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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수상태 Jan 29. 2023

뇌 복제 기술이 만든 조건부 시민, 정이(JUNG_E)

요구조건을 지켜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시민

이 글은 넷플릭스 영화 ‘정이(JUNG_E)’와

인권재단 공감 백소윤 변호사의 한 기고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으며,

영화의 일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출처 : 유튜브 '정이' 예고편)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정이’가 공개 하루 만에 글로벌 1위를 기록하며 큰 화제가 되고 있어요. 영화의 큰 줄거리는 2135년 기후 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자원고갈 등으로 황폐해진 지구와, 그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거처를 찾기 위해 지구와 달 궤도 사이에 만들어진  주거지 ‘쉘터’를 배경으로 해요. 지구를 옮겨 놓은 듯한 거대한 우주정거장인 쉘터는 지구와 함께 공존하고 있었죠.


그러던 중, 쉘터 중 일부가 자치국을 선포하며 지구 연합군과 아드리안 세력은 대립하게 돼요. 여기서 한국군 소속의 ‘윤정이’가 지구 연합군의 용병으로 크게 활약하고. 전 국민적인 영웅이 돼요. 하지만 중요한 작전 중 윤정이는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어버렸고, 이 윤정이의 뇌를 복제해 전투 용병 AI를 만들어 내야 하는 윤서현 연구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어요.


거대 자본(크로노이드 사)의 주도 속에 뇌 복제 연구는 거침없이 진행돼요. 그 과정에서 윤정이의 복제 AI는 윤정이를 이루고 있는 과거 모든 기억을 가졌지만, 복제 AI는 그저 실험실 쥐처럼 이용만 돼요. 끔찍한 전투 시뮬레이션에서 생존할 수 있을 때까지 수십 번의 실험을 반복하는데요. 매번 신체가 훼손되는 고통 속에서 죽고, 다시 실험이 시작돼 정신을 차리고 나면 다시 그 전투 시뮬레이션 속에서 태어나야 했죠.

전투용병 AI로 실험체가 된 정이 / 출처 다음영화

뇌 복제 기술이 만든 조건부 시민


정이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뇌 복제가 기업이 제공하는 상품과도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 또는 가족이 원한다면 뇌 복제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상품의 비용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돈이 없는 평범한 사람은 뇌 복제 기술의 혜택에서 배제되었어요. 정이의 가족도 마찬가지였고요. 기업은 그런 가족에게 몇 가지 선택지를 건네요. 온전한 인간처럼 대우받으며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지에서부터, 기업이 뇌 복제 데이터를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꺼림칙한 선택지까지.


의식이 없는 윤정이에겐 선택권이 없었어요. 정이를 식물인간으로 놔둘 수 없었던 가족은 데이터에 대한 소유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대신해서 뇌 복제를 선택해요. 정이는 결국 복제 AI로 재탄생했지만 가족을 만나고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없었어요. 복제 AI는 비밀리에 감춰진 실험실에서 철저히 통제당하며, 오직 기업이 요구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 시뮬레이션 속에서만 ‘잠시’ 존재할 수 있었죠.


하지만 복제 AI는 기업이 완벽하게 원하는 전투용병으로써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해요. 그러자 기업에서 정이의 복제 AI를 다른 방식으로 이용할 뒷그림을 그려요. 그리고 그 용도가 무엇인지 알게 된 서현은 충격을 받아 무너져버리죠. 영화의 내용은 먼 미래의 기술과 그 기술로 인한 특정한 시대의 윤리적 문제를 담아내는 것 같지만, 윤정이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늘 있어왔어요. 바로 오늘날도요.


인권재단 공감의 백소윤 변호사는 결혼이주여성을 ‘조건부 시민’이라고 지칭해요. 이들은 ‘혼인’이라는 특정 목적이나 역할을 해낼 때만 인정받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국내 어느 한 지자체에서는 오직 특정 국적 출신의 젊은 여성에게 국내 남성과 혼인을 권장하는 지원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 지원 프로그램은 체류, 취업, 주거 지원이라는 나름의 특혜(?)를 보상으로 내세웠다고 해요.


이 특혜를 받기 위해서는 고향과 가족을 향한 그리움, 가정폭력과 불화, 원치 않는 출산 등에 대한 거부감을 억눌러야 하죠. 지자체가 건넨 이 특혜는 결혼이주여성이 만족할 만한 조건을 지키지 못할 경우 언제든 불이익으로 돌변할 수 있으니까요. 이러한 인식과 정책 속에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상품화나 편견 심화의 문제야기되는 것은 물론. 혼인이라는 조건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를 염려하며 늘 불안정한 지위에 놓인 조건부 시민을 양산하고 있어요.


다시 영화로 돌아오면, 복제 AI와 정이의 가족은 조건부 시민과도 같아요. 기업은 표면적으로 정이와 그 가족을 배려하여 뇌 복제의 특혜를 주는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어요. 특혜가 불이익으로 돌변한 것이죠. 뇌 복제에 뒤따른 이면 합의, 즉 청구서를 내민 셈이에요. 우리 사회에도 앞서 언급한 조건부 시민이 존재하는 것처럼, 미래에도 이 복제 AI와 같 조건부 시민의 지위와 권리를 고민하는 순간과 언젠간 마주할 것 같아요.

복제 AI를 실험하는 연구원 서현 / 출처 다음영화

정이가 던진 문제의식


정이를 보며 떠오른 문제의식은 두 가지였어요. 첫째, 기술의 이득은 항상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둘째, 기술시스템은 법처럼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고 통치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에요.


첫째, 항상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기술의 이득'


기술의 진보는 쉴 틈 없이 이뤄지고 있어요. 현재의 기술과 지식의 발전 속도는 우리의 상상 이상이죠. 일례로 의학 한 분야만 놓고 보면 1950년대에는 인류가 쌓아 놓은 의학 지식이 두 배가 되는 데 50년이 걸렸으나. 지금은 그 속도가 갈수록 빨라져, 10년 전에 3.5년으로 줄었고, 지금은 겨우 73일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요.


그만큼 기술진보의 속도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전개되고 있어요. 하지만 기술진보 이득을 누릴 수 있는 자와 누리지 못하는 자의 불평등으로 반드시 이어져왔어요. 그리고 기술불평등은 결과적으로 그 격차를 점점 벌려 양극화를 만들고 다른 영역에서도 양극화를 초래해요. 기술 격차로 살아가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어 평균적 미국인과 인도인을 비교해 보면 미국인의 자원 이용이 인도인보다 15배 많다는 사실처럼요.(World Population Balance, 2015)


영화에서도 정이와 같은 뇌 복제 실험체들은 계속되는 실험으로 기술 진보를 앞당겼을 거예요. 그리고 그 결과 자본의 더 많은 이익 창출과 일등 시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희생된 거나 다름없죠. 기술의 불평등한 분배는 다른 시민의 삶과 사회 유지를 위해 존재하는 조건부 시민의 문제도 함께 건드리고 있어요.


둘째, 법처럼 사회에 질서를 부여하고 통치하는 힘을 가진 '기술시스템'


법은 인간의 가능성을 실현하기도 동시에 제약하기도 하는 힘을 가지고 있죠. 그리고 사회적 행위자들 사이에서 권리와 의무를 확립시키기도 하고요. 이런 힘을 법뿐 아니라 기술시스템도 갖기 시작했어요. 복제 기술은 일개 기업의 제품으로만 볼 수 없어요. 사람과 유사한 복제 AI에 의무를 강제하기도 하고, 복제 AI의 권리를 손에 쥐어 윤리와 비윤리의 경계선을 마음대로 넘나들죠. 뇌 복제 기술시스템이 복제인간 가능성을 실현 또는 제약하며 조건부 시민을 만들어 내듯이 단순 기술이나 제품 이상의 사회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요.


최초에 뇌 복제 기술이 있었고, 이 기술은 거대 자본의 이익 추구 논리와 결합하며 법이라는 사회 질서로 발현돼요. 영화를 통해 미래 사회의 질서를 추측해 보자면 “기술 + 이익 추구 → 사회 질서”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기술 스스로 동력을 가졌거나 자본이 원하는 이익 추구가 동력이 되어 곧 사회 질서가 만들어질 때 그 결과가 항상 긍정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어요. 그 과정에서는 “왜 이 기술이 개발되어야 하는지,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소외되니까요.


2135년, 우리가 살고 있을 지구 / 출처 넷플릭스 예고편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방향


이러한 상황에 비판의식을 가졌던 미디어학자 닐 포스트만(Neal Postman, 1931 ~ 2003)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장해요.


질문 1. 그 문제는 누구의 문제인가?   

질문 2. 그 해결책으로 피해를 받는 개인이나 집단이 있다면 그중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누구인가?

질문 3. 그 문제를 해결하면 생길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무엇인가?

질문 4. 그런 기술적 해결을 통해 부나 권력을 가질 것으로 보이는 개인이나 집단은 누구인가?   


영화 정이의 배경을 통해 이 질문을 대입해 보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질병, 노화, 뇌사, 죽음 등)가 누구의 문제”이며, “기술적 해법(뇌 복제)이 가져올 피해는 무엇이며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기술적 해법이 야기할 또 다른 문제는 무엇(기술적 불평등, 조건부 시민 문제)”인지, “그 기술적 해결로 부나 권력을 가질 개인이나 집단(거대 자본)은 누구인가”를 머릿속에 쉽게 그려볼 수 있죠.


끝으로, 기술이 우리를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지, 그리고 올바른 기술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연구한 과학기술학자 실라 재서노프(Sheila Sen Jasanoff, 1944 ~ )는 다음과 같이 말해요.


“우리가 만든 기술이 우리를 압도하지 못하게 하고 싶다면, 바로 지금 우리의 기술 미래에 대해 통제권을 주장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기술혁신이 인간의 필요와 욕구에 좀 더 호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구축하고 정치적 의지를 소환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정이를 닮은 복제 AI가 살아있을 수 있는 미래 사회로 출발했어요. 우리가 만든 기술이 예기치 못한 사회질서를 형성해 우리를 또 다른 문제에 몰아넣지 않게 하려면, 닐 포스트만의 질문처럼 잠시 멈춰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실라 재서노프의 주장처럼 기술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며 모두의 평등을 위하고 민주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겠죠. 기술은 이미 속도를 내기 시작했어요. 과연 우리가 도착할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방향을 정하는 건 이제 막 출발한 현재에 달려 있어요.


https://www.netflix.com/title/81465109


참고

[기사] “당신의 차별이 문제인지도 모르죠? 그게 문젭니다”, 백소윤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시사인, 2021. 6. 23.

[도서] 테크놀로지의 정치, 실라 재서노프, 창비, 2022. 1. 3.

[도서] 호모 파베르의 미래, 손화철, 아카넷, 202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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