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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Mar 20. 2023

마스크 해제, 코로나 종식의 서막

코로나의 상징 그 자체인 마스크가 드디어 철수하고 인간의 민낯과 마주하다

230번째 에피소드이다.


이제 곧 돌아오는 월요일부터 마스크 해제는 일부 의료시설 등을 제외하고 전면적으로 이루어진다. 코로나는 이제 종식을 바라보고 있다. 3년 간의 팬데믹은 종말을 고하고 있다. 이제 다시금 민낯을 마주하고 커뮤니티를 회복하며 건강한 토론을 통해 합의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코로나시기를 되짚어보면 역설적이게도 '편향적', '양극화'를 불러일으켰다. 사람 간 관계가 멀어지고 IT, 컨텐츠기술의 비약적 발달로 MCN이라 정의했지만 사실은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으로 소통하고, 익명성을 바탕으로 누군가를 헐뜯고 비난하고 '몸은 숨긴 채의 정의'를 외쳤다. 실제 밖으로 나와 정의를 외칠 용기는 없지만 방구석 여포는 실제 자신들이 여포인양 적토마를 타고 방천화극을 연신 휘둘러대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제는 밖으로 나가야한다. 많은 일(work)들을 하다보면 "얼굴을 마주보고 사정을 들어보니 별 것 아니었네요."라는 말을 내가 하거나 또는 상대편에게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실제로 그런 것이다. 얼굴을 마주보고 하면 이해가 더 쉽고 상황을 함께 헤쳐갈 방법이 그려진다. 나 역시 시간 및 공간상의 비용절감을 위해 온라인 미팅 툴을 주로 활용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오프라인 미팅을 잡고 점검하고 협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꼭 가지는 이유다.


마스크를 쓴다는 건, 인간의 온전한 본연의 민낯이 아니다. 심리학 용어인 페르소나와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 실제 가면을 쓰고 누군가에겐 마스크를 내리고, 누군가에겐 마스크를 굳이 내리지 않고 대화하는 상황은 그 성격, 분위기, 가치관 등을 직,간접적으로 유추해보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한다. 어느 순간부터 마스크가 일상용품이 되면서 '자유'란 개념이 축소되었다. 코로나가 급증할 때 '예방' 목적을 넘어 급격한 감소추세에서 마스크의 필수착용은 '마스크를 벗을 자유' 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를 입밖으로 낼 수 없게 했다. 누군가가 입밖으로 내었다간 여지없는 사회적 질타, 비판을 받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단순예방'이 아닌 '감시'를 하며 사회적자본을 유실되어갔다. 이제는 정말 마스크를 쓰는 것이 코로나를 예방 할 수 있는 것을 따지지 않고, 그것이 '예의' 또는 '개념'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예의와 개념을 갖춘 인간상을 갖추는데 마스크란 도구가 사용되었다. 이제는 물음을 던질 때이다. 과연 그것이 정말 합리적이고 정당한가?


민낯과 마주해야 한다. 마스크를 벗고 사회의 갈등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밤 아홉시 통제시기엔 자연스럽게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그 이후에도 사람들 간의 가치관 차이가 인해 조심스런 성격을 가진 이들은 "코로나 때문에.. 만나기는 좀 그렇고 전화나 메일로.."라고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고 또 실제 만나기 싫은 사람, 그리고 굳이 갈 필요없겠다 싶은 만남은 "아.. 꼭 가고 싶은데 제가 갑자기 코로나와 같은 증상이 생겨서요. 조심해야겠어요."라고 둘러대는 핑계요소로 흔히 사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마스크를 벗고 인간의 민낯을 가감없이 보여주면 만나 토론하고 합의해야만 한다. 설령 싸우더라도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만나 싸우고, 잠시 싸우다 목 마르면 술 한잔 기울이며 잡소리도 해대야 한다. 별 시덥지 않은 잡소리가 교집합을 이루고 의외로 거기거 합의가 출발할 수 있다. 코로나 시기 동안 사회에서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더 많다고 생각한다. 이걸 회복하는 시기로 방향을 잡고 민낯을 마주하고 나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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