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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Jun 23. 2023

호의를 가장한 무책임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안일함, 역량을 함부로 저평가하는 습관

244번째 에피소드이다.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호의를 가장한 무책임'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우선 빈말을 잘 못하고 실력을 키워야한다고 말하는 현실주의자다. 나를 꼰대라 말한다면 할말이 없겠으나 권위주의보단 실력주의에 더 가까우니 그 판단은 각자에게 맡기는 편이다. 대한민국엔 멘토가 참 많다. 나 역시 누군가의 멘토가 되기도 한다. 내가 그다지 원한 적도 없었으나 어느새 멘토가 되어 있었고 그들을 고민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내 입에서 무언가가 나오길 기대하며 순간 분위기가 집중된다. 친절함을 유지한 채 사실관계 전달에 집중한다. 그리고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해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남보다 잠을 줄이고 중간 결과물까진 반드시 성취해내야한다고 조언한다. 갑자기 반응이 싸해지고 너무 씨니컬하고 목표지향적이라고 한다. '흠,, 나보고 어쩌란 말인지' 그 이야기를 듣고 한마디 한다. "저는 다른 건 잘 모르겠고, 결국 그걸 해내야만 본인이 가진 고민의 짐을 덜 수 있다는 확신만 할 수 있어요. 누군가가 괜찮아, 지금 이 시점에서 잠시 내려놓고 삶을 즐기다보면 또 기회가 올 수 있어 라고 말한다면,, 그건 사기꾼이고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에요. 카톡 차단하고 절교하세요. 그건 호의를 가장한 무책임이에요." 이 또한 화를 전혀 내지 않고 친절함을 유지한 채 말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꼰대로 평가한다면 어쩔 수 없다. 다만, 다행히도? 나와 관계를 잘 맺는 매니아층이 일부 남아있다.


홍수같이 누군가에게 교육, 조언을 해주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 아니, 예전부터 많았는데 내가 잘 몰랐을 수도 있다. 교육, 멘토링, 컨설팅이란 명칭으로 수없이 행해지고 누군가의 삶에서 중대한 기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얼마 전, 꽤 나이가 많으신 분과 창업에 관한 기본적인 생각을 공유한 적이 있다. "사업계획서 작성은 만만치가 않은 작업이에요. 그래서 1페이퍼로 기획서를 손으로 쓰든, 파일로 만들든 만드셔야 해요. 그리고 양을 늘려가 세부적인 자료까지 들어간 사업계획서를 완성시켜야 해요. 이게 1단계에요." 갑자기 듣고 있다 그 분은 "자기는 창업을 하고 싶은데 사업계획서는 쓸 자신이 없단다. 그리고 컴퓨터도 잘 다루지 못해 자신도 없으니 그냥 창업지원 정책자금을 받을 수 있는 지원 리스트 정리를 해 줘"라고 하셨다. 곰곰히 생각하다 이건 안되겠다 싶어 "어르신, 지원 리스트를 정리해서 드리면 그 다음 신청은 어떻게 하실거예요? 웬만하게 모든 지원금을 받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쓰셔야해요. 거창하게 사업계획서라고 붙일 필요도 없고 아이디어를 표현한 기획서, 그리고 그걸 논리적으로 말할 표현력이 필요해요. 그저 떼쓴다고 주는 게 아니에요. 어르신이 정말 창업을 하길 원하신다면 만사 제쳐두고 먼저 손으로 아이디어 기획서를 쓰시되 동시에 컴퓨터 문서작업부터 배우세요. 어르신이 깔끔하게 정리된 문서를 좋아하는 것만큼, 어르신의 아이디어를 평가하는 심사위원들도 어르신이 말하고자 하는 깔끔한 아이디어 기획서를 원해요. 아시겠죠?" 무례할 순 있었으나 내가 그분께 해 줄 수 있는 나만의 친절함이었다. 다행히도 그 분께서는 지금 컴퓨터를 배우고 계신다고 했다. 만약에 내가 그분께 "아,, 그러시구나. 어르신 어려우신 건 굳이 하실 필요 없고 프로보노 형태로 청년들이 일시적인 도움을 주는 방법도 있어요. 그렇게 쉽게 쉽게 하시면 되죠! 화이팅, 어르신 잘하실 것 같아요. 정말 도전 자체가 멋있으신 것 같아요. 그 열정이 너무 넘쳐서 좋네요. 도전해보고 안되도, 그 자체로 멋진 거에요." 빈말로도 난 그런 말을 절대 못하지만, 그 자체로 역겹다. 호의를 가장한 무책임이다. 의외로 대한민국에 만연해있다.


결국 그 과정을 견뎌내고 반드시 본인에게 내재화시키고 역량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야, 위에서 말했듯이 도전해보고 안되도 그 자체로 그나마 의미가 있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의 교육, 장년층들의 제2진로의 교육, 청년들의 직업교육 속에서 우리는 이 광경을 여러차례 마주하고 있다. 호의를 가장한 무책임, 그것의 전제는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안일함, 그리고 인간의 역량을 함부로 한계짓고 저평가하는 습관이다. 이건 쌍방과실, 즉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삶을 살면서 느끼는 절대적 진리는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 등이 있다. 앞으로 경계해야 할 부류는 주위에 살면서 "모르면 억지로 하지 마시고 넘어가세요."를 남발하며 어렵게 하지 말고 쉽게,쉽게 하자는 호의를 가장한 무책임을 조장하는 부류다. 결국 나중에 나타난 결과에 대해 일절 책임지지 않고 빨리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그 자체가 아름다운거였다. 힘내세요! 다음에 또 있으니깐요. 화이팅!"만 할 뿐이다.


'호의를 가장한 무책임', 누군가가 쉬운 길만 권한다면 그건 함정이고 나락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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