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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Dec 11. 2021

스타크래프트를 보내주기로 했다

성취, 승부욕 그리고 동기부여가 없다면 미련없이!

127번째 에피소드이다.


스타크래프트는 내게 상당히 특별했다. 내 성장기를 함께 해온 산물이다. 학교에서 스타크래프트 1등이 공부1등, 싸움1등보다 더 인기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히던 실력은 내게 늘 자랑이었다. 온게임넷 등으로 대변되는 스타리그, 프로리그 방송은 선수 간 전적, 경기내용과 결과를 줄줄 외울정도였고 고3이었던 2007년도에는 임요환의 군입대 소식과 함께 MBC게임에서 임요환 스폐셜 100게임을 방영할 때 수능공부보단 '임요환'의 명경기들이 보고싶단 것이 내게 더 와닿아 추석 연휴를 헌납하고 모두 보기도 했다.


어제 20년간 나와 스타크래프트 스파링을 해준 오랜 친구에게 생각을 전했다.

"동승아, 나 너랑 하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은 오늘이 마지막일꺼야. 미안하다." 친구가 놀란듯이 무슨 일이 있냐고 걱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순간부터 스타크래프트로 정기적으로, 승부를 가리는 일을 즐겨온 내가 이제 그런 대결은 없을 것이란 말이니 말이다. 술 진탕 마시면 3대3 헌터에서 팀플하는 그런 류의 게임이 아닌 정말 정자세로 다 갖추고 전략과 판짜기로 임했던 게임에서의 은퇴다. 맞다. 지금까지 나는 날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관중도 없고 상금도 없지만 대하는 자세만큼은 누구보다 더 했다.


승부에서 지고 나면 그날 밤은 계속 복기를 해보면서 다음 번의 승부에서 실수를 줄이고 약점을 보완하는 것을 염두해두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면 그날 밤은 기분이 좋아 미소를 지으면서 잠이 들곤 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승부욕'이 사라졌다. 스파링을 오래해준 친구는 내 벌쳐, 드랍쉽 플레이를 특히 싫어했다. 내 본진이 공격을 당하고 있어도 악착같이 막고 상황을 역전해보기 위해 벌쳐, 드랍쉽을 살려서 다 진 경기분위기를 미묘하게 만드는 특유의 '악착같음'에 진절머리를 내곤했다. 그런 플레이로 역전을 하면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런 '악착같음'이 사라진지는 꽤 되었다.

내가 어제 친구와 스타크래프트를 하다가 마린,메딕 조합에서 스팀팩을 누르지 않고 그냥 어택땅을 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지금 무얼하고 있나 생각을 해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누르기가 귀찮아서 안 누른 것이었다. 그리고 원배럭더블커멘트 전략을 구사하는데 저그의 5드론 전략을 확인하곤 싸워보지도 않고 그냥 GG를 쳤다. 게임은 0 Death로 기록되었다. 누구의 부상자도 없이 그저 저글링이 달려오는 걸 보고 평화주의자인 간디가 되어 GG를 쳐버렸다. 아마 그 친구 입장에서도 황당했을 것이다. '악착같이' 막아내고 막아내면서 불리해도 이걸 어떻게든 역전해보려는 이전의 내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딱 그 경기를 해보니 완전히 확신이 생겼다.


이제, 나는 스타크래프트를 보내주기로 했다.

블리자드도 모르고, 스타크래프트 테란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내 스스로의 '이별'이다. 하나 미안했던 건 20년간이나 나랑 꾸준히 스파링을 해준 친구녀석이다. 나와 승부를 내기로 하면 서로 피터지게 대결하고 그 승리에 희열감을, 때론 패배에 분함을 느끼며 그 자체가 재미요소가 되었는데 이제 그 재미가 없어져버렸다. 친구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네가 스타 안하면 아마 나도 다른 사람하는 스타는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먼"


누구는 이 글을 보고 '뭐야? 이게 뭐라고 심각히 고민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에서 은퇴한다. 그것을 대했던 내 진지한 자세가 없어졌다. 성취, 승부욕 그리고 동기부여가 전혀 없다는 건 '공허함'마저 느끼게 했다. '이제 난 무얼해야 하나' 어렴풋이 프로게이머선수들이 은퇴하는 시점에 대한 소감을 찾아보았다. 'WHY?'(왜 해야하나)라는 걸 느끼지 못할 때라고 했는데 나도 그 느낌을 알 것만 같다. 앞으로 스타크래프트는 재미삼아하겠지만 그저 순간적 재미일 뿐이다. 누군가와의 승부를 겨루며 복기하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던 재미는 없어질 것 같다. 생각보다 울적하다.


20년간 내 곁을 지켜준 동반자, 스타크래프트여 안녕!



커피 한잔의 여유

국회와 사회적기업, 스타트업CEO, 변호사(로스쿨준비생)


소개      

김인호입니다. 20대에는 사회적기업가로 살았습니다. 30대에는 국회비서관, 컨텐츠분야 스타트업 시니어, 사회적경제 전문 변호사로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40대에는 제 생각을 펼치며 사회를 설득시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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