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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Sep 18. 2022

고독사 이전에 고독생

죽어야 주목받는 시대가 아니라 죽기 전에 주목받는 시대

180번째 에피소드이다.


매년 9월 셋째주 토요일은 '청년의날'로 지정되어 전국 곳곳에서 청년 행사가 펼쳐진다. 청년고독사 연구단체 활동을 하고 있어 '고독사 예방 정책포럼'이란 다소 거창하지만, 한번즈음은 꼭 필요한 포럼을 기획했다. 이전 에피소드에도 언급했지만 중앙부처인 보건복지부 차원에서는 고독사 예방에 대한 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자치단체(광역, 기초)는 본인들이 처한 현실이기에 조례 등을 발빠르게 제정하여 대처하고 있지만 중앙집권적 요소가 다분한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치단체의 힘만으로는 상당히 역부족이다. 다만 한가지 시도해볼만한 것이 있다면 지속적으로 자치단체별로 비교분석 또는 은근한 경쟁을 부추켜보는 것이다. '어? 여기서는 하는데 왜 우리는 안하지? 할만한데, 해볼까?'라는 비교가 벤치마킹으로, 경쟁이 도시경쟁력 증대로 이어질 수 있는 포럼이라면 꾸준히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고독사 등 점점 사회문제로 부각되는 것들은 말이다.


포럼에서 두곳의 기초자치단체의 고독사 조례(공영장례, 1인가구지원 포함) 및 행정사례 등 발제가 이어지고 위기청소년, 경력단절여성, 중증장애인, 언론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전문가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포럼에 대한 내용은 속기록으로 정리되어 발제자, 토론자에게 전달될 것이며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의원실에도 전달되어 '고독사'에 대한 자치단체 및 전문가, 시민들의 의견을 볼 수 있게 조치할 것이다. 이러한 학술적 내용은 이만 정리하고 그 외에 내 뇌관을 때린 키워드는 '고독생'이었다. 어느 한 전문가 분께서 죽어야 주목받는 시대가 아니라 죽기 전에 주목받는 시대를 원한다는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결국 사람이란 것이 죽으면 더이상 그 의미는 없다. 누군가의 죽음이 다른 이에게 경각심과 함께 변화를 이끄는 촉진제는 될 수 있지만 죽은 이에겐 논할 가치가 없는 쓰레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국가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어떤 한 사람도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태어난 이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일종의 어쩌다 태어난 것이며 대한민국 사회에 태어나는데 그 사람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저 태어났으니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후천적인 열정이 사람을 지배하며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한 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고독사'는 사후처리에 관한 '나 자신'이 빠져있는 그 외 사람들의 경각심 의사결정이기에 더 중요한 건 '고독생'일 수 있다. 추상적인 의미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이 키워드는 '결과론'적인 귀결이다. 결과적으로 누군가가 '고독사'로 죽으면 그건 실패한거다.


결과적으로 개별적 개인에게 실패한 것(통계상으로 성공한 것과 개별적 개인에게 성공한 것은 다른 의미)이 되지 않기 위해선 향후 국가를 중심으로 한 거버넌스는 '추상'을 '구체적 기준'으로 '구체적 기준'을 '개별적 개인의 효능감 유지(또는 상승)'으로 체감시켜줘야 하는 난제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는 어떠한 결과, 통계들이 내 개인한테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숫자이며 정책 효능감을 유지는 커녕 하락은 자명하다. 내가 죽고 난 이후 세계는 아무런 가치가 없듯이 결국 발생되고 사후처리가 고민하는 '고독사'보다 '고독생'에 집중하자는 다소 원론적이면서 추상적인 그 발언이 내겐 더 와닿았다. 정책은 이제 정말 어려운 작업이 되고 있다.


집단과 개인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역설'이 근본에 깔린 괴물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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