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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Aug 09. 2021

서로 키워주는 관계, 결혼

무언가를 해야만 할 때 그 순간 버텨주는 존재가 되는 관계

여든번째 에피소드다.


벌써 아흔번째 에피소드다. 오늘은 색다른 주제로 글을 남기고자 한다. 서른이 넘어가면 '결혼' 압박이 슬슬 온다. 부모님과 식사하기가 부담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밥먹는 건 좋은데 대화주제가 관건이다. 결혼관련 주제가 나오지 않도록 잘 드라이브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에 자칫 결혼관련 주제가 나오면 그날 식사는 서로 언성만 높아지며 마무리가 된다. 결혼에 대한 세대 간의 생각이 정말 큰 차이를 보인다고 실감한다.


앞으로 내가 말하는 결혼관은 김미경 강사 특강을 보고 공감해서 발전시킨 것이다. 우선 결혼은 서로 키워주는 관계여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똑똑하고 현명한 분과 해야 한다. 결혼 순간 돈 많음은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돈이야 당연히 많으면 좋겠지만 그건 나중 문제다. 스무살 이후 집을 나가 살면서 하나 확실히 배운 건 경제적 독립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서적 독립은 자연스레 되는데 용돈은 받아쓴다거나 그에 준하는 경제적 종속이 되면 독립성을 완전히 확보했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죽어라 과외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최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스무살부터 경제적 독립을 했다. 이제 내 선택의 자유가 생긴 것이다. 이십대는 그저 재밌었다. 그냥 하면 되고 안되면 또 하면 되고 그러다가 포기하고 다른 것 찾으면 되는 과정이다.


삼십대가 되자 한계가 왔다. 우선 부모의 은퇴로 경제적 안정성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를 잡고 나면 선택의 폭이 상당히 줄어든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성취와 가치들은 앞서 말한 것을 이루고나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소위 '꿈'과 멀어져간다. 이때 나는 똑똑하고 현명한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성취와 가치들은 일정기간 시간이 주어지면 얼추 '각'이 보이는 것들이 많다. 해봤는데 완전히 잘하거나, 어느정도 하거나, 포기하고 다른 것을 찾아봐야하거나 등과 같은 형태이다. 하지만 그 일정기간을 만들어낼 재간이 없다. 내가 대학원 박사를 진학해서 그 후를 도모하고 싶은데 기업을 다니면서 박사 학위를 정상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사회인은 정말 몇 없다. 이제는 부모에게도 기댈 여유도 없고 온전히 내 힘으로 버텨야 한다. 직장은 그만두고 배팅하거나, 아니면 대학원 박사진학을 포기하거나. 그렇게 기회비용만 생긴다.


똑똑하고 현명한 배우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면 서로가 버텨주고 키워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가령, 배우자가 내게 말한다. "나.. 한번 고민해봤는데 박사를 하고 학교 쪽으로 이직을 해보려고" 내가 말한다. "최대한 고민해본거지? 알겠어. 몇년 정도 걸릴까?" 배우자가 다시 말한다. "음.. 한 4년이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대화가 끝나고 배우자는 박사에 진학하고 나는 야근과 특근까지 모조리 한다. 4년이다. 못할 것 없다. 배우자가 순간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다고 해도 내가 버티면서 메우면 된다. 그게 서로 키워주는 관계이다. 4년이 지나 배우자가 성공적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한걸음 다가갔다. 어느 날 내가 배우자에게 말한다. "저.. 내가 사실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잠시 휴직하고 여행 좀 길게 다녀오면 안될까? 머릿속 생각을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앞으로 무엇을 더 하고 싶은지" 배우자가 내게 말한다. "알겠어. 다녀와"


삼십대 이후에는 부모에게 기댈 수가 없고, 배우자에게 기대야 한다. 그래야 힘든 순간을 겨우 버티면서 조금 더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는 십대에는 '꿈'을 쉽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십대에는 '꿈'을 술자리에서라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삼십대부터는 '꿈'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아니!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치기어린, 철없는 한순간의 감정으로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그게 없다면 인간은 본질을 잃는다. 그리고 내 자신의 매력을 잃는다. 삼십대 이후에는 똑똑하고 현명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일 것이다. 이제 삼십대 초반을 지나고 있다. 삼십대 중반부터 삶을 대비하고 있다. 내게도 행복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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