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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Sep 15. 2022

고독사, 그리고 자살

자살은 개인의 일탈인가? 사회적 책임인가?

179번째 에피소드이다.


최근 삶과 죽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어쩌면 인간에겐 당연한 명제일 수 있으나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 1인 가구의 증대, 부양의 의무가 개인에서 국가에게로 전이되고 있는 사회현상이 늘어나면서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안타까운 사건 사고를 접한다. 수원 세모녀의 사건, 보호종료아동의 자살 등이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죽음'에 관해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 245hz 란 연극단체가 연락이 와서 &-topia(앤 토피아)이란 청년의 자살에 관한 시나리오를 구성(고독사에 관한 증상과 유형, 근본적인 문제, 예방교육 차원의 주요 시사점)하는데 자문을 주었다. 다행히도 연극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고 전해들었다.


또한 국정감사 시즌을 맞이하여 한 의원실에서 고독사에 관한 내용을 자문해왔고 좋은 질의가 될 수 있도록 현행에 따른 연구보고서, 조례 등을 검토하고 현장경험까지 살려 의견을 주려고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차원에서 내놓은 고독사에 대한 정의는 명확치 않으며 일종의 연구용역을 통해 의견수렴 단계인 것은 확인하였다. 17개 지자체의 경우 대부분 조례를 제정하고 '급한 불이라도 꺼야겠다.'는 생각으로 각자도생으로 실시하고 있으나 정의, 적용대상, 통계치 산입방식이 제각기 다르다. 그러다보니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고독사의 통계가 정확히 존재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잡는지에 따라 통계치는 상당히 다르게 된다.


한가지 굉장히 의무인 건 '자살'을 어떻게 볼지에 관한 견해이다. 정책적으로 접근해본다면 '자살'까지 고독사로 잡을 경우 중복산입이라는 난제에 부딪힌다. 72시간 이후 발견되는 자에 한하여 적용된다해도 그닥 쉽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조례에서는 '자살'을 통계치에 산입하고 있지 않다. 언론사 등에서 방영되는 방송에서는 되레 '자살'까지 통계치로 잡고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서로가 다른 통계치를 가지고 그 심각도를 평가하고 예단하며 향후 예방을 위해 공중에 헛주먹질만 해대고 있는 형국이 따로 없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견해를 하나 밝혔다. 지금까지 어느정도 사회적 합의가 된 일정기준에 만족한 '자살'은 고독사 통계에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이 사회문제에 비겁해서는 안된다. 행정이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일은 예산편성 뿐이다. '자살'이란 키워드에서 다가오는 느낌은 개인의 일탈이다. 자살은 그저 안타깝지만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되기 쉽다. '고독사'란 키워드에서 다가오는 느낌은 사회적 책임이다. 누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란 질문이 오고가면서 사회적 담론이 구성된다. '자살'을 '고독사' 통계에 산입할 경우 그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가 된다. 담론이 오고가면서 예산편성이 되고 곧 실행이 된다.


모든 '자살'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최근 빈번히 발생하는 자살, 특히 그 중에서도 청년층들의 자살은 앞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갈 수 있는지 변곡점이라고 본다. '출산율무새'가 되어 그곳으로 모든 정치, 행정의 이목이 쏠려있을 때 현재를 살고 있는 청년층들은 생을 마감하고 있다.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하기엔 상당히 비정하다. 그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국가 공동체는 냉정히 말해 찬란한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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