에서 이뤄지는 일들에 대해서 맞다 틀렸다를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통큰치킨’이라는 치킨이 나와서 사회에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진상을 파악하고자 양계장을 방문해서 실례인 줄은 알지만 도매업자들과 거래량과 거래금액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위로 타고 올라가다보면 지금 현재 치킨프랜차이즈 소매업자들이 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고 있는 건지 아니면 대형마트가 정말 물량을 앞세워서 주위 상권을 죽이는 일인지 알 수 있을 테니깐요. 그래서 실례가 되시지 않는다면 그런 내용을 저희에게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한 동안의 어려운 말들이 이어지는 통에 정신이 혼미해진 양계장 양 씨에게 마지막 부탁의 말은 알아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본의 아니게 그것이 승낙의 표현이 되고 말았다. 앞에서 덩치좋은 젊은이가 감사하다는 말을 해대면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안에 가서 장부를 가지고 와달라고 했다. 일단 자리를 피해야 겠다는 생각이 앞선 양계장 양 씨는 양계장 한 편에 마련된 창고로 들어갔다. 무슨 사이비단체의 교주라도 되는 모양인지 덩치좋은 젊은이에 한동안 정신이 팔려 있었다. 물론 여태껏 혼자 살고 있는 양계장 양 씨에게 ‘장부’라고 하는 돈의 정확한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사랑해줄 부인과 자식들이라도 있다면 또는 양계장을 확장해서 갑부가 되고자하는 큰 포부가 있었더라면 그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것이 양계장 양 씨의 일이었다. 다만 그때그때 필요한 것들을 적어놓은 종이 쪼가리가 있다는 사실이 생각나서 창고 서랍을 뒤적이고 있었다. 양계장 양 씨는 찾아낸 쪼깃쪼깃한 종이쪼가리들을 양 씨의 바지에 대고 막 문질러대어서 펴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얼마간 시간이 흘러서 모아놓은 종이 쪼가리들의 양을 보고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갑자기 양계장 양 씨는 빈 종이에다가 얼마 전에 거래했던 내용들을 마구 적기 시작했다. 정확한 것은 잘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기억은 나서 적지 않은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땀이 양계장 양 씨의 런닝구를 흠뻑 적신 후에 창고를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덩치좋은 젊은이에게 갔다. “아.. 젊은이. 이것이 말이오. 내가 장부라카는 걸 별도로 만들지를 않소. 그래도 대강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도움은 될 꺼요.”

양계장 양 씨가 내민 것을 받아든 덩치좋은 젊은이는 한 동안 양계장 양 씨의 말에는 대꾸도 안하고 내용들을 훝어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훝어보기가 대강 끝났는지 미소를 지으면서 덩치좋은 젊은이가 양계장 양 씨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양계장 양 씨는 오랜만에 만나본 친절이라 놀라서 그런지 똑같이 젊은이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양계장 양 씨에게 이런 친절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양계장업자라는 직업은 언젠가부터 시작된 인간평등이라는 명제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천대받는 직업이었다. 거래하는 자들은 항상 대학이라는 문턱을 밟아본 자들이라서 그런지 가방끈이 짧은 양계장 양 씨에게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요즘 시세가 어떻다느니 코스피지수가 어떻다느니...” 해대면서 무시하다는 말투로 자신에게 유리한 거래를 성사시키곤 했다. ‘참! 더럽다’는 생각에 닭똥을 퍼서 얼굴에 갈겨주고 싶었지만 그만한 고정된 거래업체가 없다는 생각에 참아왔다. 그런 양계장 양 씨에게 한 사람의 인간으로 친절하게 대해주는 덩치좋은 젊은이에게 고마웠고, 잠시나마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어떠한 것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음....  근데 거래가격에 대한 불만은 없으세요?” 덩치좋은 젊은이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해하는 양계장 양 씨에게 젊은이가 웃으며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어.. 그러니깐 가령 예를 들면 내 옆에 양계장은 조금 더 비싼 가격으로 하는데, 아니면 요즘 닭고기 가격이 오르는데 왜 닭의 원래 가격은 왜 이 모양인지? 하는 고민 있으세요?” 덩치좋은 젊은이의 질문에 한참을 생각하던 양계장 양 씨는 “아.. 그런기요. 내가 무슨 세상 물정을 알단가요. 그냥 어려운 말 해대는 거래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해서 팔고 남은 돈으로 하루하루 입에 밥만 붙이면 되는기라. 그런 불만은 없습니다.” 양계장 양 씨의 말이 재밌다는 듯이 입가에서 웃음이 멈추지 않던 덩치좋은 젊은이가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께서 주신 정보는 사회에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그럼 이만 저는 가 보겠습니다.” 하면서 자리에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 조금 먼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젊은이들 무리에게로 가보았다.

 

양계장 양 씨는 오랜만의 대화가 재밌었던지 입맛을 다시면서 돌아섰다. 그날 하루 일을 조금 빨리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양계장 양 씨가 방향을 틀었다. 읍내로 나가기로 한 것이었다. 덩치좋은 젊은이 때문에 많은 생각들에 잠겨서 그런지 오늘따라 더욱더 외로웠다. 양계장 양 씨에게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복잡한 서울생활이 싫증나서 내려왔다고 했다. 읍내 다방에서 일하는 그 여인에게는 시골처녀들에게서 나는 쾌쾌묵은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 때 양계장이 ‘조류독감’이다 뭐다해서 한창 바쁠 때였는데 이웃 조 씨가 좋은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해서 억지로 끌고 간 것이 화근이 되었다. 생전 처음 보는 여인의 립스틱 향기에 매혹이 되어서 단골 손님이 되고 말았다. 양계장 양 씨는 하루가 멀다하고 가면서 그 여인에게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여인은 분명히 양계장 양 씨와 있을 때는 포근함 그 자체이다. 양계장 양 씨의 투박하고 단단한 팔에 안기어서 아양을 떨면 양계장 양 씨는 숨이 넘어갈 듯 하였다. 그러다가 시킨 차를 다 마시고 일어나면은 그 여인은 토라진 듯이 냉정하게 돌아서버린다. 그리곤 옆의 테이블로 이동하여서 다른 사람에게 양계장 양 씨와 똑같이 아양을 떨어댄다. 처음에는 그 여인이 마음씨가 넓어서 양계장 양 씨보다 못 생긴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한 날 읍내에서 회사를 다니는 양복을 입는 튼실한 젊은 총각에게까지 그러는 것을 보고 양계장 양 씨는 자신의 사랑을 잠깐 의심했다. 다른 또 한 가지는 사람들과 모여서 그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이다. 분명히 그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이 생각되는데 저마다 다른 이름을 대면서 이야기한다. 양계장 양 씨가 알고 있기로는 그 여인의 이름은 ‘백화’였다. 그때 양계장 양 씨는 백옥처럼 하얀 피부가 꼭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웃 조 씨는 ‘미자’로, 건너편 집 남 씨는 ‘화자’라고 불러댔다. 가끔 이야기를 하다가 정신이 없을 때도 있었지만 결국에 다다르는 것은 양계장 양 씨와 그 여인과의 사랑에 확신이었다. 그렇게 단골 손님으로써 사랑을 키워가던 양계장 양 씨는 이제는 그 여인과 같이 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래되긴 하였지만 십여년 전에 친척결혼식 때문에 장만한 양복을 들쳐입고 나름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장미꽃을 사가지고 그 여인에게 찾아갔다. 양계장 양 씨가 대뜸 장미꽃을 들이대며 “저랑 같이 한 번 살아주십렵니꺼?”하자, 그 여인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한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여인의 웃는 모습에서 양계장 양 씨는 잠시나마 승낙의 표현인 줄 알고 같이 웃었다. 조금 뒤에 여인의 웃음소리가 멈추고 입을 여는 그 찰나의 시간이 양계장 양 씨에게는 어떠한 돌덩이보다 무겁고 어떠한 시간보다 길게 느껴졌다. “사장님, 음... 혹시 차 가지고 계세요?” 물어왔다. 뜬금없는 질문이기는 했지만 양계장 양 씨는 얼른 창문 밖으로 보이는 십년 째 된 포터를 가리켰다. “음.. 그러면 사장님, 정확히 무엇을 하시는 분이에요?” 또 뜬금이 없었지만 “아.. 나는 말인교. 저짝에서 양계장을 하고 있소.”라고 말을 했다.

‘양계장’이라는 말에 미간이 쫙 주름지는 그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하는 말은 양계장 양 씨에게 비수를 꽂았다. “음.. 사장님..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양계장 사장님.. 참.. 양계장만 아니었으면 한 번 평생 저를 밥 먹여주고 비싼 것도 사 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거 거절해도 되는 거죠?” 하면서 냉정하게 돌아섰다.

양계장 양 씨는 돌아선 여인이 밉다기보다는 아버지가 미웠고, 친구들이 미웠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쳐준 여인은 양계장 양 씨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한참 동안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어느새 읍내에 도착했다. 양계장 양 씨는 소주 한잔을 하려고 허름한 단골 술집으로 들어갔다. 소주 한 병을 따면서 무언가 생각이 난 듯이 양계장 양 씨가 갑자기 단골집 이모에게 소리를 쳤다. “아.. 이모.. 골뱅이무침 말고 닭똥집으로 바꿔줘요.” 말을 마친 양계장 양 씨는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 홀짝홀짝 마셔대기 시작했다.

얼마 전 나간 동창회에 갔다가 우연치 않게 맛본 ‘닭똥집’이란 놈이 기가 막힌 맛을 가진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어렸을 적에는 가난해서 닭고기는 구경조차 못해봤고, 양계장을 하고 나서부터는 그래도 자식 같은 닭들인데 그 놈들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닭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던 양계장 양 씨였다. 하지만 그날 먹은 ‘닭똥집’이 계속 생각나서 가끔씩은 술 한 잔 하면서 먹게 되었다. ‘내는 너희 살을 먹는 게 아니다. 알겠나?’ 하면서 오늘도 안주로 나온 닭똥집을 집어먹었다. 그 동안 몸이 힘들었던지 오늘 따라 소주가 잘도 넘어가는 양계장 양 씨였다. 술에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이모를 불러서 계산을 끝낸 양계장 양 씨는 자리에 일어서서 문을 열고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는 항상 예정되어 있는 목적지를 향해서 걸어갔다. ‘철커덩’ 문을 여는 소리가 가게에서 졸고 있던 가게주인을 깨웠다. “아.. 행님! 오셨는교? 오늘도 그거?”하면서 가게주인이 양계장 양 씨에게 가그린 한 통을 꺼내준다. 술에 취해서 기분이 오를 때로 오른 양계장 양 씨는 “야! 역시! 동상이 내 맘을 어째 그래 잘아노. 고맙디! 얼마고?” 하면서 지갑을 꺼내 계산을 한다. 양계장 양 씨는 닭똥집을 먹고 나서 그대로 양계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왠지 모를 미안함이 엄습해 왔다. 혹시나 양계장 양 씨의 입에서 나는 냄새가 닭에게도 느껴질까 봐 두려웠다. 정말 그렇게 되면 닭들마저 자신한테서 떠나갈 것 같았다. 양계장 양 씨는 거리 한 복판에서 가그린 한 통을 연거푸 입에 넣고 가글을 해댔다. 개운한 기분이 들었고, 차츰 죄책감마저 사라져갔다.


이제는 정말 양계장에 한 번 들렀다가 집으로 가려고 출발하려 하는데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몸매 좋은 아가씨들이 앞에서 춤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양계장 양 씨의 발걸음은 이미 거기로 향하고 있었다. 노란색의 짧은 치마와 짧은 상의는 벌건 대낮에 미끈한 다리와 군살없는 허리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쳐다보기에 여념이 없던 양계장 양 씨에게 몸매 좋은 아가씨 한 명이 다가와서 “사장님, 오늘 ○○마트 개업했어요. 들러보세요.”하면서 양계장 양 씨의 발에 앵겨서 놔줄 생각을 않는다. 양계장 양 씨는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내심 기분 좋은 생각에 “어...어...”만 해댈 뿐이다. 노란 옷을 입은 몸매 좋은 아가씨의 부추김에 정신을 차려보니 어떨결에 마트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벌서 노란 옷을 입은 몸매 좋은 아가씨는 양계장 양 씨에게서 떠나버린 후 였다. 벌써 다른 사람에게가서 치근덕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씁쓸한 마음에 양계장 양 씨는 얼른 고개를 마트 안쪽으로 돌려버렸다. 한 눈에 비친 마트는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이었다. “와! 진짜 크네. 이런 가게가 왜 이런 촌구석에 들어왔노. 참 이상도 하재?” 하면서 주위를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양계장 양 씨는 별로 살 것도 없고 살 돈도 없었지만 일단은 장바구니를 들었다. 기분이라도 내보자는 속셈이었다. 과일도 팔고 과자도 팔고 없는 게 없는 세상이었다. 옆 사람의 이야기를 엿들어보니 위층으로 올라가면 가전제품에 옷까지 판다고 하였다. 세상의 모든 물건들을 다 모아놓은 듯한 곳이었다. 물론 장바구니에는 하나도 담긴 것이 없었지만 마음만은 벌써 도시사람이 된 듯 하였다. 이제는 낯익은 풍경이 양계장 양 씨 주위로 펼쳐졌다. 고기 코너에 들어선 것이었다.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들을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요즘 세상이 구제역 때문에 시끄럽다고 야단이었다. 솔직히 양계장 양 씨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어서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웃 사람들 중에 소 키우는 사람이 있다보니 내심 신경이 쓰였다. 소고기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이웃 집 강 씨가 생각이 났다. ‘강 씨란 성이 한 성격한다고 잘 알려져서 그런지 한 때는 강 씨가 마을 이장이 되면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으로 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 포부도 얼마 전에 터진 구제역 때문에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소 살리기에 여념이 없어서 마을을 돌볼 여유가 없어지고 말았다. 양계장 양 씨는 강 씨의 형편이 신경 쓰여서 돼지고기나 몇 근 사다줘야겠다는 생각에 돼지고기 코너에 가서 몇 근을 달라고 하면서 양계장 양 씨의 지갑을 열어보았다. 쪼깃쪼깃한 만원짜리 지폐하나가 한 장 있었다. 아까 술값으로 내고 남은 돈 전부였다. 갑자기 양계장 양 씨의 런닝구로 땀 한 방울이 흘렀다. 돼지고기를 비닐에 넣으면서 가격표를 붙이는 아줌마 손 밑으로 12310원이라는 가격이 보였다. 땀이 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멀찌감치 도망 가 버렸다. 양계장 양 씨 등 뒤로 “아저씨! 아저씨! 저 양반.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나 원 참.” 이라는 야유섞인 아줌마의 말이 들려왔다.

양계장 양 씨가 문득 정신을 차린 곳은 사람이 북적북적 거리는 곳이었다. 호기심 섞인 마음에 비집고 들어가서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 그 대열 속에서 한 사내가 한 손에 커다란 통을 들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양계장 양 씨는 용기를 내어서 “거. 무슨 일이오?”하면서 물었다. 그러자 한 사내가 세상물정을 그렇게 모르냐?라는 표정으로 “아저씨. 여기 통 큰 치킨 파는 곳 아니에요. 한 번 쯤은 들어봤지요?”라고 다그치듯 대답을 했다.

양계장 양 씨는 “아...예... 그거 말이오. 당연히 들어봤지. 고맙소.” 하면서 속으로는 생각을 해댔다. 순간적으로 아까 오전에 덩치좋은 젊은이의 말 중에 들어봤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거.. 얼마나 하오? 보아하니 비싼 것 같은데” 하고 물어보았더니, 사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직접 한 번 가서 가격표를 보시오.”라고 냉당하게 말하면서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 사내의 어조에 기분이 나쁠 만도 한데 양계장 양 씨에게는 어조 따위보다는 말의 의미파악을 하는 것에만 에너지를 다 소모한 듯 싶었다. 양계장 양 씨는 발걸음을 옮기어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목청껏 소리를 질러대면서 손이 왔다갔다 정신이 없는 사람들이 둘 셋 보였다. 양계장 양 씨가 그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이거 하나에 얼마인교?” “네. 손님 한 마리에 5000원입니다.” 사람들 중 한 명이 양계장 양 씨를 보면서 친절하게 말을 했지만 손은 멈추지를 않고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 모습이 양계장 양 씨에게 잠깐 침묵을 강요했다. “그라면. 한 마리 살라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교?” 양계장 양 씨의 말에 “아.. 손님 좀 많이 밀려있어서 30분 쯤 기다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라고 이번에도 손은 멈추지를 않고 친절히 대답해주었다. 양계장 양 씨는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 뒤로 터벅터벅 걸어가서 앞 사람의 뒷덜미를 쳐다보았다. 양계장 양 씨 앞에 있는 여자의 뒷덜미에 검은 점 하나가 박혀있었다. 일반적인 원모양이 아니라 약간 옆으로 퍼진 타원형이었다. 그 타원형 점이 머리카락에 가리어졌다가 다시 보였다가를 반복했다. 그 모습이 앞의 여자도 지루했던지 몸을 양쪽으로 배배 꼬는 행동 때문일 것이라고 양계장 양 씨는 생각했다. 그러다가 천장으로 시선을 돌리고 옆의 사람을 보고 땅바닥을 쳐다보았다. 그런 행동이 남들이 보기에도 정신이 사나워보일 것이라고 양계장 양 씨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고쳐지지 않는 그의 버릇이었다. 어느덧 양계장 양 씨의 차례가 되었다. “손님. 5000원입니다.”라는 판매원의 말에 양계장 양 씨는 ‘정말 5000원을 내고 이것을 가져도 되나?’라는 불안한 생각을 하면서 낡아빠진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었다.

양계장 양 씨는 치킨통을 받아들고서 자신의 코를 찌르는 맛좋은 냄새를 접하였다. 바삭바삭한 치킨의 껍질이 한번 더 양계장 양 씨의 식욕을 자극했다. 손이 저절로 가는 것을 뒤로 하고 대형마트의 문을 나섰다. 저만치에 십년지기 친구인 고물닥달이 포터가 보였다. 술을 한잔 걸친 양계장 양 씨였지만 태어날 때부터 있던 곳이라 너무나 익숙한 길이라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터를 몰았다. 포터를 몰면서도 치킨의 맛좋은 냄새는 양계장 양 씨의 포터 안에 깊게 배겨들었다. 포터를 운전하다가 양계장 양 씨는 옆자리의 치킨통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포장이 완벽하게 되지 않은 길 덕분에 포터가 덜컹덜컹거렸다. 덩달아 치킨통도 덜컹덜컹 앞뒤로 움직여댔다. 양계장 양 씨는 그런 모습에서 잠시나마 자신의 옆자리에 사람 대신 치킨통을 태웠다고 생각하니 서글퍼졌다. 사실 생각해보면 양계장 양 씨는 자신의 포터옆에 사람을 태운 기억보다는 생활필수품이나 닭의 사료를 태운 기억이 대부분이었다. 술 기운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양계장 양 씨의 얼굴에 희미하게 푸르스름한 기운이 떠올랐다.

양계장 양 씨의 원래 계획은 읍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양계장에 들렸다가 집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떤 생각에선지 먹지도 못 할 치킨을 사버린 이상 이것을 들고 양계장에 갈 수는 없었다. 분명히 닭들은 자신의 몸에 배긴 양계장 양 씨의 치킨 냄새를 알아챌 것이다. 양계장 양 씨가 다가가면 닭들마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잠깐의 생각이었지만 아찔한 것이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아이구. 그건 절대 안되야.”라며 혼잣말을 지껄이는 양계장 양 씨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꽤 굽이굽이가 심한 길이었다. 술기운 서인지 오늘따라 완만한 포터의 곡선을 보여주지 못하고 포터 바퀴에 길 가장자리의 흙을 무너뜨리는 소리를 내면서 가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양계장 양 씨의 집에서 개 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홍길이구나’라는 생각에 양계장 양 씨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정식이름은 ‘엄홍길’이었다. 양계장 양 씨가 큰 맘 먹고 들여놓은 대형 평면 TV를 집에서 처음 틀었을 때 나왔던 사람이었다. 그 대형 평면 TV는 양계장 양 씨의 네 평 남짓한 방 안에서 한 평을 차지할 만큼 기묘한 모습을 이루고 있었는데 처음 설치되던 그날은 양계장 양 씨에게는 설레임의 순간이었다. TV를 켜는 순간 보였던 ‘엄홍길’이란 사람은 양계장 양 씨에게 굉장히 멋있게 다가왔고 그 길로당장 ‘삼돌이’였던 양계장 양 씨의 개이름을 ‘엄홍길’로 바꿔버렸다. 그런 ‘홍길’이가 멀리서 짓고 양계장 양 씨를 반기며 짓고 있는 것이었다.

낡아빠진 포터가 엔진의 둔탁한 소리를 내며 양계장 양 씨의 집 한 구석 편에 멈춰섰다. 삐그덕하면서 나사의 조임새소리가 이상하게나며 포터의 문이 열리고 양계장 양 씨가 나오자마자 ‘홍길’이가 달려들었다.

“아이구. 이놈마가. 잘 있었나? 이 아부지가 니한테 줄려고 맛난 거 사왔데이.” 양계장 양 씨는 말을 마치고 포터 옆자리에 있던 치킨통을 들어서 ‘홍길’이 앞에다 놔두었다. ‘홍길’은 양계장 양 씨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치킨통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치킨통에 머리를 박고 양계장 양 씨에게는 등을 돌려버렸다.

양계장 양 씨는 그런 ‘홍길’의 행동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하늘을 보며 혼잣말을 해댔다.

“내가 말이다. 그것을 왜 샀는지도 모르겄다. 홍길아 내가 닭고기를 안 먹는 건 니가 더 잘 알고 있재? 내는 그냥 닭고기가 싫더라. 내 자식들을 어떻게 먹노? 내가 그 자식들을 식품업자들한테 팔아서 내 밥 빌어먹고 사는 놈이라도 최소한 내한테 떠나기 전까지만이라도 내가 즈그들을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줘야 안 되겠나? 그것을 내가 왜 샀는지 모르것다.

그냥 사람들 틈에 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친절한 판매원의 목소리도 좋았고 부대끼는 북적북적함이 좋았는지도 모르겄다.”

양계장 양 씨는 혼잣말을 끝내고 ‘홍길’을 쳐다보았다. 벌써 살은 다 발라지고 남은 뼈들이 마당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니도 내 자식이다. 알겄나?”하고 양계장 양 씨가 방문을 열더니 윗도리 옷을 마을행사가 있을 때 받은 것으로 바꿔입고 다시 집으로 나섰다. 양계장으로 가기위한 것이었다. 그 전 옷에서는 치킨기름내가 났는데 갈아입은 옷에서는 닭똥냄새가 풍겨댔다. 양계장 양 씨는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어대면서 양계장 양 씨의 취기를 한껏 가라앉혔다. 붉으스름했던 양계장 양 씨의 얼굴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돌아왔다. 길가 주위에 널브러져 자라있는 풀냄새가 양계장 양 씨의 코를 찔러댔다. 저절로 양계장 양 씨의 입에서 흥얼거림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랑밖에 난 몰라~♬” 양계장 양 씨는 후렴구밖에 기억나질 않아서 똑같이 반복해서 불러대었다. 노래에 질려갈 무렵 양계장에 다다랐다. 닭들은 자고 있는 모양인지 양계장 양 씨의 인기척에서 고요하였다. 양계장 양 씨가 닭들의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만큼 접근했을 때야 비로소 닭들도 호들갑을 떨면서 분주히 움직여댔다. “잘 있었냐? 그래도 느그들은 나를 반겨주기는 하는구먼. 역시 헛 키운 게 아니여. 오늘 이 아부지가 좀 기분이 울쩍해서 한 번 밤에 와 봤다. 다 잘들 있네. 이제 다시 가봐야겠구먼.” 양계장 양 씨는 자신이 말하고도 낯뜨거워던지 얼른 고개를 돌리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와서 방 앞에 있는 수돗가에서 씻을려다가 오늘은 왠지 씻지 않고 자고 싶었다.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이불 속에 고린내나는 발을 쓱 집어넣었다. 보드라운 이불에서 나오는 시원한 기운과 양계장 양 씨의 고린내나는 발의 냄새가 적절히 잘 버무러져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양계장 양 씨는 리모컨을 잡고 자신의 보물인 TV를 켰다. ‘띵’하는 소리와 함께 양계장 양 씨의 조그마한 방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TV에서 사람이 나왔다. 유심히 보던 양계장 양 씨는 그것이 깔끔한 아나운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아나운서는 얼굴에 안타까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 다음 소식을 전하였다.

“정말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지금 구제역으로 인해서 농민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는데 구제역에 이어서 조류독감까지 발생했습니다....”

“올해도 그 지독한 놈이 왔구먼....” 양계장 양 씨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조류독감 때문에 한 번 큰 일을 치룬 양계장 양 씨였다.

갑자기 양계장 양 씨가 TV에 흥미가 떨어진 듯 리모컨으로 TV를 조심스레 끄고 자리에 누웠다. 양계장 양 씨는 조류독감 자체는 걱정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흐뭇한 감정이 들었다. 조류독감이 퍼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양계장업자들에게 관심을 보일 것이었다. 기자들도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었고, 오늘같이 젊은 사람들도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번에 조류독감이 퍼졌을 때는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할지를 몰라서 모두 서운하게 보내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보내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밥까지 근사하게 대접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내일 시장을 보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다가 양계장 양 씨는 잠이 들었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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