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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Dec 26. 2022

갭이어, 그리고 파란학기제

스스로 삶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진정한 교육

210번째 에피소드이다.


저번 에피소드에 연이어 읽어보면 좋다. 앞서 '동기부여'는 공부를 하게끔 하는 원천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 원천이 없다면 공부 자체의 목적성을 잃고 성취감은 얻기 힘들다. 한편'동기'를 찾았다고하여도 현재 우리의 교육시스템에선 주입식 교육에 주력할 수 밖에 없다. 학문적 성취, 실용적 적용을 하기 위해선 초기 일정기간 주입식 교육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한다. '암기'만큼 효율적인 것은 없으며 습득한 이후에 '응용'을 하는 것이 보통 범인들의 사고체계이다. 다만 주입식 교육만으로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절대로 끌어올릴 수가 없다.인간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유' 기반으로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밖에 없다. 인간은 본인이 가진 지식을 가지고 앞으로 미래를 판단하고 행동할 때 '초인'이 된다.  


외국에서 꼭 벤치마킹하고 싶은 사례가 있다면, '갭이어'를 들 수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기 전 1년 간 (gap year) 사회경험을 충분히 쌓으며 스스로에 대한 진로, 역량에 대한 정리를 한 뒤 대학에 입학해 전공공부와 함께 본인의 진로를 찾아가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 사회가 계속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 그리고 고민을 해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차없이 달려가는 기차는 성장기였던 대한민국 사회에선 "조금만 참고 대학가서 하고 싶은 걸 해"가 청년들에게 통했다면, 이제는 대학을 진학한 이들에게 전혀 통용되지 않는다. 정차없이 달렸던 기차는 또 정차없이 취업난 속에서 취업성공패키지를 위해 끊임없이 엔진을 가동한다. 내가 창업도 하고, 사회생활도 해보면서 가진 가치관 중 하나가 대학을 1년 재수한 재수생들을 굉장히 높게 치는 경향이다. 앞서 내가 언급한 일종의 갭이어를 반 강제적으로 한 것이다. 이 기간 느끼는 감정은 스무살을 마주한 이에게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열등감, 모멸감, 무기력감, 또 희망, 그리고 자신감, 성취 등은 그들 스스로가 1년 간 '재수'란 기간 동안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 시기만큼 본인 스스로에 대해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하는 감정을 느껴본 시기가 없다. 그래서 재수생과 비록 1년차이지만 그 차이가 자연스레 '형~'이라 나올만큼 크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갭이어' 운동이 꽤 오래 지속되었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나란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며 나란 사람의 위(멋져질 수 있는지), 아래(찌질해질 수 있는지)를 사회경험, 여행, 봉사활동 등을 통해 설정할 수 있다면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또한, 최근 고교학점제 논의 등으로 활발히 스스로 과목을 선택하고 학습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더 나아가 '파란학기제'같이 스스로 과목을 만들고 행동하며 그 결과에 대한 인정, 그리고 보상이 동반될 필요가 있다. 파란학기제는 아주대학교에서 시행된 것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학생들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구성해 학점신청을 하면 대학본부에서 학점과목으로 승인하고 학기종강 이후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내는 방식이다. 과목의 구성하는 방식은 대단히 자유로우며 영화제작, 광고제참가, 로봇설계 등으로 그룹 구성원이 서로 간 논의하고 합의한 것이면 된다. 대학은, 그리고 교육은 아래 명제는 솔직히 인정하고 접근해야 한다. "전공서적에 기술된 이론과 학습내용은 이미 책에 인쇄된 시점부터는 트렌드하고 시대를 완벽히 대변하지 않는다." 가장 그 유행을 선도하는 건 그 시점에 관심을 가지고 적용하는 학생들이다. 어느정도 암기를 기반한 주입식 교육이 진행되었으며 이제는 '린스타트업' 방식으로 적용하고, 부족하다면 새로운 방식도 연구해 적용해보며 사회로부터 판단받아보는 방식이 유효하다. 실패를 한다면, 실패자산으로서 그 회고로 반성하면 된다. 일부 작은 성공은 한다면 더 큰 성공을 위해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행위가 덧붙여지면 된다. 이 과정 자체가 교육의 궁긍적 도달로 인간의 잠재력을 극대화시켜 무언가를 창출하고 성취할 수 있는 어떤 방법보다 훨씬 더 낫다.


나는 '자유로운 인간'의 잠재력을 믿는다. 아니, 결국 믿어야 한다.

그게 시대를 발전시켜왔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교육'은 큰 중추 역할을 해왔다. 최근 부쩍 혁신(innovation)을 부르짖는 사회 곳곳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솔직히 말해 그들이 말하는 혁신(innovation)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겠다. 그저 현실 면피용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 나은 시대를 위한 혁신을 하려면, 무조건 인간에게 자유를 주고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 성취를 내게 하는 반복적 학습 밖에 교육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본인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주고, 위와 같은 반복적 학습을 통해 완성시켜나가는 것이 한 인간이 개인의 능력을 최대치로 가장 적절한 곳에서 발휘하며 시대의 발전의 한축으로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성장에 동시 일조해가는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 그나마 괜찮은 선택지에 도달 할 수 있다.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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