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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Dec 26. 2021

1984,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당당하게 책임질 줄 알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멋있던 사람

133번째 에피소드이다.


이스포츠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스포츠맨십을 다시 생각해본다. 최근 가장 스포츠맨십을 볼 수 있었던 장면은 박상영 펜싱선수가 지고 있는 휴식시간에 혼잣말로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되뇌이는 모습이었다. 실제로 그 경기는 역전을 해내었고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최근 있었던 월드컵에서 마지막 독일전을 앞두고 모두가 독일에게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분위기 속에서 손흥민 선수가 전력질주를 통해 골키퍼도 제끼고 골을 넣는 모습을 보고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상황에서 그를 공과 골대만 보고 달리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경기 후 손흥민 선수가 맘고생했던 눈물을 흘렸다.


만약 내게 타임머신을 탈 기회가 주어진다면, 몇 가지 꼭 가보고 싶은 사건들이 있다. 나열해보자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를 하기로 마음 먹은 그 순간에 가보고 싶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 나가기 전에 혼자 밤을 보내던 그 순간에 가보고 싶다. 근래로 보자면, 달변가였던 여운형 선생의 대중연설을 듣고 싶고 김구선생이 분단을 막기 위해 북한으로 넘어가던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 김영삼 총재시절이 YH여공사건 직전 신민당 당사에서 오로지 여공들을 지키기 위해 결기에 찬 정치인들이 대치했던 그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 또 하나는 존경하는 조영래 변호사가 고뇌에 빠져 담배를 피우며 사건 기록을 보는 순간을 함께 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84년 최동원의 한국시리즈를 직관하고 싶다.

부산 사직구장 앞에는 '최동원 선수 동상'이 서있다. 그리고 MLB의 사이영상과 비견할 수 있는 KBO의 최동원상이 태동되어 차근차근 상의 권위를 세우고 있다. 우리는 '최동원 선수'를 왜 기억할까? 나는 84년에는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아 영상으로만 '최동원'을 접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마저도 눈물이 찔끔 나온다. 어떤 인간적인 매력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최동원'은 정말 대단한 흡입력을 가진 이다. 앞서 말한 스포츠맨십에 현대 스포츠에서 가장 부합한 인물 일지도 모르겠다. 현대 야구처럼 분업화 시대가 되기 전, 그는 자신의 경기에 나와 완투승, 완투패를 기록하며 당당하게 책임지고 받아들인다. 1984년 한국야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희대의 사건과 함께 한국시리즈가 펼쳐진다. 전반기를 석권한 삼성은 통합 우승이 힘들어지자 후반기 우승을 롯데가 할 수 있게 '져주기' 사건이 벌어진다. 1984년 한국시리즈는 우승은 '삼성'이란 모든 전문가들의 예상으로 시작되었다. 우스갯소리로 최동원이 4승을 하면 롯데가 우승할 수 있다고 했다. 그건 현실이 되었다.


완봉승, 완투승, 완투패, 구원승, 완투승. 

4승1패. 그가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성적이다. 천부적 재능으로 4대0 스코어로 이긴 경기가 아니다. 7차전까지 가는 피말리는 접전이었고 완투패를 당해 좌절하기도 했던 한국시리즈였다. 구원승으로 다시 올라왔을 때 최동원 선수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마음을 가능하지조차 어렵다. 최종 7차전에서 다시 선발로 나올 때, "마, 함 해보입시더"라고 감독에게 말했다고 한다. 영상 속에서 본 최동원 선수는 어깨에 힘이 다 빠져서 한구 한구 던질 때마다 고통스러워한다. 스코어가 역전되고 마지막회를 막아내며 방방 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국시리즈 4승1패는 숫자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 스포츠맨십이었다.


내가 '최동원' 선수에게 매료된 건 그 다음이다.

누구보다 슈퍼스타고, 강자의 위치에 있던 국민영웅은 2군 선수 등을 최소 생계비를 위해 선수협의회란 것을 발족하고 앞장선다. 사실 나는 이런 선택을 하는 순간을 상상해본다. '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대부분 이런 생각으로 마무리 짓곤 한다. '솔직히 말해 너무 두렵고 무서워서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 나약한 사람이다. '최동원'은 캐치볼을 도와주는 2군 선수들이 고마워 고기를 한턱 쏜 적이 있었는데 너무 허겁지겁 먹길래 그들에게 물었더니 "몇 달만에 고기 먹은지도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선수협의회에 자신이 앞장 설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최동원'답게 책임지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고초를 겪은 이야기는 야구계에서 유명하다. 은퇴 후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로 시의원에 출마한 적도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의 유권자가 된다면 나는 '최동원'에게 투표할 것이다. 그가 보여준 결기는 진심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가도 '최동원'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당당하게 책임질 줄 알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멋있던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사회 속에서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이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그가 우리 사회에 남기고 간 유산들이 많다. 스포츠 분야를 넘어 혼란 속에 빠져있는 대한민국 사회가 무언가 가슴이 뜨거워지고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지 보여주는 인물이다.



커피 한잔의 여유

국회와 사회적기업, 스타트업CEO, 변호사(로스쿨준비생)


소개      

김인호입니다. 20대에는 사회적기업가로 살았습니다. 30대에는 국회비서관, 컨텐츠분야 스타트업 시니어, 사회적경제 전문 변호사로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40대에는 제 생각을 펼치며 사회를 설득시키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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