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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Dec 05. 2021

안락사, 앞으로 고민거리

앞으로는 웰빙시대에서 웰다잉시대로의 변화

125번째 에피소드이다.


안락사는 상당히 어려운 주제이다. 결코 쉽게 생각 부분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 한국사회가 마주할 현실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이제는 남 문제가 아닌 내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그들의 죽음의 이면은 내게 다가올 현실, 그리고 미래이기도 하다. 이십대를 시민사회 활동에 매진한 이유는 이와 같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시대에서 부당한 기회의 불평등이 싫었을 뿐이다. 이제 나는 서른살이 후쩍 넘었고 좀 더 세부적으로 노동자 근로문제, 누군가의 죽음을 다룬 고독사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능력을 투입하고 있다. 그저 내가 사는 미래에서 나, 그리고 내 아이들이 개선된 사회분위기 속에서 살고 싶다는 '개인주의자'적인 이기적인 본능 발현일 뿐이다.


안락사는 대학 다니면서 한번 세게 붙은 적이 있다. 현대사회와 윤리라는 교양수업을 들으며 '안락사' 논쟁에 대해 찬,반 토론을 맡았고 나는 당연히 '찬성론' 편에서 열변을 토했다. 그때 자세히 읽은 책은 한스 큉발터 옌스가 쓴 안락사 논쟁의 새 지평 생의 마지막 선택, 품위있는 죽음을 위하여 이었고 '반대론'을 주장하는 이들과 세게 붙었다. 가족사를 잠시 밝히자면 어린시절부터 할머니는 치매가 오셨고 그 병간호를 가셨던 할아버지는 노환으로 더 일찍 돌아가셨다. 그리고 한달뒤에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따라가셨다. 그 예시 속에서 누군가의 병은 모든 가족 전체의 관련된 일로 확장된다는 것, 그리고 병은 과연 언제 걸리는지에 관한 명제를 던지며 몸 속에서 생긴 때가 아니라, 그것을 의사로부터 통보받고 병원에 있으며 '거울'을 통해 내 얼굴이 약해지는 것을 확인할 때라고 밝혔다. 실제 '병'이 발생한 시점에서 인지하지 못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병'을 대할 때의 나, 그리고 '불치'라는 판정을 전문가로부터 진단받고 '희망'을 잃어가는 마음가짐으로 '병'을 대할 때의 나를 비교해보며 우리가 시점주의로 접근하는 '병'의 정의를 내려볼 수 있다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내가 선택할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도 동시에 적용되는 것이 합리적인 쌍뱡의 방향이라는 생각이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안락사' 논쟁은 이전부터 있었고 '김할머니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으로 한단계 나아갔다. 2008년 2월 폐암 조직검사를 받가 과다출혈로 식물인간이 된 '김할머니'는 자녀들이 김할머니의 인공호흡기 등 연명치료의 중단을 요구하였다. 재판 끝에 2009년 5월 대법원에서 승소하였고 '인공호흡기'를 뗀 김할머니는 튜브로 영양공급을 받으며 일정기간 생존하다가 2010년 1월 10일 사망했다. 대법원의 판결문에서 제시한 주요 근거로는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무의미한 신체침해 행위로서 오히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는 것이며,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판례는 연명 치료가 무의미하고 환자의 의사가 추정되는 경우로 제한하기는 하였으나 사실상 존엄사를 인정한 첫 판례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앞으로 행복추구권의 강화, 그리고 확대를 원하는 세대들의 거센 요구와 함께 더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입법과 정책을 통해서 변화될 부분이다. '행복추구권은 향후 얼마나 더 넓어질까'


나는 기본적으로 '안락사'에 전향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세부적으로 보자면 '적극적 안락사' 옹호자가 아닌 '소극적 안락사'는 필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대법원이 제시한 근거와 유사한 생각으로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웰빙'하다가 '웰다잉'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다. 이러한 아젠다가 논의될수록 고민거리가 생기는 산업은 바로 '보험' 산업이다. '보험'의 비즈니스 구조에서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이 산업과 타협점을 찾는 것도 균형점을 중시하는 공동체에서 중요하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보험'을 통한 미래 보장보다는 현재에 좀 더 중시하고 집중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 사회분위기 변화 속에서 '보험' 산업은 위기를 맞고 있는데 '행복추구권 확대적용'으로 인한 '안락사' 이슈가 보편화된다면 산업생존과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또는 어떻게 죽을지 고민한다. '그저 괜찮은 어른'으로 기억되고 내가 할 소임이 끝났다고 생각하면 미련없이 세상을 떠나고 싶긴하다. 후회없이 미련없이 '소풍' 천상병 시인이 언급했다는 마지막 말과 같이 "잘 놀다가 갑니다~"와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웰빙'과 '웰다잉'을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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