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한잔의 여유 Jul 03. 2023

예민 보스가 되어버린 아빠

유기적 연결체인 인간의 몸에서 하나가 무너져버리면 나타나는 악순환

246번째 에피소드이다.


"요 근래 십년 중에서 정말 최악의 컨디션이다." 아침밥을 먹다가 아빠가 한 이야기다. 아침도 챙겨먹지 않은 내가, 그렇다고 효자도 아닌 나지만 주말 아침만큼은 꼭 가족과 먹으려고 하는 이유는 몇년 전부터이다. 우선, 엄마의 몸에 먼저 이상신호가 왔다. '암'은 무섭게 다가왔고 다행히도 빠르게 발견하고 의료기술도 진일보한 상태였기에 완치 후에 현재까지 잘 관리 중이다. 아빠의 몸에 이상신호는 올해 초부터 시작되었다. 갑작스레 달리기를 할 상황에 놓인 아빠가 몸을 풀지 못한 채 달려 다리 한쪽에 무리가 갔는지 절뚝거리더니 급기야 그 걸음걸이가 정상적이지 못한 상황에 이르렀다. 아빠도 더는 안되겠던지 무릎 연골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인공관절이냐, 시술이냐의 갈림길에서 꽤 긴 시간의 재활이 필요하지만 후자를 택했다. 앞서 에프소드에서 밝힌 것처럼 재활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무리한 운동으로 이석증이 오고, 반대로 운동을 하지 못하니 몸 전체가 소화가 되지 않고 무거워져 갑갑해하는 상황이 빗어졌다. 그로 인해 1개월이면 족할 것 같던 병원생활이 벌써 상반기 전체를 모두 소진하고 이제서야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대학병원까지 간 검사에서 신체적으로 큰 문제가 없어 간단한 담석 제거 수술을 하고 나서야 퇴원할 수 있었다. 의학지식이 없어 단정할 수 없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심리적 영향이 더 커보였다. 한 평생을 쉼없이 달려온 아빠이기에, 생각보다 길어진 재활, 그로 인해 활동의 제약이 생기면서 답답함과 불안함이 생긴 듯 했다. 의학지식이 풍부한 의사의 판단, 병원의 환경 등이 불안요소를 제거해나가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오늘은 그 사이 느낀 감정을 서술하고자 한다.


먼저, 아빠의 참을성이 깊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건, 인간이면 당연한 것이고 남편이자 아빠이기에 항상 인생의 역경을 참고 견뎌내면서 묵묵히 걸어왔기에 알 기회가 많이 없었다. 이 시기에 119 구급차만 3번을 불렀는데 이석증 뿐만 아니라 소화가 되지 않고 갑갑한 상황에 처해 도저히 거동이 불편했지만, 내가 본 아빠의 평소 모습답지 않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감정의 변화없이 묵묵히 대응했던 태도와 달리, 일단 안되겠으니 빨리 전화해달라는 외침이 되레 내가 아빠에 대해 자세히 알 기회가 없었고 한편으론 가족을 위해 평생 헌신하며 참아왔다는 걸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중규모 병원에서 검사결과가 이상없이 나왔을 때 급하게 퇴원수속을 해버리고 당장 밤에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찾아가 입원수속을 해달라 요청도 해었다. 본인은 너무 몸상태가 안 좋은데 별 이상이 없다고 하고, 그에 따른 다른 조치가 없으니 답답했을 것이다. 또 당장 밤에 대학병원 응급실을 간다고 해서 해결될 것도 아니었지만 오죽 그랬으면 아빠가 그랬을까, 엄마와 나는 그날 아빠를 따라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 죽치고 앉아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물론, 아빠가 바라는 입원수속은 안되었지만 말이다. 아빠가 얼마나 몸이 힘들었으면 그랬을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다음은, 아빠가 예민 보스라는 걸 알게 되었다.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와 몸 하나가 무너지니 악순환이 계속 일어나는 걸 경험하고 있다. 우선 잠을 자지 못해 한동안 수면제를 처방받아 복용했고 잠드는 뇌파영상을 틀어놓고 잠들면 우리 집 전체는 그 다음부터는 갓난아기를 키우는 것 마냥 집에서 조용히 움직였다. 그때 만약 깨면 아빠가 전혀 잠에 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아빠의 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쇼파에 나와 잠을 청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전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던 아빠였기에 새로운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아빠의 몸 건강이 무너지니 전체가 흔들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은 또 하나 말썽이 발생했는데 병원검사를 받는 과정이 적잖이 고통스럽고 힘드니, 그 과정에서 아랫니를 꽉 깨우는 경우가 많았나보다. 이가 아픈 줄은 몰랐는데 회복하는 과정에서 딱딱한 음식물 하나를 잘못 깨물어 이에서 뚝 소리가 났다. 그때부터 예민 보스 아빠가 다시 출현해서 이를 부여잡고 주말이 지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다. 빨리 치과를 가 치료를 받고 예민하지 않은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은 듯 했다. 나는 이러한 모든 일들이 놀랍기만 하다. 무던하면서도 감정의 동요가 없던 아빠에게 평생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빠의 가족에 대한 첵임감과 헌신에 모두 우선순위가 밀려 드러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이 시간 내 스스로 생각이 참 많아졌다.


부모가 약해져가는 모습은 그 자체의 현상 이외도 근본적 나 자신, 그리고 부모란 개인과 자아에 대한 근본적 고민을 빠지게 한다. 그리고 가치철학적인 행복과 성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며 보다 뚜렷한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시간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 진지하며 완숙미를 더해가는 과정이 좀 더 어른이 되는 과정의 일환이라면 나는 벌써 서른 중반이 되었고 이 과정을 몸소 겪고 있다. 부모가 내게 주는 가르침이다.

작가의 이전글 갑작스레 두살 어려진 오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