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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Jun 29. 2023

갑작스레 두살 어려진 오늘

만 나이 시행으로, 잠시 추억을 회상하며 인생을 재점검해보다

245번째 에피소드이다.


오늘 갑작스레 어려졌다. 그것도 두살씩이나.. 서른다섯이 아닌 서른셋으로 불러도 무방하다. 아직 사람들은 만 나이로 부르는 것이 익숙치가 않아 00년생으로 정확히 출생연도를 지정해서 말하는 편이다. '오해없게?'란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으나 오해없게, 나이를 전달해야 나중에 귀찮은 일이 없다. 특히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깃든 한국사회는 나이로 우선 서열정리하는 것이 만연해있어 더욱더 그렇다. 두살 어려진 만큼 어딘가 달라진 곳이 없나 거울을 한번 보다 턱과 배에 고스란히 묻은 나이살에 어려진 건 허상에 불과하다고 한번 더 느낀다. 그래도 두살 어려진 김에 잠시 추억을 회상하며 인생을 재검해보는 시기를 가진 하루였다. 서른다섯은 벌써 삼심대의 반환점을 도는 시점이다. 불과 이십대 후반만 해도 완숙미보단 저돌적인 돌파를 택하는 성격이었다. 불과 몇년 사이 나 역시 겁이 많아졌다. 대학교 친구들과 창업을 해봤던 경험이 제겐 큰 자산이다. 창업실패로 끝나지 않고 현재도 훌륭히 회사가 운영되고 있으니 함께 했던 시간들이 더욱더 애틋한 추억이고 뜻깊다. 단, 누군가가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극도로 만류한다. 그 시간에 공부해서 취업을 해 회사 구조에 대한 이해와 사업개발 능력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창업가로서 돌파했던 저력과 용기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저, 가끔씩만 그때를 추억하며 지금 맡은 산업 현장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만큼 용기가 없어졌다. 나와 동년배, 훨씬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 업무적으로 싫은 소리하고, 또 북돋으면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다. 다시금 그 시절로 돌아가 창업을 하라면 솔직히 고민할 것 같다. 나 같은 현실주의자가 택한 '이상'은 꽤나 험난했었다.


"난 어떻게 살았을까, 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루종일 일에 치여, 이런 원론적이면서 철학적인 고민을 찬찬히 해볼 시간마저 없다. 그저 밀린 일정에 끌려 갈 뿐이다. 15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쓰는 편이기도 하고 전화하기, 문자하기 등 세세한 연락하는 일정마저 다 캘린더에 기록해놓기에 하루가 끝나면 수없이 많은 일들을 했고, 못했다. 또 못한 일들은 밤으로 내일로 미뤄 결국은 다 하고 만다. 이러다보니 시간은 빨리 가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란 질문을 던질 시간이 부족하다.


행복을 찾고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 살아왔다. 개인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인 내가 던지기엔 너무나 달콤하다. 다만, 그것만큼은 진실이다. 현재의 고통을 참고 미래의 성장을 꿈꾸는 것이 맞을지, 현재의 행복감을 온전히 그대로 느끼고 미래의 성장을 위한 시간은 조금 접어두는 편이 나을지 고민이다. 닭이냐, 달걀이냐의 문제를 풀 수 없다. 보통 인간관계 또는 사랑하는 이와 연애를 할 때 이러한 고민은 두드러진다. 수없이 많은 이들을 만났고 떠나보냈다. 인간관계가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장벽은 높아진다. 특히 친구보다 동지를 찾아가는데 더 열중하고 만나면 마치 삼국지의 대서사시를 읊듯이 그간 겪어왔던 인간관계 시행착오를 처음부터 들려준다. 난 이런 사람이니, 너무 피곤하다 싶으면 떠나라는 식인데 좁아지고 높아지는 장벽을 가끔은 허물고 싶기도 한 원초적인 본능과 꾸준히 싸우면서 지키고 있다. 연애 문제로 가면 더 답이 없다. 긴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일은 꽤 인정받는 편이다. 어딜가든, 무슨 일을 하든 타고난 일머리와 한번 물기 시작하면 독사같이 악착같은 집착으로 빠르게 섭렵하고 적용하고 성과를 낸다. 극도로 훈련된 결과주의자이다. 그렇기에 서른중반에 드는 하나의 확신은 '아.. 나 어디가서 굶어죽을 일은 없겠구나' 정도의 자신감이다.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한번도 일 못한다고 핀잔을 듣거나 저성과주의자로 낙인을 찍혀 전전긍긍해본 적은 없다. 다만, 빈말을 못하고 또한 굉장히 직설적이고 결과를 중시 여기기에 가끔씩 '적'을 만들어 곤혹을 치르기도 하고 사무적으로 모든 것을 사고하고 대하는 면이 있어 '정'이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내 장점을 살리며 단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고민하기에 한없이 '인간미'를 기르기도 하고 나를 '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바로 무릎 꿇고 저자세로 나가는 인생 교훈도 얻곤 했다. 개인주의를 지키며 현실주의면서도 일정 부분 타협해 생존주의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사십대는 인간이 태어나서 가장 완벽한 시기이다. 신체적으로도 아직 꽤 봐줄만 하고, 공부도 할만큼 했기에 어디가서 꿀리지 않고, 현장 경험은 절정에 달해 누구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 나는 사십대를 정말로 멋지게 보내고 싶을 뿐이다. 그러기에 내 삼십대가 소중하다. 수많은 시행착오, 의도치 않은 난관이 있지만 이 시기를 누구보다 잘 극복하고 성장을 이룰 것이다. 오늘부로 그 2년이 더 생겼다. 다행이다. 용기보단 두려움이 더 가까워진 내 소극적인 성격 뒤로 어부지리로 2년이 더 생긴 것이다. 헛되이 쓰지 않고 내 멋진 사십대를 위해 이 시기를 누구보다 더 소중하고, 또한 과감하게 배우고 경험하고 타협하고 존중하는 시기를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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