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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Apr 05. 2023

질문을 잘하는 것이 경쟁력인 시대

챗GPT의 시대의 도래와 사회적기업 베어베터를 보면서 느낀 생각

234번째 에피소드이다.


사실 이 에피소드를 어제 쓰려고 했으나 천성이 게을러 현재 쓰고 있다. 그러다보니, 복합적으로 사회적기업인 베어베터를 방문한 이후가 되었다. 다만 원래 쓰려고 했던 주제인 '질문을 잘하는 것이 경쟁력인 시대'와 일맥상통하여 함께 연계해서 쓰고자 한다. 일전에 '질문이 너무나 당연한 사회'라는 주제로 에피소드를 쓴 적이 있다. 그 내용을 잠시 가져오자면 아래와 같다. 오늘은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공대를 다닐때, 이런 적이 있었다.


"교수님! 저 질문 있습니다."


수업을 듣다가 손을 들어 질문한 학생에게 교수님은 "학생. 공대스럽게, 공학자스럽게 질문을 해. 그렇게 밖에 질문을 못하나?"라며 오히려 다그쳤다. 공대스럽게 질문하라니.. 그게 뭘까? "교수님. 외팔보의 토크가 3이 모자란데, 좌굴현상이 일어나 그 효용성을 확인할 수 없고 안전계수를 곱하는 적정 값이 올바른지 확인해주실 수 있는지 정중히 여쭙니다."라고 물어봐야하는걸까?


당연하지만, 그 수업에서는 질문이 없다. 모두가 질문을 하면 핀잔과 꾸지람을 들을까봐 누구도 손을 들지 않는다. 그 분은 나보다 훨씬 더 학식은 뛰어날 수 있으나, 최소한 내 관점에서는 이 시대의 교육방법론으로는 올드하다. 질문은 허무맹랑하고 엉뚱할 수 있다. 그것을 교수, 수업구성원이 받아들여줄 수 있는지의 분위기에서 그 질문 다음의 사고확장성이 생긴다. 여기서 혁신성은 나오는 것 같다. 누가 알겠는가? 그 질문이 나중에 노벨상의 모태가 될지. 혁신을 한다며 사고의 틀을 닫아버리는 것은 입으로만 외치는 전형적 구호에 불과하다.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회가 더디어 보여도 내재적 사회자본의 축적을 이룰 수 있다.


질문은 당연하다. 질문 자체가 없는 사회는 생동감이 없으며 창의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논쟁은 얼핏보기엔 싸움같지만 서로 간 성장하는 과정이다. 다만, 그건 1단계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할 사회는 좀 더 진보해서 '질문을 잘하는 것이 경쟁력인 시대'이다. 이건 전문적인 질문을 해야한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전문적인 것보단 명확하게 내가 묻고자 하는 질문의도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챗GPT를 포함한 수없이 쏟아져나올 AI인공지능은 인간의 리서치 능력을 대체하고 있다. 기존 사회에서 텍스트로 잘 검색해야 원하는 정보를 얻는 방식, 정보처리기사 등의 자격증이 각광을 받고 실무적ㅇ로 쓰였다면 향후 미래사회에선 '누가 정확하게 잘 질문하느냐'가 정보습득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챗GPT 역시 방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있지만 그걸 원하는 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을 던졌을 때는 효율가동 100%에 근접시키지 못한다.


사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선 1단계 조차도 버겁다. 질문 자체가 권위의 도전, 형식적 회의에 대한 사사건건 간섭과 지루함을 동반시키는 불편한 존재로 둔갑시킨다. 손을 들고 질문하는 이에게 쏟아지는 시선과 야유는 대한민국 사회를 병들고 나약하게 만들 뿐이다. 2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1단계가 필히 동반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했던 사회적기업 베어베터는 흥미로운 회사였다. 고용부담금 감면이란 제도를 영리하게 활용하여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영업하고, 비즈니스하는 사회적기업이란 건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방문해서 그 창업자(이진희 대표)와의 진솔한 강연을 들어보니 더욱더 흥미로웠다. 수백명의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제도를 면밀히 분석하고 거래처에 정확한 베네핏을 제시해주는 것을 넘어,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중간관리자를 통해 끊임없이 발달장애인들에게 묻고 적절한 직무를 찾아주기 위해, 부서를 옮겨주고 교육을 지키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적절한 질문'과 '대답'을 통한 소통의 산실이었다. 동정과 배려를 가장한 방치가 아닌 질문을 통해 귀찮으리 묻고 답하고 하는 과정 속에서 발달장애인들은 비로소 장애인이 아닌 그저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직무를 가진 사회구성원으로 변모해갔다. 그 본질은 '질문'이고 더 나아가선 '정확한 질문'이다.


나는 항상 말이 많다. 하지만, 궁금함이 많기 때문에 말이 많을 뿐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질문이 너무 당연한 사회를 넘어, 질문을 잘하는 것이 경쟁력인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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