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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Dec 06. 2022

엄마의 기말고사

중학교 졸업이 코 앞, 고등학교 입학이 눈 앞

203번째 에피소드이다.


오랜만에 저녁을 집에서 먹었다. 별다르게 저녁약속이 없어 집도착 10분을 남겨놓고 전화를 건다. "저, 오늘 밥 안 먹고 가는데요?" 그 소리에 엄마는 깜짝 놀라 저녁밥을 준비한다. 곧 도착했더니 급하게 끓인 어묵탕이 놓여져있다. "밥은요?"란 내 질문에 "밥 먹을려고 했지. 근데 너 온다고 해서 급하게 어묵탕 끓였어" 그 말인 즉슨 내가 저녁을 집에서 먹지 않았다면 어묵탕 마저 없는 그 조촐한 밥상으로 저녁을 떼울려고 한 엄마였다. "내년도면 이제 고등학생 아니에요? 이제 슬슬 대학 고민도 해야겠네요"란 내 질문에 부산에 위치한 전문대 몇몇 곳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냥 4년제를 가면 어때요? 학생들이랑 어울리기도 하고 만학도같은 전형도 있지 않을까요?" 엄마는 손사래를 쳤지만 매체에서만 본 캠퍼스의 낭만이 재밌기도 한 듯 미소를 지었다.


밤 늦은 시간에 자려고 누웠는데 밖에서 부스럭 소리가 계속 났다. 물 한잔 마실겸 나갔더니 식탁 위에서 엄마가 공부중이었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기말고사를 치는데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 지금 계속 보고 있어" 라고 제발 저려서 변명을 했다. 엄마 말로는 내 겨울바지 밑단을 줄여야 하고 김장김치에 치대기를 해야하는데 그 일정들이 쌓이다보니 기말고사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묻지도 않았지만 내게 말해주었다. 식탁 앞에 앉아 도와줄 것 없냐고 물었더니 재빠르게 '수학'부터 내민다. 다른 건 어떻게든 외워서 시험을 보겠는데 수학은 도저히 모르겠다고 했다. '공대생' 아들을 둔 덕을 삼십여년만에 가끔씩 보고 있다. 식과 방정식의 차이, 대입과 치환, 그리고 해를 구하는 방법, 중근의 개념 등을 설명해주었는데 엄마가 곰곰히 듣고 있다가 내게 딱 한마디했다.


"그냥 풀이식까지 다 외워서 시험 쳐야겠다."


ㅎㅎ 그건 내가 공대를 다니면서 전공과목시험 공부를 하다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을 때 쓰는 방법이었다. 그냥 전공책을 통째로 외워서 그저 쏟아내고 오기! 인간의 두뇌가 초집중할 때 얼마나 짧은 시간 내에 많은 것들을 외울 수 있는지 스스로 경험해본 분들은 잘 알 것이다. 나는 경험했고 엄마도 지금 이 때 경험하고 있다. 난 이왕이면 엄마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4년제 대학에 진학했으면 좋겠다. 캠퍼스의 낭만 뿐만 아니라 조금은 긴 안목으로 철학을 향유하며 사색도 할 수 있어야하고 대학생들과 팀 프로젝트 등을 하면서 협동이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해보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배움의 시기를 잠시 미루고 공장에서 미싱과 함께 수십년을 보낸 엄마에겐 뒤늦은 사춘기가 필요하다. 나보다 훨씬 더 고난과 고뇌를 겪으며 인생 레벨은 만랩에 가깝지만 이십대에 해보았을 풋풋한 고민을 지금이나마 해본다면 훨씬 더 완숙한 자아를 찾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도전을 항상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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