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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Jan 25. 2023

더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영감님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죠? 저는 바로 지금입니다."

218번째 에피소드이다.


'슬램덩크'는 우선 문화가 되었다. 근래 더퍼스트 슬램덩크가 개봉하고 나서 크리에이터 침착맨, 배성재 등이 예전에 진행한 '슬램덩크 명장면 월드컵' 영상컨텐츠를 다시금 봤다. 댓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제 슬램덩크는 문화가 되었네. 마치 삼국지연의처럼, 지학의별 마성지가 어떻고, 만약에 윤대협이 승부욕이 좀 더 강했다면 어떻고 하는 가정과 논쟁이 난무하니 말이다."였다. 생각해보니 스타크래프트가 바둑과 장기를 대체했듯이, 삼국지연의는 슬램덩크로 대체해도 신기하리만큼 3시간은 넉근히 입을 털 수 있다. 슬램덩크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만화책보다 TV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접한 내겐, 구리다 못해 뭔가 정상적이지 않았던 TV의 안테나를 요리조리 돌리다보면 다행히도 잘나오는 시점을 발견하고 아주 조심히 손을 슬쩍 놓고 안테나를 휴지곽으로 고정시키면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은 금새 시작하곤 했다. 북상vs해남전이 애니메이션상으론 마지막으로 나오곤 하는데, 만화책 시점으로 보면 그건 시작을 의미한다. 학창시절 체육시간만 되면 농구공 하나들고 수없이 농구를 해댄 계기는 별거 없고 바로 '슬램덩크' 때문이었다. 아직도 회자되는 전설의 명대사 "왼손은 거들뿐", "그래. 난 정대만. 나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지" 3점슛이 들어가면 수없이 외쳤던 대사이다.


인물 중에서 정대만은 '내러티브' 측면에서 완전한 기승전결을 가진다. 아직도 회자되며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이유는 도내MVP였던 중학교 시절을 거쳐, 무릎 부상으로 완전히 선수생명이 끝나 방황했던 시기, 2년간의 공백을 깨고 눈물과 함께 "농구가 하고 싶어요"라고 울부짖은 후 완전히 자존심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한 뒤 슈팅가드로서 외곽에서 3점슛을 날리는 그였기에 대서사가 절묘하다. 특히, 2년간의 공백이 체력적 문제로 나타나고 후반전에는 극도로 움직임이 둔해짐에도 불구하고 "불꽃남자, 포기를 모르는 남자" 등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모습은 인간 그 자체의 삶이기도 하다. 위기, 실수 한번 없이 사는 인생이 없듯이 그걸 어떻게 반성, 극복하고 다시금 올라오는지가 대중들에게 공감 그 자체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감동이 나오고 모두가 팬이 된다. 정대만 이외에도 NBA 악동 로드맨을 모티브로 한 '강백호'가 있다. 로드맨 자체가 불우한 환경에 태어났지만 근성 하나만으로 '리바운드 왕'을 차지한 선수이다. 코트 밖으로 나가려는 농구공을 향해 온몸을 날리는 그를 보면 스포츠맨십이 무언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무언가 몰입하고 집중하면 그뒤에 내가 바닥에 구르고 있을 건 생각나지 않은 그 무언가의 감정.. 슬램덩크의 강백호 역시, 로드맨과 같이 단지 농구공을 살리기 위한 집념으로 몸을 살린다. 거기서 허리 부상을 입고 교체가 되지만 안 감독님한테 가서 이 명대사를 전한다. "영감님의 영광은 순간은 언제였죠? 국가대표 시절이었나요? 저는 바로 지금입니다."


더퍼스트 슬램덩크에서 바로 이 장면이 나온다. 영화관에서 혼자 보고 있다가 왈칵 눈물이 나왔다. 또르르 내 볼을 타고 떨어졌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성취해내려고 하는 노력은 위대하다. 강백호의 첫 시작은 채소연이란 같은학년 동급생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후반부에 채소연 앞에서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를 외치는 건 채소연이 아닌 농구에 대한 그의 진심이다. 뿐만 아니라 채치수, 서태웅, 송태섭, 권준호 등도 충분히 입체적이고 매력적이다. 마치 대서사가 완벽한 한 세대들의 인생 일대기를 보는 듯하다. 


더퍼스트 슬램덩크는 북상의 포인트가드인 송태섭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에선 볼 수 없었던 전국대회 출전기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극중 전국 최강으로 나오는 산왕공고와의 대결을 다룬 편으로 모든 상황 및 예견된 결과를 알고봐도 재밌다. 사실 그게 정말 명작의 필수요소다. 다만 슬램덩크란 방대한 양을 2시간 내외 영화시간으로 담을 수 없기에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사연이 다소 밋밋하게 지나가는 장면이 있지만 나 뿐만 아니라 슬램덩크를 들어만 봤던 세대들에게 감동과 재미를 같이 공유할 수 있다는 자체가 크게 영광스러울 따름이다.


한번 본 분들은 박상민 가수의 슬램덩크 OST '너에게로 가는 길(Crazy for you)'을 꼭 들어보시길 바란다. 영화관에서 나온 영화OST도 좋지만 심장을 쿵쾅쿵쾅 뛰게 하는 전율의 노래임에 틀림없다. 강추!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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