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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Nov 23. 2022

지방자치아카데미를 수료하며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필요한 지점

199번째 에피소드이다.


지방자치아카데미를 수료할 줄은 솔직히 몰랐다. 지인의 권유로 12주 간 진행되는 이 아카데미를 등록했지만 지인과의 친분을 지키기 위한 요량으로 2,3번 나갔다가 중도포기를 할 생각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상한대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지방자치, 그리고 분권은 시대적 흐름인지는 몰라도 그걸 획득하기 위한 권리의식, 그리고 그와 더불어 책임감이 균형잡혀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난 12주 과정을 수료했고 그 수료식은 어제 마무리했다. 놀랍도록 내겐 지루했지만 그 끈질긴 참여는 지속적인 커뮤니티성을 강조한 그룹의 강조 때문이었다. 사실.. 내가 지방자치과 분권에 시니컬하게 반응하게 된 연유는 사회적경제과 협동조합 심지어 주민들과 마을공동체 속에서 커뮤니티를 구성해보면서 볼꼴, 못볼꼴 다 보고 속으로 결론을 내린 이유가 가장 크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 누구보다 바텀-업 방식을 원했고 원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기성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 그렇게 로컬을 고집하는지, 또한 그 애향심의 원천이 어디서 나오는지 이해할 턱이 없다. 난 실리적이고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데 훨씬 익숙하며 로컬이 내게 도움이 되면 남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로컬에 가서 살 용의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이해의 폭과 더불어 그분들의 진심을 알고 있으며 한편으로 존경하기까지 한다. 부산분권혁신운동본부라는 단체로 후원을 통해 사무 비용을 충당하며 십수년째 끊임없이 지방자치, 분권 운동을 전개하고 계시는 그들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더 존경을 표하며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지방자치, 분권은 정말 어렵다.


우리는 국민인가? 시민인가? 구민인가? 각 동의 주민인가?

사실 이게 지방자치의 출발점이다. 대한민국 부산시, 그리고 OO구, OO동에 거주하는 어느 누군가는 정체성은 총 4개이며 상황별로 국민, 시민, 구민, 주민이 혼재되었다가 가끔은 특정 주체의 우선순위가 높아졌다가 그런 반복적인 현상이 일어나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치 선거철이 되면 가끔은 우리는 이 주체들의 혼재의 절정을 맛볼 수 있다. 국회의원 선거를 한다는 건 지역구에서 일할 사람을 선출하여 대한민국 국회로 보내는 행위이며 여기선 우리 모두가 '국민'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지역구 예산 확보 공약을 눈여겨보며 '구민'으로서 국회의원을 뽑고 그들을 대한민국 국회로 보내기도 한다. 지방선거철에는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 각 주체별 혼란이 가중된다. 지방선거는 내 동네를 위해 일할 사람을 선출하는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주민'과 '구민'이 아닌 '국민'이 되어 정권심판론, 견제론에 앞장서서 선거를 치루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동네 구의원을 선출하는 것과 정권심판론, 견제론은 큰 의미에선 관련이 없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그렇게 선출하고 있다.


한편으론 로컬은 행정통합의 필요성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내 스스로 깊은 고민이 없었단 생각이 든 대목이다. 얼마 전 대구시장은 내 모교를 찾아 특강을 진행하였다. 한 학생이 "대구경북통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했다. "지금은 점점 작은 단위까지 쪼개지는 독립의 시대인데 통합을 한다는 건 현실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후퇴하는 것 아닌가?" 그 발언을 듣고 머리로 망치를 쎄게 맞은 것 같았다. 나 역시 로컬 단위의 행정통합을 암묵적으로 동의했고 그 속에서 통계상의 불필요함, 협업을 통한 효율성 증대를 꾀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지방자치, 분권과는 큰 틀에서의 방향성은 반대가 아닌가 생각했다.


현재 지방자치, 분권은 참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참여는 권리임에는 확실하며 그 권리획득을 위해 수많은 이들이 요구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권리 획득 이후 단순히 '책임'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벗어나 '경쟁'과 '효율성 증대'라는 점까지 고민하고 있는지 냉정히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만 지방자치, 분권을 하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수많은 광역지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 동별로 모두가 동일한 선상의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이다. 참여과 권리를 나이브하게 받아들이기엔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누군가는 경쟁에서 패배할 것이고 그러지 않기 위해선 단순히 참여를 하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기보단 그를 통해 나온 참여의 결과물에 대한 냉정한 시장에서의 심판, 그리고 선택 등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간혹 그 참여의 결과물이 선택을 받지 못하면 인구소멸도시는 모노토리엄 등을 선언하고 파산할 수도 있다는 그 냉정한 판단을 각오해야한다. 누군가의 공작도 아니고, 그저 주민들의 참여가 만든 결과에 대한 다른 지자체의 '경쟁', 그 혜택을 몸소 받고 삶을 개선시켜나가려는 또 다른 지역 주민들의 '선택'라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통해 소멸되어간 도시를 살린 영웅이 되기도 하며 소멸되어간 도시의 소멸을 더 부추긴 매국노가 되기도 한다. 즉, 지방자치와 분권을 참여, 그리고 권리획득의 과정, 추상적인 책임이라는 나이브한 개념에서 벗어나 '자유'가 주는 장점을 바탕으로 '경쟁'과 결과 중심의 '효율성 증대'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대단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래서,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이 극도로 필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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