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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Aug 16. 2023

그해 여름, 강원도 여행기

강원도의 춘천, 원주 그리고 강릉 : 도보와 대중교통만으로 로컬 여행

254번째 에피소드이다.


"형, 디지털 노마드에요?" 내가 강원도에 있다니 우연히 연락 온 동생이 내게 물었다. 엄밀히 따지면 디지털 노마드인 것 같기도 하 폰 포비아이기도 하다. 기회만 된다면 어딘가로 숨고 싶은 온전한 개인의 공간이 중요하다. 이번 여름에 제주도를 갈까, 아니면 강원도를 갈까 한참을 고민했다. 두 곳 다 무언가 미지의 영역이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극단적 메리트를 가지고 있고 강원도는 '산'이라는 쉽게 접근하지 못할 장애물이 있다. 그렇기에 대다수는 제주도로 가야겠다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 제주도를 가곤 했다. 다만, 이번만큼은 마음을 고쳐먹고 그 장애물을 넘어보기로 했다. 나는 여행을 가기에 최적화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음식을 전혀 가리지 않고 길거리에서 누워자더라도 충분하며, 누군가의 코고는 소리는 그저 자장가일 뿐이다. 또한 도보로 걸어야 하는 상황을 즐기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도보와 대중교통을 적극 활용해야만 로컬로 가는 그 도시만의 멋과 맛을 순간적으로 한동네 주민이 되어 온전히 즐길 수 있는데 그 장점을 극대화 하는데 익숙하다. 3박4일의 강원도 여행을 찬찬히 회고해보면서 로컬 여행 속에서 느낀 감정을 기록해본다.


용산에서 춘천까지는 청춘ITX로 다다랐다. 용산역에서 출발하기 위해 가던 중 이외로 이목을 끈 건, 이봉창 의사였다. '용산역에 왜 이봉창 의사가?'하는 궁금증에 잠시 걷던 발걸음이 멈춰졌다. 의거하기전 잠시 용산역 역무원으로 근무했던 이력은, 평소에 잘 알지 못했던 이봉창 의사 삶의 이야기였다. 강원도로 여행을 가면서 내가 그 도시에서 찾고자했던 건 바로 '내러티브'였다. 도시가 인구소멸 속에서 생존을 위해 수없이 민관협치로 풀어내고자 하는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본질적으로 '내러티브'이다. 강원도로 떠나기 전부터 그 시도를 용산역에서부터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다. 이봉창 의사가 바쁘게 가던 내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듯이, 도시 속 장소가 꾸준히 발생시키고 쌓아왔던 로컬 컨텐츠가 결국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사람을 찾아오게끔 만든다. 청춘ITX는 용산역 지하철을 타는 곳과 동일한 구역의 공간에서 출발해 한번도 이용해보지 않은 누군가에겐 낯설음이 가지는 긴장감을 충분히 일으켰다. 1시간반 남짓 달려 도착한 춘천역의 밤, 역 근처 숙소인 게스트하우스는 지친 몸을 뉘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춘천명동닭갈비골목, 골목에 위치한 30여년 된 카페를 벗어나 도착한 김유정역에선 낭만과 마주했다. 동백꽃, 봄봄 등 김유정 작가의 소설 속에 나타난 농민들의 삶 그 자체가 춘천에 있었고 실레마을 속 지명, 실명을 가져온 건 김유정 작가의 동네 애착이 느껴졌다. 김유정 폐역은 기존 춘천역까지 오던 무궁화 열차가 2000년대 중반에 마지막 운행을 하고 신역사가 필요했기에 폐역을 문화공간으로 만들고 무궁화 열차를 카페로 만들어 복합공간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주변 김유정문학관은 춘천이란 도시에서 '김유정'이란 콘텐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김유정문학관에 쓰여있는 김유정 작가의 생애는 '문학'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 느끼게 해준다. 불과 29세의 짧은 삶을 살다간 그가 작가로 활동한 시기는 4,5년 남짓이지만 현대문학사에서 남긴 족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춘천은 무궁화 열차를 타고 오던 옛 기억을 되살려 훨씬 편해진 청춘ITX로 도착해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고 김유정을 통해 그 시대 실레마을의 농민들의 삶을 느끼며, 문학이란 아름다운 풍미가 살아 숨쉬는 로컬 콘텐츠를 밀어야 한다.


다음날은 춘천에서 원주로 향했다. 원주는 도보로 시작해서, 도보로 끝난 도시였다. 기존의 협동조합의 도시, 공공기관 이전 혁신도시란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는 로컬 콘텐츠를 보고 싶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숙소에 짐을 푼 후 곧바로 북원상가 재래시장으로 이동해 골목 곳곳을 살펴보고 식객 허영만 작가 방송에 출연했던 다진곰탕에서 호박국수를 찾았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지역 맛집은 허름하기 그지 없었지만, 맛과 멋을 오히려 만드는 로컬 콘텐츠가 되었다. 오후8시가 공식 영업시간 종료임에도 도착했을 때, 이미 재료소진으로 가게문을 닫아 버려 당황스러워 다음날로 기약해야 했다. 근처 쌍동통닭 또한 3대에 걸쳐 운영하고 있는 유명 맛집으로 초기 빵집으로 시작해 빵을 굽다가, 그 기술을 닭을 튀기는 과정에서 혼합한 장인의 노력이 깃들인 로컬 콘텐츠다. 맥주 한잔과 함께 엄청난 양의 치킨은 그저 놀랄 뿐이었다. 다음날 가어코 다시 찾은 다진곰탕은 그 맛으로 존재의 의미를 증명했다. 원주에는 박경리 문학공원이 존재한다. 토지, 김약국의 딸들 등 한번은 들어볼만한 소설을 집필한 현대사의 거장이다. 그를 기리기 위한 공원부터 문학의 집, 북카페는 내겐 원주 도심 속 한줄기 쉼터다. 곳곳에 박경리 작가의 작품 글귀들은 오롯이 그가 현재도 지식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그 중에서 박경리, '모순'이란 글귀는 최근 극단적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세지인 듯해서 내 발길을 사로 잡았다. 원주의 또 다른 가 볼거리는 원주중앙시장에 위치한 미로예술시장이다. 기존 1층 상권이 아닌 상대적으로 발길이 드문 2층 상권을 로컬콘텐츠로 기획하여 미로같이 컨텐츠화시킨 곳이다. 2층에 영업 중인 열쇠집, 금은방 등은 유지한 채로 빈 공간을 트렌디한 가게를 유치하고, 그래도 빈 공간들을 콘텐츠화하여 한번즈음 미로 속으로 들어오게끔 유도한 공간이다. 완벽하다고 볼 순 없지만, 1층 기존상권과 더불어 2층 상권의 열악한 환경을 복합적 시선으로 연계해 찾아오는 공간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꽤 참신했다.


마지막 날은 강릉에 도착했다. 강릉은 강원도 내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로 분류할 수 있다. 강릉역부터 여행객들이 만족할만한 쾌적함을 갖추고 있다. 역 근처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는 이층침대가 한 공간에 모여있어 나같은 뚜벅이 여행자들이 이용하기에 적합했다. 대학 기숙사 이후에는 이렇게 많은 이와 함께 동일한 공간에서 잠을 청해본 적이 없어 긴장감이 주는 신선함이 유지되었다. 강릉 중앙시장은 내게 큰 영감은 준 곳이다. 이곳은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우선, 강릉역과 가까운 상권과 함께 기존 전통상권을 유지하며 바로 옆에는 쾌적하게 산책할 수 있는 뻥 뚫린 월화거리를 조성해 균형을 이루었다. 전통시장 내에 즐비하게 맛집이 하나 건너 하나가 있게 상인들도 노력한 결과로 알찬 로컬 콘텐츠가 구성되어있었다. 특히, 한가지 인상깊었던 건 떡집이 떡을 바로 손질해 접시에 담아 여행객들이 그 자리에서 먹기 좋게 판매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시장을 가보면 의외로 떡집의 떡이 포장된 채로 진열되어있어 바로 현장에서 먹지 못하고 구매만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상인들의 저런 사소한 노력이, 여행객의 발길을 잡고 시장번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월화거리는 대중교통이 편하게 만들고, 근처 GCV와 홈플러스까지 자연스럽게 연계되어 누구보다 시민친화적이라 여행객 뿐만 아니라 기존 강릉 시민들의 문화생활 만족도를 높이게끔 설계되어있었다. 강릉은 사실 꽤 매력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는 편이다. 강릉항부터 시작되는 안목카페거리, 그리고 안목해변가부터 강문해변가까지 도보로 1시간 남짓 소나무숲길로 이어지는 산책코스는 바다를 보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로컬콘텐츠 그 자체다. 사이에 생각보다 가게들을 즐비해 배치하지 않고 차로 이동할 수 있는 도로,  소나무와 바다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산책로에 공들인 도시기획자의 안목이 엿보인다. 강릉은 지식인을 낳아온 도시다. 허난설현, 허균, 율곡이이, 신사임당 등 조선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식인들의 출신지다. 오죽헌을 비롯해 허난설현, 허균기념공원, 그리고 문화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아르떼뮤지엄 강릉까지 지식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도시 그 자체를 로컬 콘텐츠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강원도에서 더 가볼 곳은 많다. 속초, 평창, 태백, 동해, 삼척 등 이번 여름기간 제약된 시간으로 어쩔 수 없이 지나치거나 또는 도달할 수 없는 도시였다. 그해 여름, 강원도 여행기는 부산으로 오는 5시간 남짓의 시외버스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도시는 살아숨쉬는 생물이다. 그 속에서 사람도 함께 숨쉬고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다. 위 세 곳의 도시들도 각각 도시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쫓고 콘텐츠화하고 도시의 브랜드로 각인시켜나간다. 콘텐츠는 곧 브랜드이며 결국 그로 인해 사람들은 도시를 잊지 않고 찾아오게끔 만든다. 찾아온 사람은 도시 속 이야기에 힘을 보태고, 콘텐츠는 고도화되고 내재화되어간다. 그 속에서 도시는 생명력을 유지하며 발전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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