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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Feb 12. 2022

모든 직업은 '결국 설득시키는 일'

일(work)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 미래는 서서히 결정된다.

144번째 에피소드이다.


서른 중반이 되기 전에 상당히 많은 직업을 가졌다. 변덕이 심해서인지, 아니면 타고난 역마살 때문인지 순간에는 정말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는데 성취물이 생기면 금방 질려버린 것 같다. 사회적기업 창업부터 공익재단 근무, 협동조합 전문가, 정당정책연구소, 국회, 스타트업까지 메인잡을 이어가고 있으며 특강강사, 도서작가, 연구용역 수행자, 심지어 오디오컨텐츠기획자까지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일들은 닥치는대로 해봤다. 국립대 공대를 졸업하고 굴지의 대기업까지 갈 뻔했던 경험까지 포함한다면, 게 거쳐간 직업들은 수없이 많다. 이 경력을 자랑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말하고자 하는 건, 모든 직업은 결국 '설득시키는 '이란 본질이다.


애써 태연한 척 하려고 해도 남들과 다른 길을 자의적 선택이든, 타의적 선택이든 가게 되면서 내심 불안한 마음이 생기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찌질한 감정이다. '아.. 쟤! 나보다 대학 때 공부도 못했는데 XX회사에 갔다고? 말도 안돼..', '아! 으리으리한 사옥을 갖춘 빌딩에서 빛나는 사원증을 메고 나오며 으스대고 싶다.' 인간인지라 그 시기, 질투, 찌질한 감정선을 간혹 드러내곤 했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어느샌가부터 그 감정선이 확실히 옅어졌다. 앞서 말한 "모든 직업은 결국 설득시키는 "이란 것을 이해한 순간부터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무지했고 S전자에 들어가면 저절로 돈이 벌리고 월급도 많이 받는 줄 착각했다. 또 굴지의 공기관에 들어가면 나인to식스 칼퇴근을 지키고 사원증을 가지고 주변 맛집탐방에 집중하고 월급은 따박따박 나오고 정년보장되는 자판기라 생각했다. 무지하기 이를 데가 없다. 누군가를 설득시키는 과정이다. S전자는 반도체를 팔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공기관은 만족스러운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내가 거쳐온 직업들도 해당 목적사업을 설득시키고 판매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다 했다. 그게 끝이다. '설득시키는 과정' 자체가 일(work)이란 생각을 하게 되니 뭔가 타이틀이나 간판이 그리 크게 중요치 않게 되었다. 어차피, 누구나 다 '설득'시키려고 용쓰는게 일인데 누가 잘나고 못난 것이 없다는 그런 개똥철학이 생겨버렸다. 다행히도, 그 개똥철학 때문인지 시기, 질투, 찌질한 감정선은 희미해져가고 있다.


최근, 내가 존경하는 친구 한 녀석이 있다.

오랜 동네친구로 중학교1학년때부터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특이했다. 공부로 전교권에서 날리던 내게 누가 "사회과목은 OO가 너랑 비슷할껄?"이란 자극을 주었고 그 길로 나는 당장 OO에게 찾아가 "너가 걔냐?"라고 물은 것이 우리의 인연이다. 사실 그 당시 공부로는 학교에서 내게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뛰어난 암기력과 그에 못지 않은 노력파이기도 내게 OO는 다소 문화충격을 주었다. 암기과목 교재를 볼펜으로 그으면서 수없이 본 나머지 구멍이 나서 너덜너덜해져있었다. 쉬는시간, 점심시간을 쪼개서 쉬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나의 승리였다. 주변 친구들은 OO와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OO는 진짜 돌머리인가봐. 그렇게 노력해서 공부를 해도 인호를 이기지도 못하잖아." 그런 분위기가 불편했고 녀석과 문제없이 지내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심지어 어느 한심한 담임교사를 만나, 매번 시험성적 등수 순서대로 앉게 되었을 때는 OO는 항상 내 등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상황에 처할때마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그 후, OO는 나만큼 직업의 이동이 많았다. 서로 삶이 바빠서 직업이 바뀌었다는 소식만 가끔 교환할 뿐 자세한 내막을 알진 못했다. 서른이 넘어 OO와 다시금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개인주의 성향과 OO의 좁고 깊은 인간관계가 잘 맞아 떨어진 탓이다. 거기서 알게 된 사실은 20년 전 내가 처음 마주쳤던 OO와 단 하나도 변하지 않은 OO였다. 본래 수산물 회사 사무직 매니저로 일하던 OO는 동종업계 다른 수산물 회사 영업직으로 옮기면서 도전을 택했다. 주말에 카페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던 OO를 보고 "너 뭐하냐?"하면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회사 영업 브로셔를 수정하고 있었다. 자세히보니, 그 브로셔를 몇번 써보니 고객들에게 가독성이 떨어지고 달변가가 아닌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수정하면서 그걸 고치고 있었다. 내가 OO에게 한마디 던졌다. "OO야. 갑자기 영업직으로 오게 되었는데 몇달간은 공친다고 생각하고 너무 욕심갖지 말고 해~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서툴꺼니깐, 당분간은 너무 부담갖지 말고.." OO는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고 첫 달부터 매출을 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한결같이 성실하고 서툰 것이 있다면 반드시 집에 와 거울 보면서 연습하고 녹음기를 켜놓고서 연습하고 교정하고 또 교정했기 때문이다.


"OO는 20년 전 14살 중간고사 시험을 대하는 태도와, 20년 후 일(work)을 대하는 태도에 변함이 없다."


꼼꼼하게 메모하고, 모르면 다시 보고 서툰 것이 있으면 고치고 하는 과정은 20년 전에는 내가 가진 테크닉에 순간적으로 밀리게 보일 수 있겠지만 삶이란 대장정에서는 결국 내가 질 것 같다는 냉정한 판단을 하였다. 난 20년 전 14살 중간고사 시험을 대하는 태도와 20년 후 모든 일(work)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적당히~ 그리고 대충~ 테크닉에 의존하여~라는 수식어가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악착같음이 사라지고 '유도리'란 함정 속에 삶의 태도를 송두리채 몰아넣고 있었다. 그래서 OO를 보면서 모든 일(work)을 대하는 태도를 변함없이 일관되게 유지하려고 노력 중이다. 가끔은 속 답답하고 미련해보이지만 '누군가를 설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오늘도 OO는 빼곡이 깨알같은 글씨를 내게 보내왔다. OO는 이기적이지도 않아 자신이 공부하다가 내게 좋은 정보들이 있으면 어김없이 공유한다. '와.. 이 미친놈! 빽빽한 글씨체 변하지도 않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일(work)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 미래는 "서서히"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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