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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Dec 12. 2022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중꺽마'이 언더독, 그리 철저한 실패를 경험한 사람에게 주는 메세지

204번째 에피소드이다.


'중꺾마'란 줄임말이 유행이다. 대한민국이 극적으로 카타르 월드컵 16강에 진행하며 유행의 물결이 급속히 확산되었으나 '중꺾마'의 유래는 e스포츠에서 시작되었다. 리그오브레전드 2022 월드챔피언십에서 DRX는 출전팀에서 최약체로 꼽혔으며 가장 하위 라운드 플레이-인 스테이지부터 시작해야 했고 당시 1라운드 로그전 석패 후 주장있던 데프트 선수가 인터뷰를 하면서 "로그전 패배 괜찮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말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언더독의 반란이라고 일컫어질 정도로 DRX는 강자를 물리치고 세계정상에 올랐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16강은 마지막 경기까지 경우의 수만을 따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강호 포르투칼을 이기자 옆동네 경기인 우루과이 vs 가나전의 심장 쫄깃한 결과를 마음 졸이면 봐야했다. 9% 단, 9%라고 평가되는 16강 진출 가능성을 살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그 결과만으로 충분히 해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은 마음'이란 메세지는 크게 다를 것 없는 진부하다. 다만, 언더독 그리고 철저한 실패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현재 줄 수 있는 메세지로서는 탁월하다. 나 역시 '힐링'이라는 트렌드를 극히 혐오해왔던 이성주의자이지만 '중꺾마'가 말하고자 하는 처절하면서도 끝까지 버티려고 하는 마음가짐은 동의했고 지금 나를 대변하는 건 아닐까 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패를 자산으로 평가하고 그 기회 속에서 배우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만 실패자산이 내 앞에 펼쳐진 시궁창같은 현실을 바꿔주진 못한다. 가끔은 자존심 굽혀야 할 때가 있고 더럽고 치사해서 다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성공보단 실패가 익숙해지고 당연해지는 사회분위기로 가고 있기에 무던해보려고 하지만 무너지기 일수이다. 어느땐 핸드폰을 끄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싶어 그런 시도를 해보려고 했으나 다시금 핸드폰을 켜고 꾸역꾸역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들에 답변을 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 악물고 버텨내야만 한다." 버티는 과정에서 마음이 꺼이지 않은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육체적 고통만큼이나 정신적 고통은 힘들다. 우울증, 강박증 등이 엄습해오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제 정신과 진료, 그리고 심리상담은 흔한 형태가 되었다. 메세지의 간편화, 소셜미디어의 일상화는 매일 내가 추구하는 일들을 평가받고 피드백 받으며 그 속에서 자칫 작은 실수가 발생한다면 건강한 비판을 넘어 힐난으로 모든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철저한 실패는 이런 과정에서 모든 이를 짓누르고 정신적 피폐함을 가져온다. 이를 꽉 깨물고 버텨야 한다. 그저 어쭙짢은 조언으로 "그냥 무시해라, 남 시선에 크게 신경쓰지 마라"라는 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본인이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그 조언이 얼마나 한낱 이상적 액션플랜이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이 악물고 버텨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마음(정신)이 꺾이지 않아야 한다. 그게 꺾이는 순간 승부는 이미 결정되었다. 더 싸워봐야 제대로 된 정타를 날리지 못하고 학살에 가까운 도륙만 당할 뿐이다.


우리의 대부분은 인생을 언더독으로 출발하고 철저한 실패를 경험하며 살고 있다. 노력과 반성은 기본이고 그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꺾이지 않은 마음을 유지한 채 이 악물고 버티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중꺾마'를 보면서 초한지의 한신이 떠올랐다. 때를 기다리며 이 악물고 동네 양아치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었을 때, 한신도 현대판 '중꺾마'를 되뇌였을 것이다. 별 수 있나, 우리 모두 '중꺾마'해야지!


중요한 건 꺾이지 않은 마음, 그리고 이 악물고 때를 기다리며 버티기. 미련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메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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