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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May 21. 2023

엄마는 수다쟁이, 아빠는 잠시 휴식

은퇴가 가까워지는 나의 부모님들의 근황 

241번째 에피소드이다.


며칠 전 엄마가 아침 일찍 나를 깨웠다. "119 구급차 좀 빨리 불러" 비몽사몽 잠에서 깨어나오지 못하다 이내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이에요?"란 내 질문에 엄마는 "아빠가 어지러워서 일어나질 못한다."고 답했다. 바로 일어나 어지러움과 마주한 아빠의 모습을 확인하고 구급차를 불렀다. 몇년 전에도 '이석증' 증세가 있었다고 해서 동일 병원으로 구급차로 이송하려는데 우선 의자에 앉혀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정차하고 있는 구급차 정차위치까지는 이동해야했다. 어지러움으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약해져가는 부모와 다시 마주하였다. 얼마 전, 무릎 연골 수술을 하고 재활훈련을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꽤 무리한 운동을 한 것이 원인이었다. 일주일 간 병원에서 휴식이 필요하다고해서 또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오후에 아빠한테 전화했는데, 아직까진 어지러움이 남아있었는지 전화통화를 오래 할 순 없었다. 119 구급차 신고전화를 할 때, "나이가 어떻게 되시냐"는 물음에 잠시 58년 개띠의 나이를 역산해봤더니 올해 66세였다. 솔직히 조금 놀랐다. 어렸을 적, 칠순이 넘은 분을 보고 엄청난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는데 곧 우리 아빠가 도달할 나이였다. 그 짧은 찰나에 환갑잔치를 대신해 조촐하게 가족끼리 밥을 먹은 것이 꽤 오래된 기억이라 자각했다. 아빠에겐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 가족을 위해, 자기 자신을 위해 너무 숨없이 달려왔다. 휴식은 필수다.


엄마는 요새 수다쟁이다. 하지만, 난 그게 엄마가 행복해보여서 기쁘다. 얼마 전부터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 중간고사 준비로 여념이 없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과정으로 돌입했는데 이제부터는 내신성적을 평가해 대학입학 할 때도 반영되기에 변별력있는 내신성적이 필요하다. 그래서 수준도 높고,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시험지에 끄적거리지 조차 쉽지 않은가 보다. 밤마다 식탁에 앉아 각 과목 프린트를 외우고 또 외운다. 얼마 전에는 컴퓨터 타자 평가를 봤는데 63타가 나왔다고 아쉬워했다. 평소에는 65타가 나와 아쉽다 했지만 컴퓨터를 켤지도 모르는 자신이 이제는 조금이나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 듯 했다. 나는 퉁명스런 아들답게 타자 속도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을 넌지리 말해준다. "엄마, 타자 속도 올리려면 게임을 하면 되어요. 그 게임 속에서 답답해서 막 키보드로 싸우다보면 500타 그거 쉽습니다." 참 말하고도 스스로 멋없게 또 말했다. 학교에서 사귄 친구들과는 밤마다 통화한다. 나랑 대화하다가도 친구들이 전화 오면 20분 이상은 기본이다. 엄마가 내게 "엄마가 요새 수다쟁이가 된 것 같아"라고 되물어보았다. 잠시 잠깐이지만, 부산으로 내려와 한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친구도 없이 산 엄마였기에 인생의 황혼기에 그 재미를 알아간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엄마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대학도 가고 싶다고 했다. 몇년 전 꽤 큰 수술로 일을 그만두고 가계 경제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였나보다. 듣고 있다가 내가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사회적기업 형태를 띈 곳으로 취업을 하고 대학을 야간으로 다니면 모두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시장경제 자본주의자이지만, 사회적경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보고 있다. 시니어, 장애인 등 사회적약자, 취약계층들의 일자리제공 관점에서 경직된 국가 거버넌스보다 훨씬 더 훌륭한 방법론을 제시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대응투자 관점의 일자리 보조금이 들더라도, 자활 관점의 근로자 교육훈련 비용으로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기에 고등학교 졸업 후 엄마에게 사회적기업 일자리를 찾아보자고 말했다. 공장 한켠의 라디오 소리에 의존한 채, 원단이 수북히 쌓여 발디딜틈도 없던 미싱공장에서 평생을 헌신한 누구보다 대단한 엄마다. 자기계발은 청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현재의 삶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본인의 시간을 투자하고, 밤잠을 줄여가며 성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은퇴를 앞둔 시기에 인생 제2막이 열리고 있다. 아빠는 잠시 휴식이 필요하고, 엄마는 수다쟁이가 되었지만 그 누구보다 본인 삶을 개척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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