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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Oct 11. 2020

애매한 능력을 가진 당신에게

사회적기업을 하며 확립된 가치관들

열여덟번째 에프소드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에피소드는 사회적기업을 떠나 대부분의 사람이 하는 고민일 것이다. 바로 '애매함'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애매하게 된 건 고등학교 즈음 부터였다. 모의고사 점수를 채점하면 매번 과학탐구 과목보다 사회탐구 과목이 월등했다. 이과, 문과를 선택할 때가 되어 공대를 가고 싶었던 나는 그때부터 애매한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난 국사를 화학보다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잘하게 되었다. 주변 이들이 나에게 손가락질했다. ‘문과 갔으면 더 좋은 대학을 갔을 텐데’ 대학에서 전공으로 기계공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또 다른 전공을 경영학으로 선택했다. 난 어디 가서든지 환영받지 못했다. 공학수업을 들을 때면 “넌 정말 문과생같이 서술형을 잘 쓰는구나! 넌 문과를 갔어야했는데, 왜 공대를 왔어?”라는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가 귓가를 맴돌았다. 경영학수업을 들을 때면 “넌 정말 공학도 같아. 솔루션을 찾아가고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은 경영학도가 아니라 공학도야” 라며 나를 신기해했다. 어디가든 그 속에서 애매했고 자연스럽게 나는 내 정체성의 혼란이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소외계층 청소년들을 위한 사회적기업을 창업해 일하면서 동종업계인 비영리기관 담당자들을 만나면 “왜 이렇게 기업가적인 마인드가 있으셔요?”라는 말을 들었고 프로젝트 사업을 따내기 위해 기업에 가면, “이렇게 이상적인 마인드로 돈이나 제대로 벌 수 있으시겠어요?” 라는 핀잔을 들었다. 항상 그렇듯, 난 애매했다.     


그렇게 이십대 후반이 되어서 잠시 일을 쉬면서 앞으로 갈 방향을 새로 정하고 싶었다. 잠시 일을 쉬는 동안, 여러 곳에서 계속 연락이 왔다. 나와 같이 일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미팅을 하러 가서 평소 알고 지내던 담당자에게 물었다. “저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닌데요?” “재밌잖아요. 엉뚱하고 매번 그냥 넘긴 적이 없잖아요. 그건 피곤하긴 해도 꼭! 필요하니깐”     


이십대 후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애매함이 가지는 의미를, 내가 하도 까탈스럽고 시각이 다른 것을 알기에 돌발적인 질문을 의식했고 고민스러운 일이 생기면 나에게 먼저 물어봤다. 내가 애매한 능력의 소유자이기에 나도 더 많이 듣고 생각해서 오히려 더 많이 고민하며 준비하는 기회 만들어왔다. 내가 평생 싫어한 이 애매함은 사실 나의 자양분이었다.


작년에는 대학후배들이 나에게 특강을 부탁했다. 선배 중에서 기억에 남는 선배라고 했다. 연단에 서 입을 뗀다. “후배님! 대부분 능력이 애매하실 텐데 그 애매함을 소중히 여기세요!”     


그렇게 일 년이 더 지났다. 애매함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제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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