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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한잔의 여유 Aug 28. 2021

엄마의 도전기

부산예원어머니학교 이야기

여든일곱번째 에피소드이다.


엄마는 항상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 무엇이 미안한지 이유조차도 기억나질 않았다. 내가 반장을 할때 엄마는 공장일 때문에 학교에 오지 못해서 미안해 했다. 장학금으로 대학등록금 문제가 해결되어 말씀드렸더니 자식을 제대로 뒷받침을 못해줘서 원하는 대학에 못가고 차선책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미안해 했다. 최근에는 자신이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해 배움이 부족해 모르는게 많다며 미안해 했다. 그게 일상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연고 사용설명서를 보면서 내게 "영어가 많아서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어." 라고 물었다. 나도 영어를 수준급으로 잘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이야기를 마치고 문득 깨달았다. '아.. 엄마는 알파벳을 모르는구나.' 엄마가 작년도에 암 선고를 받고 함암치료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엄마가 약해져갔다. 신체적으로 약해진 것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이 가진 전문성(미싱작업)마저 앞으로 더이상 할 수가 없다는 사실에 힘들어했다. 자신이 더이상 사회에서 역할을 못한다는 걸 자각한 듯 했다.


오래 전부터 아버지와 상의한 것이 있다. '엄마의 대학졸업장'을 따게 만들자는 담대한 프로젝트였다. 이제 그 시기가 왔다. 어느정도 몸이 회복된 엄마를 부산예원어머니학교에 입학시켰다. 검정고시가 아닌 만학도들을 위한 정규과정으로 중학교3년을 2년, 고등학교3년을 2년하여 4년간 중,고등학교를 모두 이수하는 과정이다. 여름, 겨울방학을 최소화하며 교육과정을 당기면 2년 기간으로 만들 수 있기에 엄연한 정규과정 코스였다.


엄마가 어느날 집에 와서 자신이 청소부장을 맡았다고 뽐냈다. 참! 그 순간에는 어린아이같았다. 부산예원어머니학교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의외로 연령대가 낮은 분들도 배움의 시기를 놓친 사례가 많았다. 40대 분들도 있다고 하니 현재가 2021년인 것을 생각해보면 깜짝 놀랄 정도다. 엄마는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특히 수학에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음수,양수 개념이 자리잡히지 않고 분수와 나누기, 괄호안 부호에서 절망했다. 영어도 처음에 알파벳을 외우는데 애를 먹더니 이제는 곧잘 단어를 읽어내면서 공부의 재미를 느끼고 있다. 단연 가장 잘하는 것은 한자이다. 한자는 곧잘해서 내게 질문을 일체 하지 않았다. 내 방 옆 공부방까지 차려놓고 시험기간에는 완전히 열공모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책상에 앉은 엄마의 뒷모습이 자주 보인다.


나는 미담장학회라는 사회적기업을 통해 '평생교육'에 관한 아젠다를 많이 던졌다. 특히 배움의 기회를 놓친 분들에게 교육과정을 열려고 노력했다. 시장통에 가서 좌판 파는 할머니들에게 전단지를 돌리면서 한글,영어(문법/회화),컴퓨터활용능력 등을 가르쳐드릴 수 있다고 홍보했다. 처음에 6명이 신청했고 삼삼오오 모여 그 과정을 '야학'으로 진행했다. 의외로 한글을 모르는 분도 계신 점에 놀랐고 영어회화와 컴퓨터활용능력을 잘 키우고 싶다는 분은 수없이 많았다. 점점 규모가 커져 반 확대를 했고 지금까지 '평생학습교육단'이란 부서로 경북대학교를 기반으로 후배들이 지역사회에서 교육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하나 확실한 것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절실함'이란 것이다. 평생학습교육단에 가면 더 열심히 하고자 하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어머님들이 누구보다 집중하며 지각도 없고 끈끈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다. 항상 우리에게 감사해하시며 꼬박꼬박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말해 여러분 눈시울 붉어지기도 했다. '절실함'보다 더 큰 요소가 있을까?


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교육의 기회'만큼은 평등하기 위해 전사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이것마저 양보한다면 '절실함'을 가진 그 누구는 '기회'를 알지 못해 찾지 못한다. 그건 앞으로 '운'에 기대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부당하며 불공정하다. 기회가 불평등하면 대부분의 결과도 불평등하다. 그러한 사회는 미래가 없다. 산업화와 민주화시대란 격변기를 겪으며 그 순간 교육받을 기회를 놓친 어머니들은 실력보단 시대 상황이 그들을 아쉽게 만들었다. 이제서라도 배울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지고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출발선에 서게 되어 기쁘다. 우리 엄마를 포함한 부산예원어머니학교 모든 학생 분들께 존경과 함께 대한민국의 산업화, 민주화 시기를 잘 헤쳐나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분들이 만들어놓은 토양 위에 우리가 조금이나마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고 있다. 이제 그분들에게 '교육기회'이 평등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며 갚아나가야할 시기다. 우리는 누구나 동등히 배울 권리를 갖는다.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010215000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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