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한잔의 여유 Feb 15. 2024

병원 1층에 도란도란 모인 우리

'가족'이란 구심점이 다시금 우리로 하여금 '대지'를 이루게 했다.

269번째 에피소드이다.


'가족'이란 주제로 글을 쓰다보면 펄벅의 '대지'란 소설을 자주 언급한다. 한번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왕룽을 중심으로 대지(땅)에서 시작해 가족을 이루고 세대를 거쳐 다시금 대지(땅)로 돌아가는 과정이 정말 압도적인 표현력으로 나타난다. 나는 우리 가족을 보면서 펄벅의 '대지'를 많이 떠올리곤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고 다소 평화로운 시기를 겪다가 최근 몇년 간 엄마와 아버지가 연달아 병환이 생기면서 덜컥 내가 마주한 부모의 한없이 약해진 모습은 이제 나를 좀 더 단단하고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아버지는 재활을 하는 과정에서 최근 조급함이 생기셨는지, 가끔씩 한숨을 쉬신다. 본인의 쓰임새를 사회에 증명하고자 부단히 노력을 하고 계시지만 맘처럼 쉽지 않다. 재활이란 것이 길고도 끝을 모르는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란 것을 어디서 읽은 적이 있는데 수술 이후 재활이란 난제를 돌파하려는 길은 확고한 자신의 신념과 의지, 그리고 그 곁에서 끊임없는 응원과 격려를 마지 않는 가족들이 있을 때 가능하다.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는 과정은 쉽지 않다. 어딘가로 이동하기 위해선 최소 두명의 손이 필요하다. 한쪽은 아버지의 뒤를 받치고 한쪽은 아버지의 앞을 보조해야 한다. 물론 아버지 본인이 허리에 힘을 주어 버텨야 겨우 휠체어에 정상적 안착이 가능하다. 최근엔 그래도 허리 힘이 전보다는 회복되어 이 과정을 말미암아 다리 끝까지 빨리 운동 신경이 살아나길 바래본다.


이번 설날 연휴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모두가 병원으로 모인 날이었다. 유교적 분위기가 아닌 우리 집은 연휴기간엔 개인주의자들답게 각자 갠플을 하기에 바쁘다. 설날 당일 아침밥은 같이 먹자는 암묵적 규칙에 따라 밥상을 빠르게 차리고, 빠르게 먹고 헤어지기 바빴다. 그 이후 각자의 자유를 만끽하며 어딘가로 향했다. 내 경우는 평소 못 가본 곳을 혼자 가보는데 집중했고, 아버지의 경우는 농막이 있던 철마로 향했고 엄마는 그 뒤를 곧잘 따라갔다. 누나는 매형과 조카들과 함께 놀러갈 만한 곳으로 곧장 직행했다. 올 설 연휴는 다소 그 전 풍경과는 달랐다. 누나가 나를 깨워 집청소를 하고 병원 갈 채비를 했다. 병원 가는 길에 조카들이 내게 했던 말은 "삼촌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지 처음 알았어요" 였다. 매일 집에 있으면 침대에 누워서 낮잠만 자고 또 일어나면 옷 입고 나가기 바쁘니 그리 좋은 삼촌은 아니었다. 함께 무언가 할 채비를 한다는 건 개인주의자인 내가 이때만큼은 공동체주의자로 바뀌게 하는 당연한 설득력이다. 엄마와 힘을 합쳐 아버지를 휠체어에 앉힌 후 병원 1층으로 밀고 내려온다. 내가 존경하는 매형, 그리고 누나 그리고 조카들이 모두 한 곳으로 모인다. 이건 필시 펄벅 '대지'에서 왕룽이 묘사했던 대가족을 이룬 감정이다. 잠시 한발 떨어져 그 광경을 바라본다.


조카들은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했는지 달라붙어 다리를 주물러 준다. 둘째 조카는 태권도 품새를 보여주면서 손자 노릇을 틈틈히 해낸다. 나도 슬쩍 끼어서 아버지의 재활속도가 긍정적이며 걱정말라는 아들로서 위로를 한스푼 거든다. 가족공동체만큼 애증의 순환곡선을 이루는 곳도 없다. 엄청난 '애'로 시작해, '증'이 산발적인 흐름으로 증가했다가 '애증'으로 복합적 감정이 반복되다가 다시금 '애'로 귀결되면서 나이를 함께 들어간다. 즉, 서로 간 어른이 계속 되어가는 과정을 가족공동체 속에서 발견하고 이루어낼 수 있다. 나 역시 점차 그런 감정들을 꽤 느끼며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누구보다 빠르게 아버지의 건강한 두 다리를 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제주도 내 친구의 고민 : 오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