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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Dec 23. 2020

혁신위원회 영입 제안

정치란 무엇일까를 생각한 최초의 계기

서른세번째 에피소드다.


앞선 에피소드에서 성장과 창업스토리, 그리고 경험 위주로 느낀 바를 기술하였다.

잔망스럽게 산 덕분인지 본업 이외에도 전문위원을 겸해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17년 겨울즈음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김인호 씨 되시죠? XXX 국회의원입니다."

나는 장난전화인가 싶어 "잘못거셨습니다."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또 걸려왔다.

그때서야 그게 장난전화는 아니라고 알게 되었다.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된 분이었고

함께 활동할 위원을 찾고있다고 했다. 그리고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내가 추천되었다 했다.

"네?"


사실 좀 놀라웠다. 정치활동과는 인연이 없던 나에게 뜻밖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그래서 내가 더 끌렸을 것이다. Pure(순결한)한 위원 영입!

혁신위원장은 국회의원회관에서 잠시 시간되면 보자고 했고 내게 비전을 말해줬다.

국회의원회관이란 곳을 처음 가본 나로썬, 사실 50 vs 50 였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솔직히 두려운 감도 있었다. 내가 주로 교류했던 분들은 진보정당 지지층이 두터우며

보수정당에 대해서는 지지보다는 힐난에 가까운 비난이 많은 곳이어서 공포심이 몰려왔다.

'그 화살이 나에게 돌아오면 어떡하지? '


'50 vs 50' ... 비전을 듣고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단 하나의 문구가 끌렸다. 혁신위원회 슬로건은 "미래세대를 향한 책임"이었다.

앞선 선배세대가 있고 현존하는 우리가 있고 미래를 살아갈 미래세대가 있다.

모든 세대가 모든 것을 가지며 풍요롭게 살면 좋겠으나 대한민국 역사는 그러지 못했다.

앞선 선배세대가 절대적 빈곤을 논하며, '한강의 기적'과 '87년 민주항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시켜 우리세대에게 넘겨주었다. 최소 우리세대는 상대적 빈곤을 논하는 시대로 변모했다.

청소년시기는 IMF로, 대학시기는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세계 10대 강국의 위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취업률과  노인 빈곤률은 높아지고 있으며 '헬조선'은 고착화되고 말았다.

희망보단 절망이 커지고 사회양극화는 심화되고 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버려야 하는 것인가?

그래야.. 무엇을 버려야만 그래도.! 그래도.! 미래세대가 살만한 사회를 물려줄 것인가.

최소한 "앞선 꼰대들이 모두 헤쳐먹어서. 우리는 할게 없다. 포기했다."란 말을 듣지 않는 고민.

그 고민의 지점이 내겐 있었고 불확실하지만 그 슬로건을 믿어보기로 했다. 보수정당 입당 순간이다.


혁신위원회 발족식날, 솔직히 말해서 정치적 감각은 미숙했고 회의를 한다고 서울로 갔다.

회의실 한켠에 있다 발족식 장소를 갔더니 카메라 셔터가 끊임없이 들렸다. '아.. 큰일 났다.'

발족식이 끝나고 집에 와서 너무 피곤해 한동안 잠만 잤다. 자고 일어났더니 연락이 많이 와 있었다.

전화, 문자, 카톡 등 지인이 대부분이었고 "실망이다. 아쉽다. 후회할꺼다."라는 것이 전부였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악성댓글이 많았고, 언론인터뷰를 하면 "적폐꿈나무"라는 댓글도 달렸다.


내가 10년 간 사회적기업가, 그리고 사회운동을 하면서 들었던 칭찬과 격려보다

4개월 간 혁신위원회 활동으로 들은 욕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건 확신할 수 있다.!

특히, 혁신위원회 9명 중 내가 가장 젊었기에 혁신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당대표와 투샷이 찍히고

그런 것들이 악성댓글의 주요 자료가 되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 악성댓글 중 가장 마음 아팠던 건.!

<지방대 나오고, 돈도 안 벌어본 유령단체하는 놈이 아빠 빽 아니면 어떻게 저런 중책을 맡나?>

댓글을 확인하고 참! 많이 화가 났다. 속으로 '네가 인생을 알아?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단정하나.'

홧김에 댓글을 달고 싶었지만, 퍼거슨의 명언을 곱씹었다.


혁신위원으로 4개월 간 다양한 아젠다를 다루었다.

많이 논쟁이 있었던 부분은 가족제도에 관한 것인데 이건 나중에 따로 글을 남길 수 있으면 남기겠다.

당직자 분들은 꾸준하며, 예의바른 나를 좋게 생각했고 흠잡히지 않게 혁신위원을 마칠 수 있었다.


중간에 나에게 악성댓글을 달았던 분들을 이해해볼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어느 지역에 당대표, 혁신위원장과 함께 간담회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나이는 어리지만 중앙당에서 내려온 주요 당직자였고 대우를 받으며 간담회를 진행했다.

근데, 내 앞에 물이며 다과며 계속 챙겨주시는 분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좀 더 많으신 분들이었다.

(나는 한사코 거절해도 그 분들은 말릴 순 없었다)

그때 뭔가 깨달았다. "내부 인재육성과 기회제공이 절실하다." 나는 이건 지금까지도 소신이다.


솔직히 말해서, 혁신위원.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진보정당에서도 크게 관심이 없고

일반 시민들? 그거 뭔지도 모르고 아무 관심도 없다. 단, 보수정당에서는 관심이 있다.

중앙당에서 주요 아젠다를 설정하는 일을 해보는 것으로 청년 당원들에게는 꿈의 자리다.

그것을 나같은 낙하산같은 놈이 와서 꿰차는데, 그리고 매번 그러는데 화가 안 나겠는가?

그 일이 있은 뒤부터는, "내부 인재육성과 기회제공이 절실하다."를 외치고 있다.

나같은 낙하산이 아니라, 당에서 차근차근 역할을 해오며 성장해온 유능한 미래의 정치인.!


혁신위원회는 '100일 대장정'을 마치고

<보수정당 개혁 혁신안>을 홍준표 당대표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혁신안은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당헌 당규 개정을 통한 반영이 되었다.


혁신위원장이었던 김용태 국회의원은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나에게 "김인호 위원은 참.! 몸에 안 맞는 정당일 수도 있었는데 끝까지 해줘서 고마웠다."

이렇게 말했는데 그 말이 왜 이리 뭉클하던지, 나 역시 맘고생이 심했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제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다음 에피소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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