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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Oct 18. 2023

아버지의 다리를 위한 마라톤

은퇴를 앞둔 아버지의 고장난 다리, 앞으로 내가 더 잘 뛰어야 하는 이유

258번째 에피소드이다.


5km씩 뛰는 것이 습관이 들자, 10km가 우스워졌고 작년도 인천송도 하프마라톤을 완주해보자는 갑작스런 생각은 쉽게 달성되었다. 올해 중순 제주도 한라산 등반 이후 곧바로 완주하기로 한 대구 하프마라톤을 늦잠 자서 황당하게 못 간 건 아마 내가 뛰어야 할 의지에 문제였을거다. 아무리 피곤했어도 내가 뛰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면 몸을 일으켜 갔을테니 말이다. 그 아쉬움으로 10월 말, 경주국제마라톤에서 하프코스 신청을 2주 뒤 11월 초, JTBC마라톤에서는 풀코스 신청을 해두었다. 하지만 그 기간이 다가올수록 아쉬움보단 마라톤을 또 뛰어야 하나는 스스로 신청하고도 고민하는 우스운 상황에 처했다. 특히 하프코스는 그저 또 뛰면 된다고 볼 수 있지만 풀코스는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기에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하는 신청자체에 관한 회의감, 또한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완주해야하는 이유가 생겼다.


아버지의 무릎이 고장 나 수술을 하고 꽤 오랜 기간 재활치료를 했다고 이미 한번 에피소드에서 밝힌 바 있다. 재활치료를 무리하다 오히려 탈이 나서 이석증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구급차를 부르기도 했다. 다만, 그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버지의 걸음이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도 답답했던지 여러 병원을 찾아 그 원인을 찾다가 무릎이 아니라 허리 신경에 있다고 뒤늦게 알게 되었다. 왜 병원 의사 분들이 환자가 원해도 MRI를 그렇게 찍어주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차치하고 무릎이 아닌 신경 그 자체가 고장나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의 상태를 전해들었을 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걸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애써 "그렇죠! 그거 지방에서 못해요. 무조건 서울로 가야해요. 냉정하게 말해서 의료는 지방과 서울이 꽤 차이가 나서 지방에선 심각한 것이 서울에서 치료가 되는 경우가 꽤 많아요. 서울 유력병원으로 무조건 가서 진료받고 수술 날짜 잡으면 됩니다."라고 했지만, 또 그게 그게 아니란 것은 우리 가족 모두가 알고 있었다. 신경에 박힌 어떤 것이 계속 아버지의 하반신으로 가는 에너지를 약하게 만들고 있었고 그걸 방치할 경우 하반신 마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니 가슴이 철렁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어떤 것을 제거한다고 해도 현재 상태가 최선이고 더 악화만 막을 수 있다는 진단은 기분 자체를 묘하게 만들었다. 은퇴를 앞둔 아버지는 기획력과 상상력이 풍부했기에 자신의 몸만 건강하다면 은퇴하더라도 사회에서 더 일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고 내가 보기에도 충분했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아버지의 다리가 약해지는 모습은 자식으로서 미안함과 동시에 죄책감마저 들게 만들었다. 앞으로 서울까지 진료가는 길, 진료가 호의적일 것이란 믿음, 수술이 잘되길 바라는 기도, 회복이 잘되거란 바람이 동시에 우리 가족 모두가 견뎌내야 하는 인내다.


이러한 생각의 종착점에 도달하니, 마라톤이 뛰고 싶어졌다. 건강하게 끝까지 완주하고 싶어졌다. 하프코스든 풀코스든 내가 누구보다 아버지의 다리가 되어 완주하고 완주메달을 가져다드리고 싶어졌다.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뛰고 또 뛰면서 결국 해내고야 하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극복한 과정의 결과물을 온전히 선물해주고 싶어졌다. 아버지가 앞으로의 병원치료 과정에서 스스로 자존감이 결여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건강히 삶을 마주하는 생의 감각을 찾는데 동기부여가 되고 싶다. 자식으로서 내가 부모에게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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