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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Mar 29. 2023

무담보 소액대출, 마이크로크레딧

동자동 쪽방촌의 주민들을 위한 그들 스스로가 만든 자조금융, 공제조합

232번째 에피소드이다.


마이크로크레딧이란? 제도권 금융회사와 거래하기 어려운 저소득층 등 사회적약자에 대한 무담보 소액대출을 가리킨다. 방글라데시 등 제도 금융권이 발달되지 않은 저개발 국가에서 시작된 민간주도의 제도이다. 나같은 개인주의자이자 극도의 현실주의자가 사회적기업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 건 한권의 책 때문이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을 설립한 무하마드 유뉴스의 '가난없는 세상을 위하여'가 그 주인공이다. 엘리트인 유뉴스는 경제학 박사로 고국으로 금의환향하여 유수의 대학 교수로서 재직하였으나 본인이 마주한 문제는 도저히 그 경제학 이론으로는 풀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악성채무 속에서 빚이 빚을 낳는 상황은, 거시적 경제이론이니 그와 준하는 경제상식으론 도저히 개선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그라민은행이었다. 이름만 은행이지 그 실상은 제도권 은행이 아닌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 운동을 하는 일종의 대부업이었다. 모든 이가 신용도 없는 가난한 자들에게 빌려준 돈을 다시금 돌려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그라민은행은 곧 빚더미에 앉아 유뉴스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이들은 모두 파산한다며 모두 자리를 피했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그라민은행의 상환율은 90% 이상을 상회했으며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게 된다. 방글라데시의 수많은 사회적약자들에게 무담보 소액대출은 기회를 창출했으며 그로 인하여 다시금 자활할 수 있게 되었다.


'가난없는 세상을 위하여'라는 책을 읽어보면 가슴 따뜻한 스토리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책을 곰곰히 읽어보다보면 유뉴스, 그리고 그라민은행이 어떻게 하면 상환율을 올릴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공동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무담보 소액대출자들을 교육시켰는지가 자세히 기술되어있다. 특히, 아이를 둔 여성(또는 미혼모)는 무담보 소액대출의 1순위였다. 공동체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 그리고 자녀에 대한 모성애는 어떠한 신용을 증빙하는 보증서보다 강했다. 또한 몇개 그룹 단위로 관리하고, 그들끼리 서로 간 그룹의 사회적자본을 바탕으로 동료평가(Peer review)와 유사한 방식이 전개되며 대출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진행했다. 종이 한장의 신용보증서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 본연의 신뢰가 생겨났으며 그라민은행의 중간관리자는 그라민은행의 비즈니스 구조를 고객들과 대중들에게 '감동적이다. 가치있다.'는 한 문장으로 귀결시키기 위한 치열하고도 냉혹한 과정을 끊임없이 결과로 만들었다. 그 과정은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


오늘 동자동 쪽방촌에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을 보았다. 십수년 전 쪽방촌 사람들은 국가, 그리고 어떤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산물이 아닌 오롯이 본인들을 위해 공제 조합을 만들었다. 가난에 찌들여 사는 이들은 한달에 만원도 내기 힘들지만, 수없는 과정을 통해 현재는 3억 가까운 돈을 모았다. 조합에 가입하기 위해선 5천원이 필요하다. 소주2병 값에 불과하지만, 소주2병이냐 아니면 공제 조합(자조금융) 조합원이냐의 갈등 속에서 수없이 고민한다. 동자동 쪽방촌에 위치한 사랑방에서 조합원 총회자료를 꼼꼼히 읽으며 그간 수없이 좌절하고 치열했던 인간군상들의 집약체와 마주했다. 하지만 그들은 온전히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누가 권유하지 않아도 연대하고 협력하였다. 이사장, 이사 등 임원들은 2년 임기 동안 무보수 명예직으로 봉사하며 그 가운데서 공제 조합의 이자 사업을 뛰어넘어 자체 수익사업을 고민한다. 또한 공동 구매를 통해 부탄가스와 휴지 등의 생필품 가격을 낮춘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이익을 본 것들이 고스란히 자료로 남아있다. 당연하듯 여기도 아름다운 이야기만 존재하지 않기에, 수없는 시행착오가 고스란히 무담보 소액대출 규정과 정관 속에 묻어난다. 일반적으로 50만원이 최대 대출한도이며, 긴급대출일 경우 20만원이 한도이다. 10만원 이하의 소액대출 비율은 30%이며 30만원 이하로 한정할 경우 60%에 달한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이 발견한 문제와 유사하다. 유뉴스가 방글라데시 국민들의 생활상을 보고 충격을 받은 건, 단돈 50만원이 없어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수천만원의 대출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의외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선 소액이 필요한데 그걸 빌릴 신용이 없었다. 동자동 쪽방촌 공제 조합은 그걸 해내고 있었다. 물론, 소액대출이 올곧이 필요한 생활자금으로 쓰이는 건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소주값, 담배값으로 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을 믿고 가는 수 밖에 없다. 의심과 감시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면 우리는 자유를 기반으로 한 창의와 창발이란 산출물을 기대할 수 없다. 믿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징글징글하지만 믿고 대다수의 생각하는 올바른 선택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조합이란 형태를 통해 교육하고 '넛지'가 행해지도록 유도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과정 속 누군가는 자활하고 자립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공동체성을 기반으로 인간성을 유지하고 살아남을 수 있다.


동자동에 위치한 이들은 경제적으로 가장 밑바닥이고 갈 때가지 간 부류이며, 학력적으로는 수준 이하이다.  다만, 그 누구보다 훌륭한 자조금융을 수없는 시행착오, 그리고 인간의 민낯을 경험하면서도 우뚝 서서 지키내고 있다. 그들과 우리들, 모두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국가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고 그저 세상에 태어난 것 뿐이고 나 자신을 위해 살 뿐이다.' 모든 것이 지엄한 대의를 품을 수 없듯이 개인 모두가 자신이 생존하기 위해 연대하고 협력할 뿐이다. 동자동 지역이 마주한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공공주택 개발 등의 지체되어 그들이 기대했던 미래는 오지 않고 정체되고 암물하기만 하다. 이런 부동산적 쟁점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들은 평생을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몸 하나 온전히 버티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자조금융, 공제조합이 나왔으며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인간성을 지켰으며 생존권을 위한 투쟁과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넓은 벌판에 홀로 서있는 공포심은 여전하지만 발 딛고 서있는 벌판에 나도 모르게 잡초가 자라 지탱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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