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한잔의 여유 Mar 17. 2023

기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

가끔 폐쇄공포증 걸릴 수 있겠다는 이 좁디, 좁디 공간 속 시간

229번째 에피소드이다.


기차는 내겐 지옥과도 같은 동반자였다. 이십대 초중반 창업을 했던 교육 사업이 전국으로 확대되며 한동안 지역을 넘나들며 기차에 몸을 싣었다. 오늘은 서울, 내일은 대구, 모레는 부산, 그 삶 속에서 정착이란 안정감을 잠깐 꿈꾸게 되었고 수년간은 조용히 살았다. 하지만, 지역에서 서울로 석,박사 과정을 다녔고 다니면서 또 기차와 악연은 시작되었다. 플랫폼으로 힘껏 달려왔지만 애석하게도 내 눈앞에서 기차 문을 닫고 출발해버린 경우도 종종 있었다. 너무 화가 나서 가방을 땅에 던져버리고 "아놔.. 진짜 나 왜 이러고 사냐"하면서 연신 욕을 해대었다. 때론 기차엔 무사히 올라탔으나 급한 일이 발생해서 노트북을 켜고 혹시나 꺼질까봐 전원플러그 버튼을 찾아다니며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과 마주할 때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빨리 기차에서 내려서 쾌적한 근무환경에서 정확한 자료, 내용을 파악 후에 일을 처리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가끔씩 그냥 달리는 기차가 잠시 속도가 주춤하면 그 길로 뛰어내려 철도 한켠에 양반다리하고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일을 제대로 한번에 처리하고 싶단 생각을 한다. 그것도 아니면, 서울까지 가는 길에 그냥 대전에 내려 기차역 근처 카페에서 일을 처리하고 다시 기차표를 끊고 갈까 하는 마음이 샘솟기도 한다. 좁은 공간에서 폐쇄공포증에 걸릴 지경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내용은 현실성은 없다. 대부분 촉박한 일정으로 스케줄이 붙어있기에 결국 기차 안에서 그 모든 걸 다 해내야만 한다. 기차 좌석에 앉기 전에, 일단 노트북과 배터리를 꺼내고 에어팟, 그리고 핸드폰, 보조배터리를 정성스럽게 다 꺼내어 진용을 갖춘다. 그 이후에 하나씩 연결하고 좌석에 앉아 의자를 쭉 뒤로 젖히고 신발은 벗고 근무 및 작업할 준비를 한다. 그게 기차 안에서 삶 그 자체가 되었다. 기차를 하도 타면서 별별 일들을 다 해내야 하다보니 몇가지 원칙이 생겼다. 먼저, 문서작업은 한시간 집중하면, 무조건 에어팟을 끼고 '노동요'를 들으며 삼십분은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안그러면 눈이 빠질 것 같고 속이 뒤짚어질 것 같아 균형감을 찾는 타협선이다. 다음은 세부적인 작업은 결국 기차 안에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시적인 자료조사 및 문서작업에 집중해야 한다. 자료를 툭툭 던져두고 세부적인 작업은 기차를 내려 마무새를 지어야 그나마 효율을 높을 수 있다는 적정선이다. 마지막으로는 그냥 핫스팟을 쓰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기차 내의 와이파이를 절대 믿지 말라, 그건 중간 중간 끊기고 뭐 그렇게 연결이 안되는지, 데이터요금을 더 내는 한이 있어도 핫스팟을 켜고 작업을 하는 것이 훨~씬 속이 편하고 그게 스트레스 멀미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과 부산을 왕복으로 할 경우, 기차 안에서만 꼼짝없이 6시간이다. 눈 부치고 잠 자는 것도 한두번이지 또 그렇다고 할일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 좁디,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하면 해낼 수 있는 일들을 리스트업하고 또 결국 해낼 수 있는 준비성과 효율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인생(24시간 중 6시간), 그리고 직업(최소 월급값은 해내야 하는 고질병적인 책임감)에서 승부처라고 생각하고 있다 두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게 어렵다 하지만 결국 그걸 해내야만 한걸음 더 앞설 수 있다. 나의 경제적 자유의 실마리는 시간을 잡아야 가능하다.


자칫, 아무런 일도 안하고 버려질 수 있는 시간을 잡아 유의미하게 만드는 것이 많은 일을 하는데 핵심이다.   

작가의 이전글 창업, 폐업 그리고 N잡 신변잡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