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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Dec 03. 2022

히딩크는 혁신가다

월드컵에서 언더독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마법

201번째 에피소드이다.


새벽 마음을 졸이며 본 월드컵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객관적 전력으로 한참 밀리는 이 작은나라 대한민국이 유럽의 강호, 포르투칼을 격침시켰다. 다른 경기장에서 우루과이가 적절하게 가나에게 승리를 거두면서 16강 진출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엊그제 일본이 조별예선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내심.. 어쩌나 싶었지만 동등한 위치에서 토너먼트 승부를 겨루어볼 수 있게 되었다. 언더독의 반란이다. 여담이지만 월즈에서도 언더독으로 분류되고 한국 내 마지막 시드를 겨우 확보하여 진출한 DRX가 세계를 제패하여 감동을 주었다. 스포츠에서 언더독의 반란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다.


서른살 이상 즈음 넘은 사람들에겐 2002년 월드컵의 기억이 생생하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한계를 맛본 대표팀은 네덜란드의 명장 히딩크를 한국으로 모셔온다. 그 과정도 상당히 어려웠을 뿐더러 이후가 더 가관이었다. 내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히딩크는 혁신가'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유교란 전통문화가 모든 사회,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한국은 스포츠에선 비효율을 일으키는 존댓말, 학연을 중시하는 문화 등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지금은 한국의 레전드이기도 한 박지성 선수도는 한국 사회에서 비주류인 대학을 나와서 K리그도 아닌 J리그에서 뛰고 있었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이 아니었다면 오로지 실력만으로 평가받고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어진 권한을 가지고 기존 악습을 타파해가는 하나의 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돌이켜보면 '혁신가'의 면모를 다분히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안정환 선수가 방송에 나와 히딩크의 사람 다루는 방식을 칭찬한 적이 있다. 소위 일종의 '밀당'과도 같다. 희망을 주면서도 또 너무 자만하지 않도록 밀당하면서 목표치를 위해 100%를 넘어 120% 이상을 발휘시키며 팀을 장악해 나갔다.


언더독의 반란은 '희망'을 준다.

사실 나 역시도 어제 경기를 보기 전 한국의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무승부를 거두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반 5분도 안되어 포르투칼에서 첫골을 내준 상황은 '그냥.. 들어가서 잘까?'하는 심각한 고민을 내게 가져왔다. 후반 추가시간에 기어이 역전해내는 한국을 보고, 바로 다른 곳에서 경기를 하는 우루과이와 가나를 떠올렸다. 그때만큼 우루과이가 더 골을 넣지 않고, 가나가 골을 넣거나 아니면 지금 상태로 끝날 수 있게 수비만이라도 잘해주면 좋겠다는 간절한 기도를 한적이 없다. 나도 한국사람으로 그때만큼 간절히 응원했다.


경기가 끝나고 16강 진출이 결정된 후 뒤늦게나마 에피소드를 적는 이유는 2002년 월드컵이 가져다준 희망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IMF 이후로 한국은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모두 희생했고 그 속에서 웃음보단 울음, 그리고 비통과 절망이 더 가까웠다. 나 역시 그 당시 부모의 좌절과 절망을 옆에서 지켜보며 같이 울었고 그래서 내 청소년 시기는 암울했고 스산했다. 웃었던 기억보단 빨간색 차압딱지가 우리 집 곳곳을 뒤덮은 희망없는 기억으로 이를 악물게 만들었다. 2002년 월드컵은 히딩크라는 혁신가를 포함해 선수들의 투지, 그리고 국민들의 응원 등으로 앞으로 다시 못 볼 수도 있는 월드컵 4강이란 입지전적인 성과를 냈다. 사실 내가 앞으로 죽기 전에 다시는 못볼 가장 확실한? 기록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그때 거리에 쏟아져나와 IMF 부채를 상환하고 응어리졌던 국민들의 마음을 표출하고, 희망이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만들어진 월드컵이었다. 언더독이 강자에 대항하며 노력과 투지를 바탕으로 승리를 보여준 그 모습은 모두에게 감동이었고 희망이었다. 2022년 한국은, 그리고 세계는 다시금 경제 침제기가 도래했다. 고용없는 성장, 부자가 될 수 없는 사회,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자식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시대 속에서 청년들은 절망하고 출산률은 전세계 꼴지,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은 산업화 시대를 이끌어온 기성세대들이 한숨 나오게 하는 현실과 직면해있다. 이 속에서 이번 월드컵 16강 진출이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 사실 우린 한번도 강자였던 적이 없다. 언더독이 훨씬 더 익숙하고 '한강의 기적'이란 말도 안되는 모습으로 증명했고 또 선도해왔다. 희망이 필요한 시대에 이번 월드컵으로나마 한국 사회가 그걸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다.


끝으로 2002년 월드컵을 회상하고 싶다면 조수미 님의 '챔피언'을 추천한다. 전주와 함께 '찬란한 아침 햇살이~' 할때 뭔가 갑자기 울컥한다. 나도 이제 서른 중반 아저씨가 다 되었나보다. 희망이란 낭만을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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