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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Jan 16. 2023

30대 후반 박사를 꿈꾸는 나에게

현실과 이상의 균형을 잡고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 선택들

217번째 에피소드이다.


'진로'는 청소년만의 영역이 아니다. 태어나 자아를 찾고 역량을 기르면서부터 마주하는 현실이다. 최근에는 은퇴한 후에도 '제2의 진로'란 용어로 다시금 존재의 이유를 요구한다. 하물며 청년세대들에겐 얼마나 진로란 녀석이 얼마나 달달 볶겠는가? 청소년시기엔 그래도 기다려주는 사회의 시선이, 청년세대에겐 냉혹하리만큼 얄짤없다. 나 역시 머리는 히끗히끗 흰머리도 생겼고 다이어트가 아닌 생존을 위해 매일 운동하는 '아저씨'가 되었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규정하는 청년세대는 생각보다 길다. 나는 아직도 끔찍하게도 '청년'이다. 앞서 말했듯 청년이기에 '진로'는 나를 끊임없이 달달 볶고,'사회의 시선'은 냉혹하리만큼 얄짤없다. 가끔 쉴때면 혼잣말로 '먹고 살기 더럽게 힘드네'란 말이 점점 입에 습관처럼 붙는다. 하지만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한동안 진로의 '가지치기' 시기였다. 앞선 에피소드 중에서 '30대 후반 박사를 꿈꾸는 당신에게'(https://brunch.co.kr/@com4805/20)라고 1여년 더 전에 작성하였다. 우선 미국유학을 꿈꾼 난 바로 그 꿈을 고이 접어두었다. 그 당시 코로나가 극심하여 유학준비가 상당히 어려웠고 제한적이었다. 최근 박사 과정 모임을 나가면서 나와 상당히 유사한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해외 박사과정들을 지원하려는 분들이 시기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국내 박사과정으로 유턴한 사례가 많았다. 또한 나는 국내에서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해외 박사는 처음부터 '운칠기삼'에 기댄 측면이 컸다. 그렇기에 후일 또 다른 방식으로 유수의 외국대학에 방문학자로 갈 수 있도록 타진해보는 것이 현실적이었다. 내 첫번째 가지치기는 그렇게 훌훌 털어버렸다. 국내 로스쿨 입학도 고려해서 시험 및 원서준비를 했었다. 결론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험인 '리트'를 압도적인 점수로 획득하지 못해 고민에 빠졌다. 로스쿨 준비를 철저히 해온 축에 속한 높은 학점, 영어성적도 아니었고 평균 나이대에 비해 연령이 높았기에 운좋게 합격하더라도 굉장히 뒤처진 상태로 3년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학업과 병행하려고 했던 내 오만과 자만은 철저하게 무너졌다. 삼심대가 되어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직장과 직업이 없이 무언가에 올인해야만 겨우 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판단되는 상황은 공포 그 자체이다. 여기서 나는 그 공포심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무모한 도전은 내가 운이 좋아 시작을 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올인을 하고 혹시나 그것이 실패하면 높은 확률도 옥상 위에 올라가야 했었다. 그래서 내 두번째 가지치기 또한 그렇게 훌훌 털어버렸다. 향후 법학문에 대한 미련은 남기에 방송통신대 등 온라인 형태로 직장과 병행할 수 있는 로스쿨이 생긴다면 나는 다시금 '배울 수 있는 기회', '도전해볼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싶다. 최선을 다해보고 안되면 살길이 있어야 안심이 되는 것 같다. 올인은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 싶다. 이십대보다 훨씬 더 공포심도 많아지고 두려움은 열배 더 많아진 삼십대 아저씨가 되었다.


그렇다고 '가지치기'에 대한 미련이 남는 건 딱히 없다.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했고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판단,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고 선택했다. 무작정 '삭제'한 것이 아니라 그나마 나중에 또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대안마련'을 구상했다. 뭐, 그러면 된 것이다. 생각보다 삶이 내맘대로 되지 않음을 수없이 잘 알지 않는가? 체념한다기보다는 플랜B,C의 선택을 하며 계속 그나마 더 나은 결과를 찾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결국 선택지는 국내 박사과정이다. 어드미션은 이미 받았고 직장과 병행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에 지도교수님께 면접 때 간곡히 설득하고 설명드렸다. 이공계를 전공한 내게 석사, 그리고 박사는 모두 사회학과 같은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전공을 선택했다. 내 이십대를 그 누구보다 잔망스럽게 살면서 사회와 맞닿고 고민하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보려고 했던 행동들이 쌓인 결과물이다. '30대 후반 박사를 꿈꾸는 당신에게'란 앞선 에피소드에도 언급했지만, 30대 후반 박사가 가진 '끈질긴 생명력'을 믿는다. 엄청난 학문적 실력으로 인해, 또는 타고난 경제적 여유로움을 통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연구자들에 비해 3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박사과정생들은 잘난 것이 하나 없다. 직장생활과 병행하며 육아, 생계 때문에 더러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기도 하고, 잔업처리 때문에 뒤늦게 수업시간에 도착해서 교수님께 꾸중을 듣기도 한다. 가끔은 꾸중을 넘어 '이럴꺼면 자퇴도 진지하게..'라는 냉혹한 조언도 듣는다. 하지만 결국 해낸 분들은 정말 나는 높게 친다. 현장성, 그리고 사회성, 이론까지 삼박자가 겸비된 박사들의 노력은 소주 한잔 기울이게 되면 하루가 넘도록 '눈물없이 들을 수 없는 썰' 파티가 열리는 단골 소재가 된다.


나도 결국 돌고 돌아 30대 후반 박사를 꿈꾼다. 해외대학도, 전문석사도 아닌 국내박사로 다시금 굳게 마음 먹는 과정에서 솔직히 내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 좌절이 수없이 존재했다. '난 왜 이것 밖에 되지 않지? 아.. 조금만 더 똑똑했으면 좋겠다.'라는 자책감으로 보낸 세월이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균형잡아가며 나름의 방식대로 '가지치기'를 했으며 선택지에 후회는 없다. 다만 또 막차를 놓쳐서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쌍욕을 할 내 모습, 논문작성을 위해 밤새서 조사해간 논문 구조가 한 순간에 교수님께 허물어지는 내 모습, 학비 마련을 위해 경제적으로 긴축을 하는 내 모습 등이 눈에 훤하다. 아마 혼자서 눈물 훔치고 벽에 대고 혼자 욕하고 하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눈물은 노력으로 바뀌고 욕은 성취로 바뀔것이다. 난 그 과정의 결실을 믿는다.


오늘만큼은 30대 후반 박사를 꿈꾸는 나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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