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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May 15. 2023

로컬의 추구 가치, 다양성과 포용성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 폴리텍 다솜학교와 제천 간디학교

240번째 에피소드이다.


얼마 전, 지역문제해결 관련 특강 의뢰가 있어 강의자료를 만들다가 '지역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자세'에 관해 고민해보았다. 잠시고민 끝에 나는 누가 뭐라해도 다양성과 포용성을 꼽았다. 아침부터 지역민분들이 모인 그 특강에서 나는 아마티아 센의 '자유로서의 발전'을 언급하며 현재까지도 의사결정을 대부분을 지배하는 '공리주의'를 언급했다. '공리주의'의 절대적 신념에 빠지면 지역문제는 해결할 방법을 잃고 만다.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인정하긴 싫겠지만, 지역에 사는 그 자체가 상당한 기회의 박탈, 그리고 대한민국 경제권이 수도권 중심으로 똘똘뭉쳐 초격차를 벌려 싱가포르와 같이 '글로벌도시'로 가자는 논리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 도시 관련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가 있지만, 국가가 아닌 기업이라면 지역은 정리해고 대상자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업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이며 지역은 지사가 아니라 개인의 삶을 살고 있는 터전이다. 그렇기에 '공리주의' 해석보단 더 나은 가치가 지역 시민들에게 내재화되어있어야 한다. 최소 지역문제 해결을 위해선 말이다. 그 가치 중 가장 큰 건 앞서 언급했듯이 다양성과 포용성이다. 그 가치를 수도권 도시 브랜드로 빼앗기면 승산이 없다. 더욱더 지역일수록 그 가치가 중시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역에선 다양성과 포용성이 부족하다. 내가 이렇게 두 가치를 강조하는 까닭은 첫째는 인간은 절대적 평등보단, 상대적 평등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하며 '형평성'이란 단어로 순간적으로 부족한 이들에게 도약할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 둘째는 지역이 이 가치를 선점하는 도시가 되어야만 떠나지 않고 모여들 수 있는 도시로 탈바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다양성과 포용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고 도시 브랜드 관점으로 이를 독식한다면, 지역에겐 그 가치를 쫓는 사람들마저 떠나가거나 모여들 기회를 잃게 된다. 최근 MZ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절대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주말 간 충북 제천에 있는 폴리텍 다솜학교와 제천 간디학교를 갈 기회가 있었다. 제천역은 생전 처음가는 곳으로 부산에서 참, 멀고도 멀었다. 다솜학교는 다문화학생들을 대상으로 기술교육을 시키는 고등학교로 잠시 대안학교 형태로 운영되다가 고용노동부에 의해 폴리텍 개념의 '학력인정'학교가 되면서 학교와 유사한 공공기관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충북 제천으로 이주민 여성들이 상당히 증가하고 있으며 2세대로 한국사회를 살아가야하는 학생들에게 기술교육은 최소 제겐 다양성과 포용성으로 다가왔다. 제천역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제천 간디학교는 경남 산청군에서 시작된 간디학교에서 분리되어, 십수년전 한적한 제천에 자리를 잡았다. '비학력인정' 대안학교지만 꽤 많은 학생들이 여기서 삶을 배우고 사회로 나아간다. 6년의 중고등 통합과정으로 이루어져 4년은 학년구분없이 구성되어 협동과 협력을 배우고, 2년은 연령대로 묶여 성취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운영된다. 한 반은 9명으로 구성되어 교사와 함께 1년에 한번씩 24박 25일 동안 전국을 일주하며 갭이어 방식으로 몸소 느끼고 경험해나간다. 특히, 이 학교의 커리큘럼은 그 과목을 정함에 있어 수평적이고 다양성과 포용성을 교육을 중시 여겼다. 아이들이 직접 학교축제를 만들고 마을주민, 자신의 부모를 초대해 배우고 있는 가치들을 알렸다. 그렇다고 내가 이 교육에 완전히 동의하는 건 아니다. '비학력인정' 이란 한계는 대학을 진학하고자 하는 이들에겐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다시 쳐야하는 결국 제도권 교육으로 회귀해야하며 다양성과 포용성을 제도권과 결합하고 타협시키지 못한 극단적 진보주의자로 보이기도 했다. 또한 '내가 부모였다면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란 물음에 아직까지 '아니, 못한다.'고 결론도 내렸다. 그 다양성과 포용성은 상당히 나아가 내가 가끔은 받아들일 수 없는 교육 커리큘럼으로까지 보이기도 했다. 다만 난 그들의 노력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추후도 없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며, 최소 지역이란 곳에서 누구도 하지 못했던 다양성과 포용성을 온몸으로 증명하며 맞서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최소한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참, 멀고도 먼 충북 제천이었지만 그 도시가 내게 준 인상은 다양성과 포용성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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