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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Apr 01. 2023

봄내음이 깃든 제주, 그리고 한라산

한라산 등반과 백록담, 그리고 애월과 바다풍경의 카페 등 4월 봄의 제주

233번째 에피소드이다.


3년 전에 제주도 공항에 내려 북쪽에서 남쪽까지 도보를 한 적이 있다. 원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려 했으나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의 교류가 불편했기에 차선책을 찾아야했다. 그 차선책은 제주였다. 공항주변을 지나 남쪽까지 가는 버스 길을 혼자 거닐면 2박3일 동안 사념없이 걸었다. 에어팟을 끼고 걷다가, 또 가끔씩 빼고 걷기를 반복했다. 제주의 바람소리, 자연 속 새소리에 귀가 맑아진 듯했다. 생각이 많았던 머리가 비워진 채 다시금 '생의 감각'을 되찾아갔다. 삶의 전선으로 돌아와 3년을 치열하게 살았고 우연한 계기로 다시 제주를 찾았다. 봄내음이 깃든 제주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분위기로 나를 매혹했다. 오늘은 제주 여행의 요약이다.


한라산 등반은 의외로 힘들지 않아 내 스스로도 당황했다. 단체로 등반하는 것이라 내가 책임져야한다는 일종의 책임감 덕분인지, 매일 5km를 꾸준히 달린 러닝 습관의 결과물인지 모르겠으나 그리 어렵지 않게 백록담까지 다다랐다. 한라산 등반을 한다기에 군 제대 후 대학 동기생들과 1박2일 간 쉬지 않고 갔던 지리산 종주를 떠올렸다. 군 제대 직후여서 운동에는 자신 있었는데 의외로 죽을 뻔한 경험을 했다. 너무 얕보았던 탓일까 아니면 우리가 지리산 노고단에서 시작한 종주 일정을, 길을 착각해 한번 산 아래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 시간과 체력을 까먹은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4명이서 출발했던 지리산 종주그룹은 2명 선발대, 2명 후발대로 자연스레 나눠져 2명은 1박을 하게 되는 대피소로 가 저녁식사 준비를 하기로 했다. 난 선발대로 분류되어서 2명의 후발대 가방에서 저녁 재료들을 내 가방으로 옮겨담았는데, 뭔가 '생존'을 위해 상당히 비장했다. 잠시였지만 전쟁 등 위급상황이 나면 이런 느낌 아닐까 하는 오바스럽지만, 그때 우리는 진지했다. 밤9시 이후엔 대피소 취식장소 불까지 다 꺼지는데 오후8시50분에야 선발대, 후발대가 모두 상봉하여 짐을 풀기 전에 일단 무조건 밥부터 입으로 넣기 시작했다. 그것마저도 밥을 먹는데 불이 다 꺼져 어둠 속에서 남은 밥을 해소해야 했다. 선발대였던 나는 시간이 아끼기 위해 덴마크산 돼지고기를 뜯어서, 김치랑 다 섞고 볶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금 확인했을 때, 설익고 부실하기 짝이 없는 그걸보고 대학동기생끼리 "아..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물이 이거구나!"라고 연신 외쳐버렸다. 지리산 정상인 천황봉 등반 이후 내려오는 하산길은 의외로 힘들어, '사람 몸에서 이렇게 냄새가 날 수 있구나'하고 내 몸의 악취를 맡으며 감탄하고 또 감탄했을 따름이다. 안되겠다 싶어 지리산 깊은 계곡을 찾아 우린 온전히 맨몸의 자연인으로 몸을 던졌다. 음,,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자존심 상하고 호모 사피엔스와 유사했다고 확신한다. 땀으로 쩐 옷을 계곡물에 빨고 우리 몸에 씻고, 그 순간만큼은 천신난만하게 지리산 계곡의 시원함에 흠뻑 빠졌었다. 이런 기억이 존재하는 지리산이었기에, 한라산도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등반했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그리 어렵지 않게 올라갔고 단체 등반에 무사히 성공했다. 한라산 등산길 코스가 잘 정비되어있었고 날씨도 너무 좋아 백록담이 내가 쉽게 등반하도록 부른 듯 했다. 처음 본 백록담은 거대한 호수보단 잘 짜여진 조그만 물의 집약체란 생각이 들었다. 이마저도 안개가 심하면 전혀 볼 수 없다고 했으니 나는 운이 억수로 좋은 셈이다.


제주의 최근 관광지 중에서 가장 핫한 곳은 바로 애월이다. 애월은 바다 해변을 끼고 카페, 그리고 식당가들이 자리잡아 가족, 연인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커피 한잔과 함께 카페 풍경 속에 한동안 빠져있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나에겐 최적의 쉼터이다. 바다 해변에 잘 정비된 산책로를 걸으면서 제주의 바람, 바다 풍경을 찬찬히 보고 있자면 평화로움이 나를 휘감는다. 4월의 제주는 내게 항상 4.3 제주 항쟁으로 역사적 사실로만 접했던 역사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겐 평화, 그리고 자유로움이 깃든 제주로 기억될 것이다. 제주는 한국에선 이제 많은 이들의 쉼터, 자유와 평화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제주에서 치유, 그리고 휴식을 통해 다시금 생의 감각을 찾고 일상 속으로 돌아가 삶의 치열함 가운데서 행복을 찾길 바란다.


나 역시 그랬으니, 다른 이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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