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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Feb 23. 2022

'스틸라이프' 영화를 보고

하찮고 담담하면서 각자 개인은 담대한 그들의 죽음

146번째 에피소드이다.


향(香)기나는벗님들 고독사예방연구센터로 인해 상당히 바쁘다. 그만큼 대한민국은 단순히 초고령화 사회를 넘어 누군가의 사회적 고립, 죽음까지 함께 고민해주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부산 지역에서 사회적경제포럼이 발족되고 산하 위원회로 '공영장례지원위원회'가 생겨 연계된 활동을 겸하고 있다. '공영장례'는 앞선 에피소드에도 언급한 적이 있다. 제도적으로 무연고자 또는 경제적으로 장례를 치룰 수 없는 사망자에 한해서 그들의 장례비, 유품정리 비용을 지원하여 생(生)의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자는 취지가 있다.


공영장례지원위원회 차원에서 포럼 회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스틸라이프' 영화상영을 추진했다. 배경은 유럽으로 '존 메이'란 구청 공무원으로 죽은 이들의 유품정리를 통해 추도문을 작성해주는 일을 한다. 이 가운데서 그는 항상 규율을 잘 지키고 동일한 시간, 복장을 준수하는 변화추구는 상상할 수 없는 특유의 공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중 '빌리 스토크'란 일면식이 없던 이웃의 죽음으로 평소의 자신과 다르게 직접 그의 가족, 친구, 지인들을 찾아나서며 영화가 전개된다. 영화 속 '빌리 스토크'는 형편없는 인간이다. 계속된 잡범 전과로 감옥에 수감되어 아내, 딸에게 상처를 주었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시점에는 같이 살지 않았다. 또 성질을 버리지 못해 친구, 지인들에게 고약한 성질을 가진 이로 기억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하찮고 담담한 죽음 이야기는 '빌리 스토크'란 각자 개인으로 들어가보면 담대한 '인간의 존엄성'을 이어나가는 끊고 싶어도 결코 끊어지지 않은 고리다. 그의 죽음 앞에 하나,둘씩 그와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을 찾으며 '빌리 스토크'의 마지막 장례식에 모여든다. 비극적이게도 그 역할을 주도한 '존 메이'는 갑작스런 사고로 동일한 요일, 동일한 장소에서 그저 무덤의 흙을 채우면 일당을 받는 인부들에 의해 홀로 묻힌다. '존 메이'가 가끔씩 자신 업무로 장례식장에 올 때마다 누워봤던 그 자리에 말이다. 하지만, 무덤의 그늘을 만들어줄 나무는 댕강 잘려져있다.


사실 영화 자체는 단조로워,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삶 자체가 역동적이어야만 모든 '성공'이란 징표를 나타낼 수 없듯이 단조롭다 못해 너무나 하찮고 담담한 누군가의 삶은 각자 개인의 세밀한 추억들로 들어가면 누구나 그 자체로 담대하고 존엄한 건 틀림없다. 그런 느낌을 담아내고자 한 영화라고 내겐 기억될 것이다. 최근, 부쩍 많이 누군가의 죽음에 관해 철학적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좋은 시그널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웰빙'을 넘어 '웰다잉'까지가 우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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