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한잔의 여유 Sep 29. 2023

제주, 올레길 따라 서쪽으로 반바퀴

끊임없이 걷다보면 무념무상, 제주에 정착한 내 친구의 행복

255번째 에피소드이다.


제주도를 추석연휴 시작전부터 일부 연휴기간까지 포함해 여행하게 된 배경은 전적으로 '미련' 때문이다. 그 미련은 하늘의 허락이 필요했던 제주(https://brunch.co.kr/@com4805/242)이란 에피소드로 자세히 정리해놓았다. 날씨가 화창한 제주의 하늘은 이번엔 나를 허락해주었다. 내 여행의 기본원칙은 미련스러울 정도로 도보여행이다. 제주공항에서 시작해 아침으로 올래국수를 먹으러 갈 때 조차도 도보로 이동한다.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대기줄이 있는 식당을 보면서 골목경제 속 로컬크리에이터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용두암이 시작점이고 도두방파제까지 걸어가는 길은 바다, 그리고 바람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다. 버킷리스트 중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보자는 걸 대리만족시켜줄 정도의 제주 올레길은 광대하고 평화롭다. 머릿 속에 복잡한 잡념들은 걷다보면 온몸에 흐르는 땀, 그리고 가방을 짊어진 어깨,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다리들로 인해 그 자체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 시원한 바람이 '지침'을 '상쾌함'으로 바꿔주는 마법을 발휘한다. 또한 제주시 민속오일장은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다. 큰 규모의 전통시장은 도시 그 자체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모습이다. 여기서 먹는 길거리 음식은 걸어오면 흘린 '땀'에 대한 최고의 보상이다. 이제 애월까진 버스로 이동한다. 올레길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긴 만큼 2박3일 안에 모든 길을 다 걸을 순 없다.


애월에 도착해 애월카페거리로 향한다. 이 곳에 와보면 왜 여기가 핫한 관광지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최근에 왜 외지인들이 로컬(Local)을 찾는가?에 대한 답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충분히 특별하다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다."는 걸로 정의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찾던 해수욕장의 바다보단 더할 나위없이 날것의 바다와 마주한다. 부산에서 영도가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와 유사하다. 날것의 바다는 그만으로 운치가 있다. 애월의 숙소는 오누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추석연휴 전날이라 건물 전체에서 나를 포함해 1팀만이 숙박할 뿐이다. 조용함이 내겐 더할 나위없이 평화롭다. 다음날 다시 올레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애월카페거리가 시작점이고 한림항, 한림방파제가 종착점이다. 가는 중간에 애월빵공장이란 대형 카페와 마주한다. 로컬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가운데서 '내러티브'는 근본이다. 애월이와 하루빵 캐릭터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제주도와 애월을 상징화한 캐릭터란 걸 모르더라도 사랑스럽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대형카페는 이 비즈니스에 많은 걸 걸었다는 창업자의 절박함이 엿보였다. 제주, 애월을 상징하는 빵은 관광객을 사로잡기 충분했고 빵맛도 있어 배가 더부룩해질 정도로 과식을 하게 만든다. 로컬(Local)은 그 무엇을 하더라도 결국 관광 그리고 문화산업이다. 내지인의 포용적 지지, 그리고 외지인들의 냉철한 평가가 로컬 속에서 비즈니스를 성공시키는 로컬크리에이터를 만들 뿐이다. 한림항에 도착할 무렵 한림매일시장에 도착했다. 어제 본 제주시 민속오일장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애덤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이란 단어로 자유시장경제를 압축했듯, 한림매일시장은 그 주변 시장환경이 그 모든걸 나타낸다. 아직까진 외지인보단 내지인에게 좀 더 특화된 전통시장이다. 여기서 또 한번 버스를 타고 모슬포항으로 이동한다. 그곳에는 제주에 정착하고 있는 내 오랜 친구가 기다리고 있다.


모슬포항 근처에서 내려 친구와 약속한 시간까지 한 시간이 남아 주변을 둘러본다. 대정오일시장, 방어축제의 거리를 둘러보는데 모슬포항은 외지인들을 맞이할 준비가 슬슬 엿보인다. 기존 내지인 위주의 거리에서 힐끔 힐끔 외지인들이 좋아할 만한 힙한 가게들이 생기고 하이브형으로 어우러지고 있다. 모슬포항만이 가진 날것의 바다는 차별화된 컨텐츠다. 그리고 운진항, 가파도선착장까지 가는 해변 산책로는 장관이다. 평화로움이 애월에서 느꼈던 것과 분명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제주에 정착하고 있는 내 오랜 친구는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있다. '글로컬'이란 글로벌과 로컬을 혼용해서 미는 키워드로 외국 관광객이 머무는 특화된 컨텐츠 기획을 하고 있는데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반응이 꽤 뜨겁다. 내가 도착했을 땐 중국 관광객들이 장기투숙을 하고 있었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외계인' 컨셉이다. 오브제 하나 하나가 공간 비즈니스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것들을 잘 챙기고 있다. 친구가 "오늘 저녁은 뭐 먹을래?"라고 물어봐 나는 고민 없이 "흑돼지"라고 말한다. 친구가 "여기 방어도 좋은데?"라고 되물었지만 나는 답정너처럼 "흑돼지"라고 확정짓는다. 우리에게 각인된 도시브랜드, 특산물 이미지가 얼마나 무서운지 내 스스로에게 또 한번 느꼈다. 제주는 누가 뭐라해도 흑돼지, 그런 프레임을 누가 최초로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는다. 그 자체가 브랜드고 대체불가능한 컨텐츠인거다. 만약 또 누군가 대단한 기획자가 나타나 내 머릿속에 '모슬포에 오면 방어'란 브랜드를 각인시킨다면 다음엔 무조건반사적으로 외칠 것이다. "방어" 그 만큼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작업은 정교하고 사업적으로 중요하다.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제주맥주를 마시며 친구와 한동안 떠들었다. 로컬(Local)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정착하면서 겪었던 어려움, 극복하는 과정을 들으며 친구가 훨씬 더 성장했단 느낌을 받았다. 마치 어린이가 어른을 마주한 첫 느낌이랄까? 수년전 내가 알던 친구가 아닌 산전수전을 겪으며 현실적이면서도 포용적이고 관계(Relationship)의 중요성을 찾으며 진정한 협동을 경험해본 자의 여유였다. 이제 헤어질 무렵 그 친구가 내게 말했다.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지며 고민이 많던 나에게 네가, '제주에 가는 팀이 있는데 거기서 진정한 기회를 찾아보면 어때?'라고 말하며 연결시켜준 내게 진심으로 고맙다. 수년간 많은 일을 겪으면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진정한 일들을 발견했고 단순히 일해주고 월급받는 존재가 아닌, 내가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것들에 더욱 익숙해진 것 같아. 단순 취업을 했으면 몰랐을 감정이야." 내가 그 친구에게 물었다. "그래서 행복해?" 내 물음에 그 친구가 확신 찬 어조로 답했다. "응! 나는 지금 나의 삶에 진정으로 만족하고 행복해. 고마워!"


난 지금 제주공항에 있다. 한 시간 뒤면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간다. '나는 행복한가?' 스스로 끊임없이 묻고 부족한 점을 채워나가야하는 인생의 숙명과도 같은 물음이다. 다음 번에는 그 친구에게 제주 한달살기와 같은 느낌으로 오랫동안 모슬포항에 머물면서 있겠노라고 약속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치열한 삶 속에서 내가 간절히 원했던 일들에 작게나마 다가갔을 때 느끼는 일상 속에서의 행복이었다. 그건 변함이 없고 향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행복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선 여유와 평화로움이 간헐적으로 필요하다.


나는 그것을 온전히 충전하고 돌아간다. 


작가의 이전글 그해 여름, 강원도 여행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