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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Mar 23. 2023

혼자 샤브샤브, 개인주의자들의 식사

마주본다는 편견을 깨라, 한그릇에 숟가락 같이 넣는다는 관념을 벗어던져라

231번째 에피소드이다.


며칠 전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가 연락이 와 밥 한끼 하자고 했다. "아? 그래요. 뭐 먹을까요? 골라서 알려주세요."라고 했더니 그가 보낸 메뉴가 샤브샤브였다. 딱 보고 나만큼 개인주의자였던 동료였기에 '응?'이란 반응이 가장 먼저 나왔다. 샤브샤브란 건 앉자마자 여러번 왔다갔다하면서 야채니, 고기니 하면서 나르고 그 국물을 한데 버무려 숟가락 같이 넣으면서 공동체 속으로 들어가는 산물 아닌가? 얼끈한 국물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동료가 내가 그럴 사이인가? 흠,,, 갑자기 가기 싫어서 슬쩍 물었다. "혹시 무슨 일 있나요? 점심 때 샤브샤브라..." 말끝을 흐렸더니 동료가 "ㅎㅎ  걱정마시고 일단 만나요"라고 내 성격을 너무나 잘 알듯이 답변을 준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점심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동료가 들어오라고 손짓을 해 들어갔더니 이제야 상황이 파악되었다. 여기는 샤브샤브 혼밥 전문점이었다. 이제 안도감이 몰려 들어 마음 편히 밥 먹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동료 옆에 앉았고 우리는 각자의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샤브샤브 1인분을 각자 눈앞에 놓여진 버너에 슥슥 담기만 하면 그 뿐이었다. 정면엔 가게 주인장 분들께서 열일하시는 광경만이 존재할 뿐이다. 가끔씩 옆으로 고개를 돌려 동료에게 묻는다. "요새 어떻게 지내나요?" 그 질문에 화답하듯 동료도 가끔씩 나를 보며 답을 할 뿐이다. 같이 밥을 먹지만, 온전히 나만의 공간, 그리고 시간을 확보한 느낌이다. 또 역설적이지만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이 들며 최소한의 공동체성을 유지한 내 자신과 마주한다. 각자의 그릇에 숟가락을 푹푹 찔러 넣으며 한국 특유의 '한그릇' 문화 속에서 벗어난다. 다만, 마치 강가에서 카누를 몰듯이 오른쪽 숟가락 한번, 왼쪽 숟가락 한번 연신 왔다갔다는 모습이 나름 장관이다. 어느 정도 각자 식사를 마치고 후식을 나올 때 내가 먼저 양해를 구한다. "저.. 각자 10분 정도는 서로의 시간을 가지죠? 저 에어팟 껴도 될까요? 노래 좀 들으려고요." 동료가 나를 잘 안다는 듯이 풋! 웃으면서 그러시라고 한다. 후식을 먹으면서 요새 빠진 롤드컵 주제곡 노래를 듣는다. 뭔가 역동감이 샘솟는다. 옆으로 고개를 돌려 동료에게 말한다. "커피 마실래요? 아니면, 각자 이제 갈 길 갈까요?" 그래도 커피 한잔을 해야겠다는 일종의 책임감이자, 공동체성 유지의 발악이다. 동료의 승낙으로 커피까지 한잔했다. 물론 마주보며 말이다. 나같은 부류의 개인주의자들이 완전히 사회성이 결여된 돌아이들은 아니다. 다만, 개인 공간과 시간 분리가 중요할 뿐이다. 의외로 혼자 샤브샤브를 알차게 먹지만 옆에는 아는 지인을 두는 방식도 꽤 괜찮다는 선경험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자주 애용하게 될 것 같다. 마주 본다는 편견을 깨자, 한그릇에 숟가락을 같이 넣는다는 관념을 벗어던져라. 누군가에게 기이한 행동, 사고방식이 내겐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발악과도 같은 액션플랜이다. 하지만 공동체가 유지되어야 개인의 자유가 지켜진다는 건 역사와 같은 선험적 경험을 통해 각인되어있으므로 일부 개인의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공동체를 위해 이타성을 유지하며 균형감각을 가진 이타적 개인주의자로 살아남기 위한 최선을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게 내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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