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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Mar 15. 2023

창업, 폐업 그리고 N잡 신변잡기

내 주변 근황, "직접 경험해본 자"들의 처절한 생존 투쟁기

228번째 에피소드이다.


보통 '공감'이란 단어를 쉽게 남발하는 경향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존재한다. 나는 태생적으로 타고난 성격이 모나서인지 모르겠으나 '공감'이란 표현보다 '문맥상의 이해'란 표현을 많이 쓴다. 앞뒤, 문맥상으로 어떤 말인지는 알겠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정서적 공감은 못했을 수 있다. 이해와 공감은 전혀 다르다. 단 '공감'을 무조건 아는 방법은 존재한다. 앞뒤, 가리지 않고 그냥 그것을 해보는 것이다. 동일한 선상에서 그걸 보고 듣고 느낀다면 나는 이해를 넘어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충분한 시간이 인간에겐 없다. 본인이 관심있는 극소수의 분야를 찾고 몰두하고 성취해내는 과정만해도 힘이 들고 벅차다. 즉, '공감'이란 건 쉽게 쓸 단어가 아니며 '이해'를 기반으로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남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최근, 내 주변 근황은 극단적이다.

어제 내 측근 중 한명은 '폐업'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화가 왔다. 나름 사업체를 안정화시켰다고 생각했기에 '아? 진짜'라고 되물었을 뿐이다. 그는 개인 프리랜서 강사로서 잘 나가고 있고 더 큰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 구성원들과 함께 '창업'을 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고 발견한 건 강사란 직업에 집중 못하고 행정과 인사에 쪼들린 본인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올해까지 사업체를 모두 정리하고 온전히 본인을 위한 삶을 살겠다 했다. 짧지만 굉장히 심도깊은 고민이었다. 충분히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그였기에 "모르긴 몰라도 네가 프리랜서, 개인사업자로 다시 돌아오면 지금보다 3배는 더 부자면서 업무경감을 줄어들 것 같아"라고 동의해주었다. 또 이십년지기 내 친구는 '창업'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뒷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수산물 분야 영업직, 소매업장 매니저까지 잔뼈가 굵은 친구는 분명 일년 전만해도 창업은 정말 나중에 할 일이라고 못 박았었다.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월급쟁이로 살다보니 결국 나중에 가정을 꾸리고 살면 그 나중에란 창업 순간은 안 오고, 결국 못 해봤던 것으로 남을 것 같더라"고 말해줬다. 이 역시 굉장히 짧고 심도있는 고민이었다 충분히 고민했을 친구였기에 "내가 수산업, 유통업 쪽으로 창업을 안해봐서 완전 공감은 못하고 이해 정도만 하지만 내가 본 너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끊임없이 해내왔기에 별 걱정없어. 다른 누군가는 창업이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보는 경향도 있겠지만 나야 창업을 해봤으니 그 자체가 누군가만 할 수 있는 엄청난 산물이 아니라 얼떨결에, 어쩌다하는 산물이란 걸 너무 잘 알아. 너무 당연한 결정과정일꺼니 주변에서 보는 걱정스레 보는 시선은 무시해도 돼. 어차피 그들은 너보다 더 너에게 대해서 고민하지 않거든" 라고 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비즈니스 모델을 구조화해서 사업계획서 작성하는 걸 한참 도와주었다. 내 오랜 친구의 일이니 당분간은 내 일같이 도와주기로 했다. 구체적 사업모델을 듣는 과정에서 '공감'보다 '이해'하는 것도 꽤 버거웠다. 마지막으로 최근 재미난 분을 만났다. N잡러로 대(大)상인의 기질을 보이며 여성의류 쉐어를 통해 꾸준히 월별 짭잘한 수익을 낸 분이다. 프리랜서로 일하시는 건 알았지만 800여벌의 옷을 보유해 대여해 월급 이상의 수익을 내시는지는 까마득히 몰랐다. 물론 나는 삼십오년 동안 평생 산 옷이 800벌이 안 될거다. 패션에는 문외한이며 드라마를 보다가, 회사에서 다음날 출근할 때 똑같은 옷을 입고 나가면 "XX, 혹시 집에 안 들어갔던거야? 둘이 무슨 일 있었어?"라는 대사를 보고 한참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그 논리에 따르면 난 거의 집에 안 들어간 택이다. 하지만 난 집이 분명히 있다. 다만 옷이 없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 분이 대단하게 느껴지고 '공감'은 못했으며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IT기술의 발달로 정보의 격차는 줄어들고 거리의 제약은 사실상 없어지고 (또는 내 주변 인근 수요를 정확히 파악해서 바인딩해주고) 공유(쉐어)경제가 활성화되며 N잡러란 직업군이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나 역시 스스로 N잡러라고 칭했지만 대(大)상인이 손을 뻗고 계신 그런 분야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해'하는데만 해도 진땀을 뺐다. 위의 사례에서 결국 말하고자 하는 건 '공감'이란 건 쉽게 쓸 수 있는 건이 아니란 말이다. '이해'조차 쉽지 않으며 수년이 지나 또 위에 열거했던 분들을 만난다면 나, 그리고 그들 역시 '공감'할 수 있는 분야가 달라질 것이다. 인간은 경험하며 발전해나간다.


서른이 가까워 오거나 서른이 넘으며 수없이 고민 속에 살아간다. 그 고민의 중심은 바로 '나' 자신이다. 사회 속에 파묻혀 겨우 명맥을 이어오던 '나' 자신이 다시금 기지개를 켜고 삶의 존재의 이유를 수없이 던져댄다. 난 최근 내 주변 근황이 흥미롭다. 직접 경험해본 자들의 처절한 생존 투쟁기라고 명명하고 싶다. 이를 통해 내가 견지하고 싶은 건 "공감"은 못하더라도 최소화 "이해"라도 할 수 있는 그릇을 갖춘 사람이 되자는 희망어린 바람이다. 꾸준히 편견과 편향없이 "이해"라도 할 수 있으려면 끊임없이 경험하고 공부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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