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한잔의 여유 Feb 26. 2023

챗GPT와 로봇세의 도입은?

공상 속에서 향후 미래 사회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225번째 에피소드이다.


챗GPT가 나오자 구글이 긴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지개를 켜고 AI챗봇을 한창 준비하던 메타은 더 분주해졌다. 검색엔진 체계를 바꿀 수도 있는 대안제로서 챗GPT가 검토되고 있다. 현재 우린 텍스트의 시대에서 미디어의 시대를 지나가고 있다. 네이버, 다음 포털 사이트를 거쳐 압도적 검색기능을 자랑하는 구글은 시대를 장악하며 굴지의 위치를 차지했다. 구글이 인수한 유튜브는 검색엔진을 대체하며 텍스트가 아닌 미디어로 결과를 도출하고 이해시켰다. 챗봇은 기존에도 있던 기능으로 CS 분야에서 종종 사용되곤 하던 기능이었다. 상담사 기능을 대체하여 FAQ와 같은 반복적이고 형식적인 질문을 답할 수 있었다. 여기서 AI라는 반복학습이 가능한 기술체계가 붙으면서 인간보다 월등히 많은 양의 정보를 해석하고 결과를 도출해내는 수준까지 왔다. 챗GPT를 통해 경쟁이 불붙은 AI챗봇 시장은 3차 그래프 이상의 속도로 기능을 향상시켜 우리의 삶의 변화를 요구하고 적용과 함께 새로운 시장의 형성, 기회와 일자리 창출이 쏟아져나올 것을 전망한다. 호재인 셈이다.


공상 속에서 향후 미래 사회를 가늠해보자면, '로봇세'는 계속적으로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란 '휴보' 이족보행로봇의 원천기술을 중소기업에게 투자해 큰 관심을 받았다. AI챗봇뿐만 아니라 산업용 로봇도 압도적 기술의 향연을 보여준다. 정확성, 정밀성, 그리고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는 혁신성까지 겸비한 로봇은 이미 인간 노동력의 최대 경쟁자이다. 일자리를 두고 갈등이 일어나는 세대 간의 다툼, 포용적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로봇과의 대결에 비하면 새발에 피다. 현재 직면한 미래사회는 대혈투를 직면하고 있다. '로봇세'는 어찌보면 타협의 산물이다. 절대적으로 노동생산력을 따라갈 수 없기에 인간은 로봇에게 그 자리를 양보하고 생산력에 맞춰 로봇을 보유한 기업, 단체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재분배를 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고자 하는 형태이다. 향후 미래사회에서의 기업 경쟁력은 우수한 인재를 얼만큼 보유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우수한 로봇을 몇대 보유하고 있는지로 변할 확률이 크다. 또한 로봇을 제어해나가는 제어매니저 역할은 크게 각광받고 실제 생산을 담당했던 근로자의 일자리는 급속도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절망적이게 보이는 상황이지만, 되레 '기본소득'을 검토해볼 수 있는 시기와 맞닿게 된다. 로봇세로 마련된 세수는 국가생산력이 크게 줄지 않고 거두어진다는 가정 아래 재분배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현재 복지로 지출되는 체계의 비효율성을 개편한다면 '기본소득' 형태가 도입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문화생활을 즐기고 예술과 문학 등의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된다. 어딘가에서 일을 한다는 건 성취감을 얻고 살아있는 자아에 대한 인정을 느끼는 과정이지만, 한편으론 여가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치환한다는 의미이다. 여가시간이 확충이 될 경우 문화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다. 다만, '기본소득'이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은 복지체계의 비효율을 바로 잡고 공동부담 체계를 개인에게 '기본소득' 재분배를 통해 스스로 복지의 지출비용을 판단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는 아래 가능하다. 또한, '기본소득'은 만능이 아니며 개인이 노력해 추가적으로 수입을 얻고자 하는 기회를 보장함으로써 '기본소득+근로소득=총 수입'을 권장해야 한다. 다만, 기본소득 정도의 수입으로만 만족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형태도 인정하자는 취지다. 나는 권장할만한 형태는 있다고 판단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오로지 정답은 아니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역사는 발전한다 믿는 편이다. 다만, 니트족 또는 욜로족의 양산은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일부 문화산업 발전에 긍정적 기여는 있겠으나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인가에 대한 의문은 제기된다. 나 역시 곧잘 생각해보면 그건 바람직하단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도하게 모든 이들이 니트족(또는 욜로족)을 추구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건 위험하단 생각일 뿐이다. 세상 모든 이가 성공하고 싶단 기본 욕망은 가지고 있으며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좁아진 근로소득의 문을 뚫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한다는 건 변하지 않을 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난 항상 국가보다 개인이 더 유능하며 본인의 성장과 생존을 위해 상상초월할 정도의 노력을 한다는 걸 믿는다.


가끔씩 미래사회에 대한 '공상'에 빠지곤 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로봇들이 일자리를 대체해나가는 것을 언제까지 막을 수 있겠나 라는 체념과 비슷한 타협을 한다. 현상을 직시하고 그것 어떻게 하면 그전까지 이상향 속에 머물러 있던 제도나 정책들과 유기적으로 연계해 동시에 풀어가는 연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앞으로 수많은 변화 속에서 그러한 기점은 계속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로봇세'와 '기본소득'을 함께 묶어 해결해보는 공상을 해보곤 했다. 다른 한 가지는 '노동의 유연화'와 '이중 고용보험 가입(N잡의 공식적 허용)' 가 있다. 미래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다. 다만, 이전에는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았던 일들이 손에 잡힐듯 그려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때, 그 하나의 단편적 사고에 머물지 않고 캐캐묵었던, 그러나 한번즈음 시도해볼만한 아젠다들과 연계하여 일종의 Give&Take 정신으로 동시에 진행해본다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가 있다. 그 변화를 충분히 견디고 나은 방향으로 응용해나갈 수 있다는 개인들의 역량을 믿을 때 역사는 발전한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의 소원은 남북통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