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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Mar 03. 2023

아버지의 고장난 무릎

한달 동안 아버지의 빈자리, 그리고 사랑꾼 엄마

226번째 에피소드이다.


사실 내게 아버지는 멀기도 하면서 가깝다. 핸드폰 저장명에 각각 아버지, 엄마라고 다소 이질적으로 저장된 것을 발견하고 얼른 바꾸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전혀 가부장적인 분은 아니다. 오히려 수평적 자세로 대화하고 친구같은 면이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보단 아버지가 더 어울리는 건 한동안 떨어져 살았기에 느끼는 낯설음과 잡초같이 다시 일어나는 걸 보여준 존경심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에 대해 다소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만큼, 요새 들어 아버지와 삼십대 인생 이야기를 하면서 효도를 못하고 내 라이프스타일의 존중만을 요하고 있어 미안하다. 연애와 결혼이란 큰 장벽에 아버지는 본인이 잡초같이 다시 일어선 과거를 회상하며 자식만은 그 전처를 밟지 않기를 바라지만 스타일과 재미란 내 나름 선험적 가치로 쌓인 지향점은 쉽게 타협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버지와 누구보다 대화를 많이 하지만 백분토론 현장인지 아버지와 아들 관계인지는 가끔 의문이 들 정도이다. 끝없이 토론은 있지만 아직까진 별다른 합의점은 없다.


며칠 전 아버지가 본인 무릎 수술로 인해 한달 동안 자리를 비운다고 했다. 나야, '아. 그런갑따'하는 마음으로 캘린더에 스케줄을 저장해놨는데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버지와 매일 전화를 하란다. 조용히 알겠어요 하면 될 걸, 나는 "왜요?"라고 특유의 미치광이 성격이 발휘된 의문문이 나오고 만다. 엄마는 나를 잡아놓고 아버지가 무릎이 아픈지 얼마나 오래되었는데, 일하느라고 참고 또 참고 최근에는 너무 아파서 제대로 앉고 걷지도 못하는데 급한 일들을 이 악물고 해내고 이제야 수술을 하는 줄 아냐고 물었다. 그러니 하루에 한번씩 꼭 아버지한테 전화통화를 하라고 당부했다. 나는 또 미치광이 성격이 발휘되어, 캘린더에 '아버지 전화통화' 스케줄을 만들어 특정시간 매일 반복 버튼을 생성했다. 아무튼 그 알람을 울릴 때마다 매일 통화를 한지 며칠 째다. 아버지는 수술이 잘 끝났다고 들었고 병실에 누워서 책만 보고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아버지와 매일 이렇게 통화한 적이 있었던가? 아마 태어나서 처음있는 일일 것 같다. 살가운 성격이 아닌 내가 전화할때마다 아버지도 놀랐는지, "어. 웬일이야?"라고 되묻곤 한다. 나도 크게 할말은 없어 하루일과를 대충 빠르게 말해버린다. 통화는 고작 삼분 내외로 끝나지만 한달 간 이러다보면 좀 더 살가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잡초 근성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 나를 밟으면 깨갱하지 않고 '그래, 네가 나를 밟았어? 더 밟아봐. 나는 절대 안 무너져. 다시금 어떻게든 일어날꺼야. 그게 나야."하는 마이웨이 악바리 정신으로 살아왔다. 당연히 그 유전자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았다. 나보다 더한 악바리로 본인의 밑바닥을 본 아버지는 다시금 이 악물고 그 환경을 바꾸었고 재기했다. 나는 이 점에서 아버지를 높게 평가하고 존경한다. 엄마가 아버지의 책임감을 믿고 버텼고 아버지는 기대에 부응해 악바리로 일어났다. 그게 지금 현재 우리 가정이 해체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다. 내 아버지의 삶은 그 무엇보다도 고장난 무릎이 그걸 증명한다. 열심히 살아오셨다.


엄마가 요새 저녁마다 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댄다. 코로나 등으로 병원입실 날에도 얼른 옷가지만 챙겨주고 병원에서 쫓겨나듯 나왔다고 했다. 아버지를 혼자 남겨두고 나오니 마음에 걸려서 보고싶다고 했다. 아마 두 분은 모르긴 몰라도 천생연분인 듯 하다. 엄마가 오늘은 일반통화가 아니라 영상통화를 매일 하라고 주문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못 들은 척 얼른 자리를 피했다. 매일 일반통화도 힘든데 영상통화라니..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미묘한 줄다리기다. 나는 다행히도 가부장적이지 않고 한번 앉으면 토론을 많이 하는 서로 간 악바리 성질을 존중하는 아버지와 함께 삼십여년을 함께 보냈다. 청소년 땐 섭섭함을 많이 가졌지만 지금은 모두 존경심으로 치환된 것 같다. 무릎이 치료되는 한달이란 아버지의 빈자리는 가족들에겐 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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