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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Nov 06. 2022

이태원 그리고 반성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반성

193번째 에피소드이다.


대한민국 사회 모두가 슬픔에 잠겼다. 지난 토요일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고 서울에서 막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을 무렵 슬픔은 극대화되었다. 애도기간이 끝났으나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반성은 끊임없이 필요하다. 그 본질이 변화되지 않으면 반성, 또 반성을 하는 우리와 마주할 것이다. 미숙한 대응과 사전 예방할 수 있었던 부분에 대해 방관자스러움이 불러온 비극이다. 또한 사회적 자본 유실의 심각성을 반성하고 회복해야 한다. 수많은 이들이 심폐소생술로 삶의 희망을 불어넣고 있는 모습과 대비되는 구급차의 사이렌소리가 묻힐 정도로 흥겨운 노래, 춤이 이어지는 모습은 기묘했다. 기묘함을 넘어 사회적 자본이 유실된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대단히 큰 희망을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타인을 위한,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관심이 사리지는 것이 싫을 뿐이다. 개인주의가 이타적 감정을 내포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 감정이 배제된다면 이기주의이다. 이기주의로서는 우리가 사는 공동체를 지킬 수도 없으며 미래를 꿈꿀 수도 없다. 타인을 위한,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일부 희생과 자유의 반납은 필요하다. 그 균형점에서 공동체는 유지되고 개인과 자유가 공존하면서 결국은 모두가 극대점을 찾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균형점을 유지하기 위한 공동체, 개인이 가지고 있는 내재적 자본, 수치화하고 정량화하기엔 굉장히 까다롭지만 그 자본이 의외로 위기의 순간에 우리네 삶을 지키며 윤택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일종의 넛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그것, 내가 이해하고 있는 사회적 자본이다. 이걸 쌓지 않으면 또 슬픔의 시간은 찾아온다.


착한사마리아인법과 같이 법률로서 규정하자는 건 아니다. 도덕적인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여 강제한다는 건 되레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제하기보다는 되레 동참하는 이들에게 혜택을 주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다만 혜택은 결과이고, 그걸 행하게끔 하는 건 동기이다. 그 동기는 사회적 자본이다. 동기가 없는 행동은 쉽게 일어나지 않기에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이 내 삶에도 영향을 미칠꺼라는 동기를 쌓아나가야 대한민국은 다신 이런 슬픔을 겪지않을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대한민국에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존케리 당시 대통령 후보 찬조연설을 하면서 나온 대목을 끝으로 마친다.

"잘 알려진 개인주의와 함께, 미국의 대서사에는 또 다른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국민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믿음입니다. 만약 시카고 남쪽지방에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설사 제 자식이 아니라 하더라도 저에게 문제가 됩니다. 만약 미국 어딘가에 계신 어르신께서 약값을 낼 돈이 없으시다면, 약값과 월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제 할아버지가 아니어도 제 삶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만약 어떤 아랍계 미국인 가족이 검거될 때 변호사 선임권리나 제대로 된 법적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시민인 저의 자유를 위협하는 일입니다. 이런 근본적인 믿음이야말로, 내가 내 형제를 지킬 수 있게 하고 내가 내 자매를 지킬 수 있게 하고 이 나라를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그 믿음이 각 개인의 꿈을 추구하도록 허락하면서도 미국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입니다. 여럿으로 이루어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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