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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Oct 23. 2020

K군과 나눈 9년의 시간

이제 저와 친구해주시면 안될까요?

스물두번째 에피소드다.


음, 오늘은 K군과의 인연을 적고자 한다. 저번 에피소드에서 잠시 언급했던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게 된 연유와 연결된다. '12년.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 설립을 위해 뛰어다녔고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장학회란 네이밍으로 단체가 설립되고 모두가 놀랄 성장기가 도래할 즈음 내 평생의 은인이자 은사님께 연락이 왔다. "인호야, 부산에 한번 올 수 있니?" 공부방 설립을 할 때부터 은사님께 자문을 많이 구했던 터라 내가 하는 일을 잘 알고 계셨다.


부산에 내려갔더니 은사님은 K군을 나에게 소개시켜주었다. 내려오기 전, K군의 상황을 들었기에 나 역시 조심스러웠다. 기구한 사연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그 여파로 누님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고작 고1에게는 그것이 참,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K군은 굉장히 멀쩡했다. 처음 그 모습을 보고 조심스러움을 넘어 두려움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와 밥을 같이 먹으면서 유심히 K군을 관찰했다. K군은 정말 밥알을 꼭꼭 씹어먹었다. 이가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그 모습 속에서 난 K군이 슬픔과 두려움을 참고 있다 느꼈다.


"(특유의 말투로) 친구야, 장학회에서 장학금을 집행하는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 내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그것보다는 나랑 약속 하나만 하자. 나도 돈이 개뿔도 없거든?" "근데 매달마다 15만원씩 보내줄께. 일단 그걸로 놀아.! 무조건 놀아." "대신 한달에 1번은 내가 부산에 꼭 내려올테니 같이 밥 먹자.! 어때, 쉽지?"


나도 부자가 아니기에 15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택시보단 대중교통을 더 많이 탔다. 그리고 은근히 한달에 1번씩 부산에 내려오는 것이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그 약속을 지켰다. 1년이 지났고, 또 몇 개월이 지났다. K군의 눈빛이 조금 순해졌다. 그렇게 K군은 3학년이 되었다. "저.. (나를 부르는 특유의 호칭) 대학을 가고 싶은데요."


그 소리에 난 K군과 같이 밥을 먹다가 갑자기 울컥했다. "그래?" "(특유의 말투로) 친구야, 일년도 안 남았네. 죽었다 생각하고 이제 공부해. 노오~오력해야 한다. 별수 없어."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나? 그 녀석 대학 등록금은?' 우연치 않게 대한민국 인재상 공고를 보았다. 상금이 250만원이었다. "유레카! 저거다" 앞서 내 소개글에도 적었지만, 난 전~혀 선하지 않다. 이해타산적이고 불의와 불공정함에 자주 순응한다. 그렇기에 내 대한민국 인재상의 동기는 순수하지 않다.


다만 그 상금이 누군가의 삶에 진심으로 도움이 된다면 나 혼자 순수하지 않으면 될 문제였다. 면접을 보러갔다. 심사위원이 상금을 받으면 어디에 쓸꺼냐고 물었다. 난 거짓말하기는 싫었다. "아.. 상금을 받으면 2백만원은 K군 대학등록금 보태줘야하고, 50만원은 부모님 줘야죠. 제가 불효자거든요" 그해 나는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연말이 되니 상금이 내 통장으로 들어왔다.


그 즈음, K군은 수시로 입시결과가 나온 상태였다. 정말 다행히도.. K군은 부산의 모 사립대에 사회배려계층 전형으로 장학금을 받고 가게 되었다. 내가 전화를 했다. "(특유의 말투로) 친구! 축하한다. 그리고 통장 확인해봐." 2백만원은 계획대로 K군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대학가면 수업료 장학금만으로는 못 살아. 딱 한번만이야. 나도 개털이거든" "그걸로 가방이나 책도 사고 옷도 사서 연애는 꼭 해라" "그리고 돈 부족하면 야간이나 새벽에 잠 줄여서 아르바이트해. 그게 인생이야."


그 뒤부터는 서로 별 다르게 연락이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기도 했으며. K군도 이제 성인이고 나도 하루 하루 사는게 버거운 개털인 사회인이었기에 그랬다. 어느 날 나에게 연락이 왔다. "저.. (나를 부르는 특유의 호칭) 군대가요." 내가 말했다. "그래, 잘 갔다와. 2년 금방 간다. 위험한 건 시켜도 하지마. 군대에서 다치면 억울해."


그렇게 K군은 군입대를 했다. 나도 나이를 더 먹어 하루 하루 사는게 버거운 개털인 사회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밤 11시가 넘어 일을 마치고 내가 살던 오피스텔 출입문을 열었다. 우편함에 편지 한통이 와있었다. K군의 편지였다.


지친 몸을 해바라기 샤워기에 맡긴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다시금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잘 준비를 하고 K군의 편지를 뜯어봤다. 또 저... (나를 르는 특유의 호칭)으로 시작되는 도입부. 그리고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 5장이나 되는 긴 막연체의 편지글은 지루했다. 5장째로 접어들고 K군은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괜찮으시다면.. 이제 저와 친구해주시면 안될까요?"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와 주체를 할 수 없었다. 얼마나 오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다. K군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도움을 준 이와 도움을 받는 이, 그 미묘한 관계가 지속되어왔구나.' '얼마나.. K군은 나에게 저.. 라는 표현보다, 형~ 또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준 친구라고 부르고 싶었을까..'


그 뒤 나는 K군과 친구가 되었다. 나이 그거 생각보다 별 것 아니다. K군은 나보다 더 인생의 굴곡이 심했고 잘 극복해내어 왔다. 그 자체로 나이는 큰 의미가 없어진다. K군과 나는 가끔 통화한다. 이제는 군대 제대도 하고 연애도 많이 하는 카사노바에 능글능글해졌다. 그리고 전화를 받으면 귀찮다는 듯이 투명스럽게 받는다. "왜요? 무슨일인데요?" 그 목소리에 난 "이 자식아. 해 뜬 지가 언젠데 빨리 일어나서 일하든 공부하든 열심히 살아."


말은 이렇게 해도 난 K군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안다. 넉넉하지 않은 생활 형편으로 휴학을 해서 돈을 벌고 다시 학업을 이어가고 도서관에 쳐박혀 공부를 하다가도 새벽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부터, 상하차 아르바이트도 하는 걸 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인생을 살고 있으며 사회에 자신의 존재를 외치고 있는지 안다.


공기업을 준비하는 K군은 얼마 전 한번 쓰디 쓴 취업실패를 겪었다. 그래도 나는 안다. 결국 K군은 잘 될 것이다. 그 어두운 과거를 겪어내고 사회를 설득시키고 있는 그를 보면 안다. 그는 분명히 잘 될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K군이 성공하지 못하는 사회라면 그건 불공정하다. 그리고 불평등하다. 그런 사회는 올바르지 않다. 만약에 그런 사회가 현실이라면 내가 꼭 바꿀 것이다.


"K야.! 내가 빈말 안하는 사람인 것 잘 알지? 넌 꼭 잘 될 것이다. 그러니 한번 미끄러졌다고 낙담하지마라" "네가 극복해온 시기는 누구보다 대단한 것이다. 사회한테 마음껏 소리질러 외쳐라. 너란 놈이 살아있다는 걸" "응원한다. 오래 보자." -너의 9년째 친구인 김인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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