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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Oct 02. 2023

오펜하이머 영화를 보고

완벽하지 않은 천재적 인간의 3시간 여정

257번째 에피소드이다.


오펜하이머가 개봉하고 주변에 들은 대부분의 평은 '너무 길다.'였다. 가장 웃겼던 영화관람객 베스트댓글은 "영화 속 핵폭탄이 터지기 전에 내 방광이 먼저 터지겠다."였는데 역시.. 한국은 해학의 민족이라 빵 터지곤 했다. 추석연휴 끝물, 상영관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나는 오펜하이머와 마주했다. 결론적으로 내겐 3시간이 훌쩍 지나간 그 자체였다. 이념갈등 등 역사적 배경을 다소 알고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고 무엇보다도 오펜하이머의 인생에 흠뻑 빠져들었다. 영화 속 오펜하이머는 흠집투성이다. 사교성도 없을 뿐더러 그 당시 사상에 심취해 적을 많이 만들었고, 아내와의 관계도 그리 좋지 않고 더욱이 좋은 아빠가 되질 못했다. 그걸 오히려 적나라게 보여주면서 오펜하이머가 모든 영역에서 꼭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여과없이 드러낸다. 완벽하지 않은 천재적 인간의 여정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집념과 집중력은 상상을 초월하며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 속에서는 의외로 본인의 사람들에겐 포용적인 모습마저 보여주는 리더의 자질까지 보인다. 결국 핵폭탄 개발에 성공하지만 되레 그 이후의 쓰임새에 대해 환멸과 걱정 속에서 본인의 신념을 목소리내기도 하는 모습은 그답게, 행동한 표본 그 자체였다. 그가 궁지에 몰리자, 영화에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존 F 케네디란 단어가 등장하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이렇듯 역사는 서로가 서로의 재능을 알아보는 과정속에서 쌓여간다.


영화를 보다보면, 초한지의 한신이 계속 떠오른다. 한나라로 통일에 지대적인 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전투의 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장군임에도 불구하고 극단적 사회성 결여, 적을 만드는 비범한 능력으로 결국 '토사구팽'이란 사자성어를 현대까지 쓰이게 한 인물이다. 완벽하지 않은 천재적 인간의 여정이 수천년 전에 한나라와 초나라가 패권을 두고 자웅을 겨루던 그 역사 속에도 존재했다. 그러한 역사들이 인상적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차곡차곡 쌓여 진보하게 하며 현재의 이 순간에 녹아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역사는 누군가의 인상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역동성은 보인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대다수의 민초들은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지만 '송곳'같이 뚫고 나오는 완벽하지 않은 천재적 인간의 행동이 사건을 일으키고 동조해 나간다.


그것이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고 우리는 역사를 통해 학습하고, 선험적 태도를 기를 수 있다. 오펜하이머가 쌓은 역사적 사건은 무엇일까, 가장 큰 건 영화 속에서도 잠깐 언급되었지만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의 고뇌가 유사한 것이지 않을까. 무언가를 위해 발명한 발명품이 생각지 못했던 누군가에게 큰 위협으로, 공포로 전락해 새로운 적을 만들어내는 그 자체에서 '평화'란 복잡하고도 추상적인 단어가 한 사람의 천재성으로 단순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한계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3시간의 여정이 지루하지 않고 금새 지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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