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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Dec 07. 2021

정치 만능주의를 벗어나자

'무언가를 해주겠다.'가 아니라 '무언가를 위해 나아가자'는 비전 제시

126번째 에피소드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이념 경계선이 애매해진 건 오래되었다. 대선 기간이 다가오면서 그 경계선은 더 희미해져 자칭 '진보'인사들의 보수와의 화합, 반대로 '보수'인사들의 진보와의 화합이 연이어 나와 친something vs 반something 으로 재편될 뿐이다. 그리고 정책적으로도 큰 맥락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다. 쉽게 말해서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식의 논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가끔 이런 논조에 왜 국민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하는지 의아해지곤 했다. 과연 정치란? 또는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 계속된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으로 정무적으론 국가를 대표하지만 실무적으론 수많은 공무원들의 수장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한번즈음 공무원들과 대판 싸워본 경험이 있다. 수직적 관료제의 끝판왕으로,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유도리는 없고 일단 책임지기 싫어하는 조직이란 인식이 박혀있다. 대통령 후보가 발언한다. 'OO분들을 위해 무언가를 반드시 해드리겠습니다. 저를 지지해주십시오.' 그건 누가 해주는걸까? 그렇게나 똑똑하고 능력많은 대통령이 당선 후에 새벽4시에 기상해서 밤12시까지 공약을 지키기 위해 한집, 한집 돌며 OO분들을 위해 하나씩 직접 모두 해내며 5년 간의 임기를 채울 것인가. 전혀~Never! 그런 일은 없다. 그 공약은 당연히 Top-Down 내려와 부처 공무원 조직에서 실행되고 오늘도 우리는 동사무소, 구청 민원실에 가서 "뭐 이따위가 다 있어~"를 연신 외친다. 추석기간 직전에 시행한 '긴급재난지원금'을 받기 위해 줄 섰고 누구는 웃었고 누구는 울었다. 나는 해당사항이 없었고 동사무소 팀장은 내 앞에서 앉아 설명했고 그 기준은 어이가 없었다. 


나는 그래서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논조들에 냉소적이다. 과연 그것이 적절히 실행될지 의문이며 '정치'에 걸었던 그 모든 희망이 산산히 부서지는 걸로 이어진다. 여기서 '정치'는 오히려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12월부터 본격적 대선기간이 시작되며 여야 모두 선거운동으로 난리다. 이제 '무언가를 해주겠다.'는 것들이 남발하는 시기가 도래하였다. '누가 누가 많이 주나'를 겨루는 장이 되고만다. 정치는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결코 '만능'은 아니다. 특히 산업육성에 대해서는 절대 정답이 아니다. 정부, 부처, 지자체가 출자해서 만든 OO진흥원은 실제 그 분야를 진흥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X맨같이 방해하기 위한 것인지 오해가 들만큼 민간과 '협력'하자고 하면서 '협력을 가장한 갑질'을 한다. 관이 민간에 내민 손길을 한번씩 그 선의를 믿고 잡아본 분들은 이 느낌을 완전히 이해할 것이다. 되레 관이 신경쓰지 않았던 산업들이 세계화로 커나간 사례가 많다. K팝, 아이돌, 이스포츠 등 모두 딴따라, 게임중독자로 기피하는 산업들은 그 생명을 스스로 찾고 내부혁신을 하면서 가치를 드높였다. 관은 이 산업이 성장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자신의 이름을 같이 올리자고 포토존 뒷편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민다. 이치럼 정치 만능주의는 허무주의와 동일하다.


어느 순간, 대한민국 사회에서 '무언가를 위해 나아가자'는 구호가 크게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점점 주요 아젠다를 잃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6.25 전쟁 이후 가난함 속에서 '산업화'를 통해 '성장'을 키울 수 있었던 아젠다, 그 이후 '독재' 정권에 맞서 자유의 기치를 높였던 '민주화'의 아젠다, 그리고 동서화합의 길로 나아가려고 발버둥쳤던 '지역감정' 극복의 아젠다, 순간순간마다 사회를 뒤흔들며 토론하고 때론 칼같은 논쟁 속에서 '대한민국'을 한걸음 나아가게 했던 '아젠다'가 실종되었다. '가치'의 부재가 아노미 현상과도 같다.


'정치'가 가치 부재 속에서 어느샌가 잔소리 많은 학부모가 되어있다. 어느 회사의 광고카피(부모는 멀리 보라고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고 한다)처럼 정치 만능주의가 가치 부재 속에서 내 삶의 너무나 깊숙이 들어와 '무언가를 해주겠다.'라는 달콤한 사탕으로 유혹하며 내 삶의 방향까지 설정하려고 든다. 오히려 거북스럽다.


난 그런 '정치'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네가 나를 얼마나 안다고, 사사건건 간섭이야."


'정치'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은 '무언가를 해주겠다.'가 아니라 '무언가를 위해 나아가자'는 비전제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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