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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May 06. 2023

하늘의 허락이 필요했던 제주

연휴 간 제주가 아닌 집에서 강제 휴식을 만든 무심한 비바람

238번째 에피소드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더욱이 직장인에겐 대체휴일이 곳곳에 눈에 띄어 더할나위없이 행복하다. 근로자의 날에 이어 어린이날까지 이어진 5월1주는 모두에겐 로망, 그 이상이다. 제주 대정리에서 청년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해나가는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분과 오랜 인연이 있었다. 이참에 그분과 함께 활동하는 청년 그룹들을 뵙고 인사드리려는 참으로, 제주 계획을 세웠다. 제주공항부터 애월항, 그리고 모슬포항까지 제주도의 서쪽을 대중교통으로만 쭈욱 돌아가는 코스였다. 도보든, 대중교통이든 해변가를 따라가는 코스여서 날씨가 좋아야 하는 것은 필수요건이었다. 애월에서는 평소 알고 지냈던 여행 크리에이터 분도 만나기로 되어있어 제주도에 떨어지면 최상의 스케줄이었다. 이전에 2박3일 간 제주도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했던 경험, 그리고 불과 한달 전 한라산을 등산했던 경험은 나를 다시금 5월에 제주에 부른 촉진제가 되었다. 공항에서 다다랐을 때 즈음 하늘이 심상치가 않았다. 비행기는 다행히도 결항은 아니었고 비가 많이 와도 비행기는 성층권에서 운행할 수 있다는 과학수업에서 배운 잡지식만이 교차했다. 비행기는 출발했고 잠이 들었는데 꽤 지났음에도 제주도에 도착하지 않았다. 슬쩍 옆에 있는 분께 여쭤보니 맞바람 때문에 흔들리고 비행기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갑자기 잠이 싹 달아났다. 벌써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행은 계속 되었고 다행히도? 제주도의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뭐 결국, 어쨌든 도착하는군' 안도의 한숨과 함께 계획한 것들을 서둘러 움직여야겠다는 조급한 마음만 들었다. 그런데 하강하던 비행기가 갑자기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응?' 무섭다기보다는 어리둥절했다. 비행기는 제주공항 상공을 조금 더 맴돌다가 안내방송이 나왔다.


"강풍과 폭우로 비행기가 착륙할 수가 없어 부산 공항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기내방송을 듣고 진짜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옆에 있던 어떤 분은 그 상황이 꽤 공포스러우셨는지, 불만보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영화 '비상선언'이 떠올랐다. 영화 속 상황과 거의 유사하다고 느껴졌다. 난 부산 공항으로 복귀보단 제주도 내 대체 공항으로 항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돌아와서 찾아보니 제주 제2공항은 현재까진 계획과 논의만 될 뿐 실제는 없다는 걸 인지했다. 부산에 돌아왔을 땐, 부산 하늘은 아직까지 그 비바람이 들이닥치진 않았다. 그러니 더 황당할 뿐이었다. 부산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제주도는 강풍과 폭우로 모든 이동이 어려워진 상태인데, 여기 부산은 아직까진 고요하니 말이다. 조그만 땅덩어리인 대한민국의 내부에서도 이렇게 날씨가 다른데, 향후 계속된 기후변화로 천지지변이 국지적으로 다가올 것이 걱정되었다.


하늘의 허락이 필요했던 제주였다. 집으로 돌아와 뉴스를 켜니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제주에 발이 묶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 역시 그 군중 속에 포함되었을 수 있었다. 돌아와서 결항지원서를 바탕으로 오고가려고 했던 비행기 티켓, 게스트하우스 숙소 등을 환불하기에 여념없었다. 얼추 다 끝났다고 생각해 노래나 들어야 스트레스가 풀릴 것 같아서 가방 속에서 에어팟을 찾았다. 없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소리를 질렀다. 비행기! 그렇다. 난 그 정신없던 상황 속에서 에어팟을 비행기 좌석 주머니에 놔두고 온 것이다. 분실문센터에 빠르게 연락해 에어팟의 존재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그 다음날 직접 공항에 찾으러 한번 더 발길을 향했다. 부산공항은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이 거의 없이 고요했고 카페, 식당은 텅텅 비어있었다.


5월엔 또 황금연휴가 있고 그때엔 제주 하늘이 제주도 방문을 허락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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